•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1. 관학
  • 1) 성균관
  • (2) 문묘종사와 석전

(2) 문묘종사와 석전

 문묘의 주향은 文宣王 孔子였다. 공자는 당나라 이전까지는 왕이라고 부르지 않았으나 당 玄宗 開元 27년(739)에 문선왕으로 불렸고 명 世宗 嘉靖 9년(1530) 이후로는 至聖先師라고만 불렸다. 그러나 조선왕조에서는 원 武宗 大德 11년(1307)에 정한 大成至聖文宣王이라는 시호를 준용하였다. 왕이 아니면서 왕의 칭호를 받은 사람은 공자가 유일하였는데 이는 후세에 끼친 교육의 공로가 컸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성균관 문묘에 종사된 명현은 모두 133인이다. 이 중 崔致遠·薛聰·安珦·鄭夢周·金宏弼·鄭汝昌·李彦迪·趙光祖·李滉·金麟厚·李珥·成渾·金長生·金集·趙憲·宋浚吉·朴世采 등 18인이 한국의 儒賢이다.

 성균관은 유교이념의 전당으로서 학통과 학문의 방향을 분명히 하기 위하여 선현을 문묘에 종사하였다. 그 중에서도 특히 朱熹를 비롯한 宋儒들을 많이 종사하고 있었다. 또한 문묘와는 별도로 啓聖祠가 있어 공자의 부 叔梁紇을 정위에, 顔子의 부 顔無繇와 子思의 부 孔鯉는 동위에, 曾子의 부 曾晳과 孟子의 부 孟孫은 서위에 모셔 석전 전날 밤에 제사하였다. 이것은 선조 7년(1574) 조헌의 건의에 따라 명나라 洪武禮制를 본뜬 것이다.393)≪增補文獻備考≫권 204, 學校考 3, 文廟 선조 7년.

 문묘의 제향을 釋奠祭라 하는데 정규적인 석전제는 봄·가을 仲月(3·9월) 上丁日(최초의 丁字가 든 날)에 행하게 되어 있었다. 정규 제향인 석전제 이외에 일이 있을 때마다 행하는 朔望祭(임진왜란 이후에는 폐지되어 분향만 하였음)·告由祭·慰安祭·移還安祭·禮成祭 등이 있었으며, 3년마다 한번씩 국왕이 참여하는 親臨酌獻이 있었고, 왕명에 의하여 특별히 실시되는 親臨釋奠이 있었다.

 석전제의 獻官은 정2품, 亞獻官은 정3품 당상관, 終獻官은 정3품, 殿內東·西從享分獻官 각 1명은 4품, 兩廡從享分獻官 각 10명은 5∼6품의 관원이 맡았으며, 국왕의 친행석전에서는 국왕이 헌관, 왕세자가 아헌관, 영의정이 종헌관, 정2품 각 1명이 전내동·서종향분헌관, 정3∼4품 각 10명이 양무종향분헌관을 맡았고, 왕세자 석전에서는 왕세자가 헌관, 정2품이 아헌관, 정3품 당상관이 종헌관을 각각 맡았고, 분헌관은 常時釋奠과 같았다.394)≪增捕文獻備考≫권 204, 學校考 3, 文廟 齋宮釋尊·親行釋奠·王世子釋奠. 그리고 석전의식은 중국 州縣의 석전의 예에 따랐으며 고려시대의 塑像을 쓰던 것을 조선시대에는 位版을 썼다. 석전제 이외에도 성균관에서는 대사례와 양로연, 국왕·왕세자의 幸學·視學을 행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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