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5. 양인
  • 1) 양인의 개념
  • (1) 양인의 범주

(1) 양인의 범주

 조선사회는 흔히 兩班-中人·庶孼·吏胥-平民(常人)-賤民의 4분법적인 구조를 가진 것으로 설명되어 왔다. 조선 초기에 양반은 본래의 뜻 그대로 문·무반의 합칭으로 사용되고 있었고 중인은 용어 자체가 성립되어 있지 못했다. 그러나 시기적 차이를 무시하고 조선시대 전체를 통틀어 말한다면 이러한 설명에 큰 잘못은 없다. 문제는 오랫 동안 많은 연구자들이 마치 이러한 집단들이 상이한 법제적 지위를 가지면서 수직적인 서열을 이룬「신분」집단 들이었던 것처럼 취급하여 온 데에 있다. 이를테면 입증되지 않은 사실을 전제로 양반을 일종의 세습귀족처럼 간주한 것이 그것이다.

 그 동안 조선사회의 연구성과가 축적되면서 양반이 배타적으로 향유한 특권으로서 거론된 것들이 실상 법제적으로 인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하나 둘씩 밝혀지게 되었다. 예컨대 오직 양반만이 과거를 볼 수 있거나 관직을 차지할 수 있게 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었으며252) 金錫亨,≪朝鮮封建時代農民の階級構成≫(末松保和·李達憲 공역, 學習院 東洋文化硏究所, 東京, 1960)은 평민도 양반처럼 과거에 응시할 수 있고 관직에 나갈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실제로 관직에 진출한 자가 있었음을 지적한 점에서는 선구적이었지만 이러한 사실에 대하여 큰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았다. 평민을 비롯한 다양한 성분의 사람의 과거 합격 사례를 찾아 내고 그 의미를 적극적으로 평가하면서 기존의 통설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한 연구로서는 Choe Yong-ho, Commoners in Early Yi Dynasty Civil Examinations :An Aspect of Korean Social Structure, 1392-1600, Journal of Asiatics Vol. 33. No.4, 1974 및<朝鮮王朝 前期의 科擧와 身分制度>(≪國史館論叢≫26, 국사편찬위원회, 1991)가 대표적이다. 법제상의 과거 응시규정을 면밀하게 분석하여 양인의 과거 응시에 아무런 법제적 제약이 없었음을 입증한 연구로서는 宋俊浩, <朝鮮時代의 科擧와 兩班 및 良人(1)-文科와 生員進士試를 중심으로 하여->(≪歷史學報≫69, 1976)가 있다. 양반이라 하여 군 역이 면제되게 되어 있었던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253) 이러한 사항을 분명히 지적한 것은 閔賢九, <社會構成과 軍役制度의 整備>(≪韓國軍制史-近世朝鮮前期篇-≫, 陸軍本部, 1968;≪朝鮮初期의 軍事制度와 政治≫, 韓國硏究院, 1981)이다. 양반만이 관인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양반이라 하여 모두 관인이 되는 것도 아닌 이상 관인에 대한 예우나 토지·녹봉의 지급, 군역 면제를 양반이라는 신분에 주어지는 특전으로 간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또 기술직에 진출한 자가 일정한 품계 이상 오를 수 없게 되어 있다 하여 이를 중인에 대한 신분적 차별로 취급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사실도 지적되었다.254) 韓永愚, <朝鮮前期의 社會階層과 社會移動에 관한 試論>(≪제7회 東洋學學術會議座談會鈔≫, 檀國大, 1977;≪朝鮮前期 社會經濟硏究≫, 乙酉文化社, 1983). 이들이 일반 문반에 비하여 대우가 떨어짐을 알면서도 자의로 문과보다 쉬운 시험인 잡과를 선택하여 양반 이 기피하는 기술직에 진출하고 그 결과 일반 문반보다 낮은 대우를 받게 되었다면 이는 서얼이라 하여 애당초 문과에 응시하지도, 문반으로 나아가지도 못하게 하면서 일정 품계 이상을 오를 수 없도록 규정한 限品敍用과는 전혀 그 성격을 달리하는 것이다. 종래의 신분제에 대한 설명은 이처럼 그릇된 사실이나 신분 징표가 될 수 없는 사항을 논거로 하여 양반과 중인을 마 치 하나의 독립된 세습신분처럼 취급하였던 것이다. 결국 조선시대에 존재 한 양반이나 중인은 어디까지나 현실상의「계층」으로 다루어야 할 성질의 집단이지 법제상의「신분」으로 다룰 집단은 아니었던 셈이다.

 이러한 점에서는 평민과 천민도 마찬가지이다. 각기 현실상의 평범한 보통 사람과 사회적으로 천시되는 사람을 가리킬 뿐이다. 그러나 良人이나 賤人 은 이와는 전혀 다르다. 이제까지 적지 않은 연구자들이 평민과 양인, 그리 고 천민과 천인을 대동소이한 것으로 보아 양반·중인·양인·천인으로 대 비시켜 왔다. 그러나 조선 초기의「양인」이란「천인」과 대칭적으로 설정된 법제적인 신분규범이었다. 후술하는 바와 같이 양인과 천인은 권리·의무상으로 뚜렷한 차등이 지워져 있었으며 그 지위는 혈통에 따라 세습되도록 되 어 있었다. 조선 초기의 양인·천인은 명백한 신분집단이었던 것이다. 따라 서 평민이나 천민은 양반이나 중인과 대칭적으로 설정할 수 있어도 신분과 계층이라는 범주상의 차이를 무시하고 양인·천인을 양반·중인과 대칭적으로 설정할 수는 없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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