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시에 곡물을 비축했다가 흉년이 들었을 때 가난한 백성에게 대여해 생업에 종사케 하거나 기민을 구제하던 진휼기구이다. 조선은 태조 원년(1392) 에 고려의 제도를 답습하여 의창을 설치 운영하였다. 그 기원은 고구려 故 國川王 때의 賑貸法이라 하며, 고려에서는 태조가 黑倉을 설치했고 성종 5년 (986)에 義倉으로 개칭 확대되었다. ≪경국대전≫에 “軍資倉은 別倉을 설치하 여 잡곡을 많이 비축했다가 춘궁기에 백성에게 대여하고 추수기에 그 본 수 만 받아들인다”라고 규정하였다. 그러나 뒤에는 대여 업무의 수수료와 자연 소모량 등의 원곡 손실을 보완하기 위하여 10% 정도의 이식을 징수하게 되었다.
조선 초기의 의창은 그 범위가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운영도 활발하였다. 그러나 각 군현에 설치된 의창의 원곡의 확보가 어렵게 되자 문종 2년(1452) 에 별도로 사창을 설치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의창의 본래 목적과는 달리 점차 만연되어 가는 폐단을 막을 수가 없게 되어 중종 20년(1525)에는 이를 폐지하고 그 사업을 진휼청에 통합하였다.622)≪經國大典≫권 2, 戶典 軍資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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