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Ⅱ. 상업
  • 4. 무역
  • 6) 대외무역의 성격

6) 대외무역의 성격

이상에서 조선 초기에 명·여진·일본·유구 등에 대해 사대교린외교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각 나라와의 무역실태를 대강 살펴 보았다. 이같은 고찰을 통해 조선 초기 대외무역의 성격 내지 역사적 의의로 대개 다음 몇 가지 사실을 지적할 수 있을 것 같다.

일반적으로 한국의 근대적 국제무역이 1876년 개항 이후에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면, 조선 초기의 대외무역은 당연히 폐쇄적이고 소극적이 성격을 특징으로 하는 중세적 무역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조선 초기의 대외무역은 당시 봉건정부가 쇄국정책을 고집하고 중농억말정책을 실시하여 사회생산력과 상품·교환 경제발전이 둔화된 상황에서 추진한 것이었기 때문에 고려시대에 대외무역에 비해 주목할 만한 발전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 초기에 봉건정부가 새 왕조의 중앙집권적 지배체제를 정비 확립하는 데 필요한 국제관계의 안정을 위해 사대교린외교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하나의 외교적 의례로서 대외무역을 추진하였다. 그러므로 조선 초기에 명·여진·일본·유구 등과의 사이에 이루어진 대외무역의 동기 내지 성격은 기본적으로 무역외적인, 즉 사대교린을 지향하는 외교적 요인에 의해 규정지어졌다 할 것이다. 이와 같은 경향은 조선과 명 사이에 조공과 賞賜의 형태로, 또한 조선과 여진·일본과의 사이에 回賜와 進上형태로 이루어지는 관무역의 경우에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었다. 그러나 사행에 의해 이루어지는 사무역과 양국 상인들 사이에 은밀히 이루어지는 잠무역에서는 경제적 이득 추구에 몰두하는 등 무역거래의 동기 내지 성격이 거의 외교외적인 경제적인 면에 치중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 초기의 대외무역의 동기 내지 성격이 경제외적인 외교적인 면에 치중되어 있었거나, 외교외적인 경제적인 면에 치중되어 있었던 간에 상호무역 거래의 결과에 대한 경제적 득실을 따져 보게 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앞에서 논급한 바 있듯이 주로 생산재 내지 자본재를 수출하고 소비·사치품 중심의 물품을 수입하는 명과의 무역거래에서 조선은 경제적 손실을 감수해야만 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조선은 주로 생활 필수품이나 생산기구 등을 수출하고 모피류 등 조잡한 천연산물을 수입하는 여진과의 무역거래에서도 경제적 손실을 입게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대체로 생활필수품 등 소비·사치품을 수출하라고 각종 생산재 내지 자본재를 수입하는 일본과의 무역거래에서는 조선측에서 경제적 이득을 취할 수 있었다. 이 밖에 유구와 남만과의 교역은 거래가 빈번하지도 않고 규모도 작았기 때문에 조선측은 그들을 후히 대접한다는 입장에서 수동적으로 무역에 임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요컨대 조선 초기 대외무역의 경제적 득실을 확실하게 따져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조선 초기의 대외무역, 즉 명·여진·일본·유구 등과의 무역거래는 봉건정부가 개국 초에 표방한 사대교린외교를 적극 추진하여 주변국들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을 주었고, 또한 선진외래문물을 수용하여 완성단계의 민족통일국가체제에 상응하는 집권적 조선왕조의 통치기반을 확립하는 데 기여했다 할 것이다.

<元裕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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