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Ⅱ. 상업
  • 3. 화폐의 유통
  • 2) 저화·동전 유통정책
  • (2) 화폐의 유통 보급방법

(2) 화폐의 유통 보급방법

앞에서 조선정부가 건국 초기에 포·미 등 물품화폐 유통체제를 극복하고 저화나 동전을 법화로 유통 보급시키기 위해 시도한 화폐 유통정책의 추진경위를 대강 살펴보았다.

그러면 그 당시 조선정부는 어떠한 방법으로 저화나 동전을 공·사 유통계에 유통 보급시키려 하였는가. 다음에서는 정부당국이 시도했던 화폐의 유통 보급방법으로서 어떠한 것이 채택 실시되었는지를 대강 살펴보고자 한다. 저화의 유통 보급방법과 동전의 그것과는 부분적인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공통되는 것이라 생각되기 때문에 저화나 동전의 유통 보급방법을 구분해서 논급하지는 않겠다.

첫째, 조선정부는 저화나 동전 등 명목화폐를 법화로 유통 보급시키기 위한 조치로서, 먼저 일반 민중이 보다 쉽고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저화와 동전을 중앙과 각 지방으로 반급하였다. 정부당국이 저화나 동전에 법적 통용력과 경제적 신용을 부여하여 중앙과 각 지방으로 반급하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었다. 즉 중앙 및 지방관청에서 저화와 동전을 일반 민중에게 포·미 등과 교환해 주고, 관리녹봉의 일부를 화폐로 지불하며 煙戶米를 화폐로 환산해서 지급하였다. 또한 화폐로써 정부당국이 수용한 민간재산을 보상하고, 국가에서 필요로 하는 물품을 구매하며, 각종 보상에 화폐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이상과 같이 저화나 동전을 중앙과 각 지방으로 반급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이 모색 시도되었으나 적절한 시기에 적당한 수량의 화폐가 반급되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은 저화와 동전을 법화로 유통 보급시키는데 저해적 요인이 되었다.0234)李鍾英, 위의 글.
田壽炳, 앞의 글.
元裕漢, 앞의 글(1982).

둘째, 조선정부는 포·미 등 물품화폐와는 달리 저화나 동전이 실용가치가 전제되어 있지 않은 일종의 명목화폐라는 점에서, 마땅히 법적 통용력과 경제적 신용을 부여하여 그것이 계속 통용될 수 있는 법화로서의 유통가치를 보장해야만 하였다. 화폐의 유통 보급을 위한 이와 같은 조치로 저화나 동전의 통용 초기에는 가장 적정하다고 생각되는 화폐 유통가치를 포·미 등 물품화폐에 비정하였고, 또한 화폐 유통가치가 하락하게 될 경우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화폐의 兌換力 내지 공신력을 강화하여 화폐 유통가치를 유지 보장시키려 하였다. 즉 정부당국은 화폐의 태환력 내지 공신력을 강화시킴으로써 그 유통가치를 유지 보장하기 위해 정부가 소유한 미·두·포·잡물 등을 시가에 따라 화폐로 환산하여 일반 민중에게 방출하는 한편, 일반 유통계에 화폐유통량이 부족할 때 민간소유 잡물을 화폐로 구매하였다. 또한 같은 목적에서 화폐의 품질악화를 막기 위해 파손된 화폐를 새 것으로 교환해 주고 화폐의 위조행위를 엄벌했으며, 국가가 규정한 화폐 유통가치대로 상품거래를 하지 않고 화폐 유통가치를 자의로 변경 조절하는 자를 엄벌하기도 하였다. 정부당국이 화폐 유통가치를 유지 보장하기 위해 취한 조치들은 조선 후기에는 물론 고려시대의 화폐정책 추진과정에서도 시도되었던 것이다. 이상의 조치들 가운데 특히 정부 소유 각종 물자를 방출하는 것은 방출물자의 수량이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일시적인 방편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하여 법화인 저화나 동전을 유통 보급시키기 위해 정부 소유의 각종 물자를 방출하고 화폐의 태환력 내지 공신력을 강화하여 그 유통가치를 유지 보장하려는 조치도 기대한 성과를 거둘 수 없었다.

셋째, 조선정부는 각종 세납의 화폐화를 통해서 저화나 동전을 법화로 유통 보급시키려 하였다. 그리하여 정부당국은 巫女業稅, 匠人稅, 行商稅, 座商稅, 京中家基稅, 魚稅, 船舶稅, 科田·功臣田·寺社田稅, 奴婢身貢, 時方雜貢, 地方官廳歲貢 및 納贖 등을 저화나 동전으로 징수하고자 하였다. 화폐를 유통 보급하기 위해 각종 세납을 화폐화하는 조치는, 국가의 공권력을 배경으로 하여 추진되는 것이기 때문에 합리적이고 점진적으로 시행할 수 있다면 비교적 빠른 성과를 기대할 수 있는 화폐의 유통 보급방법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화폐의 유통 보급방법은 일반 민중이 국가에 세납할 저화나 동전을 마련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진 연후에 성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일반 민중은 세납의 부담도 무거운 데다가 세납할 화폐를 마련하기 위한 어려움까지 겹쳐서 정부당국을 원망하게 되는 등, 여러 가지 사회경제적 모순과 폐단을 불러 일으키게 된다. 이와 같은 현상은 동전을 법화로 유통 보급시키기 위해 화폐정책이 적극 추진된 조선 후기에도 흔히 일어나고 있었다.

넷째, 조선정부가 포·미 등 물품화폐 유통체제를 극복하고 저화와 동전을 법화로 유통 보급시키려는 데 화폐정책의 목적이 있었던 만큼, 저화나 동전의 유통 보급방법으로서 포와 미, 특히 포화의 통용을 금지하려 했던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 할 것이다. 정부당국이 엄벌로써 포화의 통용을 금지해 보았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하게 되자 포 생산 자체를 금지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저화나 동전의 유통 보급방법으로서 포 생산의 금지를 시도해 보았지만 역시 실패하자, 시중의 포를 매입하여 여러 조각으로 잘라서 민중에게 나눠줌으로써 물품화폐인 포화는 영구히 통용하지 않는 동시에 저화를 법화로 사용하겠다는 정부당국의 정책적 의지를 민중에게 인식시키려 하였다. 그러나 이같은 조치는 재정손실을 가져올 뿐만 아니라, 사회 경제발전에 따른 자연발생적 포화 유통형상을 정책적으로 억제하기는 힘든 일이었기 때문에 일시의 정책적 의지의 발로에 그쳤던 것이다. 조선 후기에도 동전을 법화로 유통 보급시키기 위해 화폐정책을 적극 추진하는 과정에서, 동전유통 보급방법으로 일반 유통게에서 유통되고 있는 포화의 통용금지가 시도된 일이 있었다.

다섯째, 조선정부는 소극적이긴 했으나 저화나 동전을 시중의 상업거래에 교환매개로 사용케 함으로써 일반 민중의 화폐가치 인식을 증진시키는 등, 보다 본질적이고 기초적 화폐의 유통 보급방법을 채택 시도하였다. 한 예를 들어보면, 모든 상점에서는 매매거래에 교환매개로서 저화와 포화를 각각 절반씩 사용할 것이며, 판매자가 저화를 소지하고 있지 않았거나 매입자가 저화를 받으려 하지 않을 경우에는 거래된 물건을 관청에서 몰수한다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화폐유통 보급방법은 조선 후기는 물론, 고려시대에도 동전 등을 법화로 유통시키기 위해 화폐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채택 시행된 일이 있다. 조선 후기에는 상거래를 통해 동전을 유통 보급시키겠다는 정책적 의지가 더욱 커져서 기존의 상업시설을 이용하려는 데 그치지 않고, 상설 점포를 신설하여 상거래를 활성화시키자는 주장이 제기되기에 이르렀다.

여섯째, 조선정부는 저화나 동전을 법화로 유통 보급시키기 위해 布貨의 통용을 엄벌했듯이, 국가의 화폐유통을 보급규정에 따라 화폐를 사용하지 않는 자를 엄벌하였다. 화폐의 사용을 기피하는 자에 대해 ‘直行囚禁’한다던가, 또는 ‘廣示警衆’한다는 기록을 보면 정부당국이 얼마나 형벌 위주의 화폐 유통정책을 쓰고 있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화폐의 유통가치를 유지 보장하기 위해 일반 민중이 국가가 규정한 화폐 유통가치대로 상품거래를 하지 않고 자의로 화폐 유통가치를 변경 조절하는 자를 엄벌에 처하기로 하였다.

이처럼 정부당국은 조선 초기에 저화나 동전을 법화로 유통 보급시키기 위해 화폐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그 당시 제반 사회생산력이나 상품·교환경제의 발전수준을 감안하여 국가의 화폐정책에 대한 민중의 신뢰를 두텁게 하고 민중의 화폐가치 인식을 증진시키는 데 힘쓰기 보다는, 대체로 금지나 처벌을 중심으로 하는 행정주도 내지 형벌 위주의 화폐유통방법을 채택 실시하였던 것이다. 이상의 사실은 새왕조 초기에 중앙집권적 지배체제를 적극 추진하고 있던 정부당국의 강력한 정치의욕이 그 당시의 화폐정책 운용에 반영된 것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 같다.0235)위와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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