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Ⅱ. 상업
  • 3. 화폐의 유통
  • 5) 화페 유통정책의 실패 원인

5) 화페 유통정책의 실패 원인

화폐사 발전과정에서 볼 때 명목화폐제의 도입시도기(10세기 말∼16세기 말)의 후반기(14세기 말∼16세기 말)에 해당하는 조선 초기의 화폐 유통정책 시행과정을 대강 살펴보았다. 그러면 조선정부가 칭량금은화의 통용이 금지되어 있던 조선 초기에 포·미 등 물품화폐 유통체제를 극복하고 저화나 동전을 법화로 유통 보급시키기 위해 의욕적으로 추진한 화폐 유통정책이 시행착오를 거듭하다가 결국 실패하게 된 원인은 어디 있는 것인가. 다음에서 조선 초기 화폐 유통정책의 실패 원인 몇 가지를 간략히 살펴보기로 한다.

첫째, 조선 초기의 제반 사회생산력과 상품·교환경제발전은 미숙한 단계에 있었기 때문에 거의 실용성이 없는 저화나 동전 등 명목화폐를 수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 당시 사회생산력과 상품·교환경제 발전이 위축된 것은 조선정부가 중농억말정책을 적극 추진하고, 쇄국정책으로 대외무역이 억제되었으며 한·수해로 흉년이 자주 들었다는 사실들이 주요 원인이 되었던 것 같다. 그리하여 일반 민중의 화폐가치 인식은 저화나 동전은 추워도 입을 수 없고 주려도 먹을 수 없는 것으로 보는 수준이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둘째, 조선 초기 화폐 유통정책이 실패한 또다른 중요한 원인은 자연스러운 화폐경제 내지 상품·교환경제 발전과정에 필요한 칭량금은화 통용을 금지하고 그 원료생산도 통제하였다는 사실이다. 조선정부는 금은이 국내에서 생산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明에 대한 금은 歲貢을 면제받았기 때문에 국내외의 상업거래에 칭량금은화 통용을 금지하고 금은광의 개발을 통제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는 달리 고려시대에도 그러했지만 왜란 이후 칭량은화의 통용을 허용한 사실은 조선 후기 상품·화폐경제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던 것이다.

셋째, 조선정부는 저화나 화폐원료의 부족과 기술인력의 동원난으로 적당한 시기에 필요로 하는 수량의 화폐를 만들 수 없게 되었고, 이것은 조선 초기 화폐 유통정책 실패의 한 원인이 되었다. 특히 동전원료의 주종을 이루는 동은 조선정부의 일관된 광업개발 소극화정책으로 말미암아 국내 생산이 부진하여 거의 일본동의 수입에 의존해야 했기 때문에, 원료의 공급난은 더욱 심각했던 것이다. 동전 주조기술의 미숙성과 함께 동전 주조기술 인력의 동원난 역시 화페의 주조 내지 화폐 유통적책 추진과정에 적지않은 저해요인이 되었던 것 같다. 17세기 말에 동전, 즉「常平通寶」가 법화로서 유통기반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당시에 비교적 다량의 일본동을 수입하여 화폐원료로 충당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넷째, 조선 초기의 화폐 유통정책이 실패하게 된 직접적이고 중요한 원인은 화폐 유통정책 자체의 모순성과 그 운용이 불합리하였다는 점에 있다. 그 당시 화페 유통정책의 모순성과 운용의 불합리성으로서는 대개 다음의 몇 가지 사실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민중으로 하여금 국가의 화폐 유통정책을 신뢰하게 하고, 화폐는 사용에 편리하다는 인식을 가지게 하는 데 소홀하였다. 자연발생적인 상인 내지 상업조직을 통해 화폐를 유통 보급시키기 보다는, 징세의 화폐화를 과도하게 추진해 급진적으로 화폐를 유통 보급시키고자 하였다. 그리고 국가가 화폐 유통정책을 시행한 보다 중요한 목표가, 제반사회생산력과 상품·교환경제를 증진시키는 것보다는 중앙집권적 지배체제의 정비과정에 소요되는 재정을 조달하려는 데 있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화폐 유통정책을 운용함에 있어서 그 당시 사회경제적 현실에 알맞도록 순리적이고 점진적으로 화폐를 유통 보급하려는 방향이 아니라「금지」또는「엄벌」위주의 방법으로 화폐를 유통 보급시키려 하였다.

요컨대 대체로 이상에 열거한 몇 가지 사실로써 그 성격이 특징지워지는 조선 초기의 화폐 유통정책은 정책담당자들의 비현실적으로 높은 기대치와 그 당시 사회의 화폐수용력과의 격차를 합리적이고도 점진적으로 극복하지 못한 채 마침내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조선 초기에 포·미 등 물품화폐 유통체제를 극복하고 저화와 동전을 법화로 유통 보급시키려 했다는 역사적 사실은 조선 후기에 동전을 유통 보급시키기 위해 화폐 유통정책을 입안하고 운용하는 과정에서 생생한 역사적 선례로서 참고 활용되었다. 또한 고려시대에 통용하던 화폐가 조선 초기의 일부지역에서 잠정적으로 통용된 일이 있듯이, 조선 초기에 주조된 동전이 조선 후기에 그대로 통용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조선 초기의 화폐 유통정책이 실패를 거듭했다고는 하지만, 저화나 동전의 통용을 시도했을 때마다 제반 사회생산력과 상품·교환경제 발전을 자극하게 되고, 일반 민중의 화폐가치 인식은 높아졌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상 조선 초기의 화폐 유통정책이 그 후기에 미친 영향은 조선 후기 사회의 명목화폐 수용력을 증진시켜 마침내 17세기 70년대 말부터 동전, 즉「상평통보」가 국가의 유일한 법화로서 확대보급되는 데 기여하게 되었다.

<元裕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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