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Ⅵ. 도량형제도
  • 2. 세종조의 도량형 통일
  • 4) 형량 통일과 형량표준기 황종률관

4) 형량 통일과 형량표준기 황종률관

신라 문무왕 때 제정된 衡量制度는 고려를 거쳐 세종 때까지 전수되었다. 세종 3년에 공조에서는 보존하고 있던 저울을 기준으로 하여 다량의 저울을 새로 만들어 전국에 공급함으로써 衡量을 통일하였다.1036)≪世宗實錄≫권 13, 세종 3년 8월 18일 및 권 18, 세종 4년 12월 29일. 후일 朴堧에 의하여 雅樂의 기본음과 12음률을 제정하기 위해 黃鐘尺이 만들어졌다. 즉

단위명 중량(그램) 비고 단위명 중량(킬로그램) 비고
黃鐘律官容
水 88分
35.307 黃鐘律官容積
35.320㎤
小稱 0.642 1斤
1分 0.4012   1.926 3斤
1錢 4.0122   中稱 4.494 7斤
1兩 40.1218   19.258 30斤
1斤 641.946   大稱 64.195 100斤
1貫 4012.2  

<표 6>세종대 衡量의 크기

≪律呂新書≫의 기록을 바탕으로 하여 황종척으로 길이 9寸, 內徑 3分 4釐 6毫의 黃鐘律管을 만들어 거기에 물을 가득 채우고, 그 물의 무게를 표준저울로 88分이 되게끔 실측하여 이로써 저울추를 만들어 형량의 표준으로 삼게 하였다.1037)≪經國大典≫권 16, 工典 度量衡. 따라서 세종 때의 황종율관은 그 당시 음악의 기본음의 기준이었을 뿐만 아니라 형량의 표준 原器로 삼았음을 알 수 있다. 앞의<표 6>은 위에서 살핀 세종대의 형량을 정리한 것이다.

<朴興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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