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Ⅳ. 국가재정
  • 8. 역
  • 2) 국역

2) 국역

임시적인 역이라 할 요역은 戶내 불특정 인정을 동원하는 것인데 비하여, 항구적인 역이라 할 국역은 개별적으로 파악된 인정을 대상으로 특정한 公役을 부과하는 것이었다. 국역은 身役이며, 신역에는 군역과 직역(定役)이 있었다. 신역은 신분에 따라 良役과 賤役의 구별이 있고, 신역 중 군역은 신역의 중심적인 것으로 양인이 부담하였기 때문에 이를 양역이라 했다.

신역의 일종인 직역은 중앙 및 지방관아의 행정실무를 비롯하여 모든 잡역에 항구적으로 종사하는 역이다. 중앙에서 이러한 역을 담당하는 자로는 錄事·書吏 등의 京衙前을 비롯하여 諸員·皂隷 등 말단 사무담당자, 杖首·螺匠 등 사법·경찰 잡무 담당자 그리고 伴倘·丘史 등 관원 수종 담당자 등이 있었다. 지방에는 행정실무를 맡는 향리와 군사실무를 맡는 軍校가 있었다. 특히 향리는 지방관아에서 세습적으로 행정실무를 담당하여 鄕役이라 하였다. 그리고 지방에 있는 院·館의 院主와 館主, 역의 역리, 渡·津의 津夫와 水夫, 漕倉의 漕軍, 목장의 牧子, 봉수대의 烽軍 등도 공역에 종사하는 직역 부담자였다. 천인은 공천의 경우 입역을 하거나 노비신공을 바쳤는데 이것이 공역으로서 국역의 일단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사천의 경우는 그 상전에 대하여 사적으로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이므로 국역이라 할 수 없다.

양반의 경우에 현직관료가 별도의 국역을 부담할 필요는 없었다. 그들의 관직 자체가 신역과 상쇄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또 관료가 되기 위하여 학업에 종사하는 과정인 성균관과 향교의 유생도 역이 면제되었다. 그 밖에 3품 이하 전직 관료 등 양반에게는 원칙적으로 국역의 부담이 지워졌으며, 그 구체적 내용은 군역이었다. 그러나 당초 벼슬과 연결된 이들은 일반 양인이 지는 군역과는 다른 차원에서 군역을 부담하는 경우가 많았다. 뒤에 군역이 등질화되어 양반도 제도상 일반 군역 부담자가 된 때가 있었지만, 실제로는 이를 피하고자 하는 수가 많았다. 한편 왕족·공신을 비롯하여 양반 상층부의 경우에는 군역 부과와 관료로의 진출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도록 특수 兵種에 의한 관직이 주어졌다.

군역의 부과는 그 대상자의 신분에 따라 차이가 있었으니, 그것은 병종에 따라 우열관계로 나타났다. 병종은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구별할 수 있어, 양인의 의무 병종과 武藝 試取로서 선발된 직업군인 그리고 특권층 자손에 대한 특전으로 편성된 병종 등이 그것이다.

군역 부담자 중에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양인의 의무 병종인 正兵과 수군이었다. 정병은 건국 초 이래의 侍衛軍(牌)으로서 세조 5년(1459)에 정병으로 개칭되었으며, 세조 10년에는 각 지방의 營·鎭軍이 정병에 합속되었다. 서울에 번상하는 일반 정병과 지방군인 留防正兵의 구분은 이와 같은 배경에 기인한 것이다. 수군은 건국 초 이래의 船軍 또는 騎船軍이≪경국대전≫편찬 당시에 수군으로 일컬어지게 되었다.

무예의 시취로서 선발되는 직업군인은 양반 자제가 다수 소속되는 병종으로, 갑사를 비롯하여 別侍衛·親軍衛·兼司僕·內禁衛·宣傳官 등을 들 수 있고 양인으로 구성되는 破敵衛 등의 병종도 이에 속하였다.

특수층 자손에 대한 특전으로 편성된 병종으로 공신자손을 입속시키는 忠義衛와 忠贊衛, 고위 관직의 자손을 우대하기 위한 忠順衛 등이 있었다. 그 밖에 身良役賤者 중 일부는 從良의 전제로서 보충대에 입속하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조선 초기의 병종은 신분에 의하여 구분되었고, 병종 자체는 그 신분관계를 더욱 세분하는 것이기도 했다. 당시에 병종을 구분하는 것은 신분이었고, 또한 군역 부담에서 다시 그들의 신분이 세분화되었다. 예를 들면 신량역천의 신분이었기 때문에 防牌는 활과 칼 대신에 괭이와 삽을 드는 병역 아닌 役軍이라는 병역을 졌으며, 그가 역군인 방패라는 병역을 지는 데에서 그의 신분을 신량역천 중의 세분된 방패라는 신분이 되었던 것이다.

≪경국대전≫의 반포 직후인 성종 6년에 보고된 전국의 병종별 군정의 수를 도표화하면<표 1>과 같다.0828)≪成宗實錄≫권 59, 성종 6년 9월 갑인.

병 종 군 정 병 종 군 정
甲 士
別 侍 衛
破 敵 衛
彭 排
隊 卒
吹 螺 赤
14,800
1,500
2,500
5,000
3,000
640
大 平 簫
親 軍 衛
正 兵
水 軍

60
40
72,109
48,800

148,449

<표 1>성종 6년 전국 병종별 군정의 수

<표 1>에서 양인의 의무병종으로서 육군인 정병이 72,109명, 해군인 수군이 48,800명으로 합계 120,909명이나 되어 전국 군정의 수 148,449명 중 약 81%를 차지하고 있다. 試取에 의한 병종인 갑사·별시위·파적위·팽배·대졸·친군위 등은 일종의 직업군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전문적 무사는 아니고 별도의 생활기반을 갖고 있었다.

시취에 의한 병종도 신분적 토대 위에서 이루어졌으며, 그들의 복무도 군역부과의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즉 갑사·별시위 등의 병종은 각각 응시자의 자격을 규정하고 있었던 바, 그 내용은 경제적 요건과 신분의 제한이 중요한 골자를 이루고 있었다. 갑사와 별시위는 대체로 양반자제를 그 시취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데 비하여, 파적위는 양인 중에서 뽑고, 팽배·대졸 등은 신량역천층에서 뽑았다. 이들은 모두 번차에 의해 일정 기간씩 교대로 番上근무를 하였고, 대체로 保人이 지급되었으며 진관별로 군적에 등록되었던 것이다.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