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2. 농업과 농업기술
  • 1) 농업생산력의 위치

1) 농업생산력의 위치

조선 전기에 농업생산력은 크게 발전하였다. 이러한 농업생산력의 발전은 바로 농업을 둘러싼 여러 환경들, 이른바 자연조건과 농업노동력, 그리고 농업생산을 위한 여러 노동수단과 노동대상의 발전적인 변화를 수반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여러 요인들의 다양한 결합 형태를 규명함으로써 우리는 조선 전기 농업생산력의 수준과 위치를 보다 객관적으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이 시대 농업생산력의 기본 성격을 규명하기 위하여 당시의 ‘토지와 인구’의 관계를 검토해 보자.

연 도 추정전결
(1천 결)
추정면적(1)
(1천 정보)
추정인구(2)
(1천 명)
(2)/(1)
1550
1650
1725
1775
1825
1875
1,516(100.0)
1,378( 90.9)
1,320( 87.1)
1,445( 95.3)
1,445( 96.0)
1,487( 98.1)
4,337(100.0)
3,783( 87.2)
3,712( 85.6)
4,259( 98.2)
4,148( 96.6)
4,325( 99.7)
9,503(100.0)
9,020( 94.9)
12,130(127.6)
14,093(148.3)
15,277(160.8)
15,884(167.1)
2.19(100.0)
2.38(108.7)
3.27(149.3)
3.31(151.1)
3.68(168.0)
3.67(167.6)

<표 1>조선시대의 토지와 인구

*( )는 1550년을 100으로 하여 만든 지수임.

위<표 1>은 조선시대의 토지와 인구를 추계한 것이다. 이를 보면 1550년에서 1875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토지 면적은 큰 변동이 없었지만, 인구는 69%나 크게 증가하였다. 한 사람당 식량 소비 수준이 동일하였다고 가정할 때, 이러한 인구 증가는 곧 단위 면적당 농업생산력의 증대를 의미하는 것이라 하겠다. 이러한 사정은 조선 전기 농업의 역사적 성격을 명백히 보여준다. 이른바 1550년 경의 농업은 일차적으로 ‘넓은 토지를 비교적 적은 인구가 경작하였던’ 노동생산성 중심의 조방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조선 전기 농업의 미래지향적 발전 방향은 바로 토지생산성 중심의 농업으로 가는 ‘집약화의 길’밖에 없었으며, 물론 그러한 발전 방향은 조선 후기에 이르러 더욱 분명해진다.

이제 그러한 관점에서 조선 전기 농업생산력의 기본 성격을 분석해 보자. 당시의 농업은 넓은 토지 위에 부족한 노동력이 결합한 이른바 노동절약적·토지집약적 성격의 것이었으며 그러한 조건은 축력을 풍부히 구사하는 노동생산력 중심인 대농법의 우위를 보증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이 시대의 농업생산력을 ‘집약적’이라고만 단정해 온 기존의 통념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물론 이러한 사정은 이 시대의 농업이 ‘농업생산성에 기초한 농업에서 토지생산성에 기초한 농업으로의 전환’이란 조선시대 농업발전의 기본방향에 있어 출발점 위에 있음을 웅변해 주는 것이라 보여진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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