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Ⅵ. 도량형제도
  • 1. 옛 도량형 제도
  • 1) 상고의 도량형제도
  • (4) 상고의 도량형

가. 척도

앞에서 밝힌 바와 같이 상고 때 標準尺 길이는 장년 남자의 10지폭이었는데, 조선 세종 때까지 전해진 下田尺을 기준으로 한다면 그 길이는 19.42㎝가 된다. 이 길이는 주공의 주척 19.496㎝보다는 조금 짧다. 또 기전이 개설된 당시부터 표준 관척이 되었을 기전척인 고구려척은 35.510㎝이다. 이 기준척을 量器尺으로 하여 만들어졌을 고려 문종 때의 米斛量器를 세종 때의 표준량으로 환산한다면 35.498㎝의 길이가 되는데, 이러한 차이는 실측 과정에서 생길 수 있었던 오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그 두 가지 길이를 평균했을 때 기전척은 35.504㎝가 되므로 원래의 기전척 길이를 35.510㎝로 보고자 한다. 삼국은 이 척도를 똑같이 관척으로 사용하였는데, 여러 유지와 유물의 실측에서 확인되고 있다. 즉 통일신라 때 건조된 경주 불국사 다보탑의 실측에서는 35.52㎝ 길이로 밝혀졌으며, 백제의 목수들에 의하여 건조된 일본 四天王寺의 실측에선 35.576㎝였던 것으로 밝혀진 바 있다.1018)藤田元春,<四天王寺と法隆寺の地割の差>(앞의 책), 429쪽.

이 밖에 서울 방이동의 백제 석실고분의 석실은 길이 23.25㎝의 王莽尺의 신장척으로 볼 수 있는 척도로써 만들어졌고, 또 武寧王陵은 20.81㎝ 길이의 주척으로 보아야 할 척도로써 만들어졌음이 밝혀져, 고구려척 이외의 척도들도 중국에서 도입하여 사용하였음이 확인되고 있다. 한편 人身尺으로 보아야 할 한 발[尋], 한 길, 한 걸음폭 등도 길이 측정의 기준으로 사용되어 상고 때의 인신척이 근세까지도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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