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2. 농업과 농업기술
  • 2) 농업생산력의 추계
  • (2) 토지생산성의 추계

(2) 토지생산성의 추계

한국농업사에서 조선 전기 토지 생산성이 처하였던 위치를 밝혀 보자. 주지하는 바와 같이 토지생산성이란 단위 면적당의 수확량의 추이를 나타내는 지표이다. 그런데 시계열 자료를 통해 우리가 밝힐 수 있는 유일한 토지생산성은 각 시기별 수전에서의 1결당 미곡 생산량에 불과하며, 이는 결부제의 각 시기별 결 면적에 따라 모두 10a(약 300평)당 수확량으로 환산되었다. 또한 이 추계에서는 각각 최고생산량·최저생산량과 아울러 당시의 평균적 생산량이 추정되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제3기의 공법(1444) 규정에 나타난 10a당 수확량을 100으로 하여 환산한 ‘數量指數’를 최종적으로 추정하였다.

이 추정치를 살펴보면 한국농업의 토지생산성은 무엇보다 제1기 말에서 제2기에 이행하는 단계에 가장 급격히 상승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 다음으로는 17세기에서 18세기에 이르는, 이른바 제3기에서 제4기로의 이행과정에서 상승하였으므로 15세기에서 16세기에 이르는 조선 전기에는 이러한 급속한 상승이 검출되지 않는다. 이러한 사실은 결국 조선 전기에는 토지생산성의 획기적인 상승이 없었음을 의미하며, 이러한 사정은 조선 전기가 느린 인구증가에 따라 1인당 경작면적이 축소되는 추세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토지생산성이 완만하게 상승한다는 차원을 결코 넘지 않은 시기였음을 의미하는 것이라 하겠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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