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 의료제도
  • 1) 의료시책
  • (5) 전문의의 양성

(5) 전문의의 양성

 조선 초에는 의학의 발달과 새로운 의료정책의 시행으로 전문의가 나타나게 되었다. 그 최초의 전문의는 침구의로서 세종 15년(1433) 전의감 제주 黃子厚가 鍼灸專門法의 설치를 건의하였고648)≪世宗實錄≫권 60, 세종 15년 6월 임오. 5년 후인 세종 20년에 침구전문생 3명을 서용하여 3의사에 배치하는 것으로써 시작되었다.649)≪世宗實錄≫권 80, 세종 20년 3월 경자. 그러나이 침구전문법은 세조 때까지 치폐를 거듭하다가, 성종 3년(1472) 이 법을 특별히 설치하여 四孟朔 取才 때에 과목을 나누어 시험함으로써 침구전문의 제가 성립되었다.650)≪成宗實錄≫권 16, 성종 3년 3월 경술.

 다른 전문의로는 나력의가 있었다. 이것은 연주창(주로 결핵성이었을 것임) 을 전문으로 치료하는 의원으로서 제생원에 속해 있었는데,651)≪世宗實錄≫권 62, 세종 15년 11월 계묘. 뒤에 제생원 이 혜민국에 합속되었을 때 혜민국에 前銜·權知와 나력의 권지가 69명이나 있었던 것으로 보아 전문의로서의 나력의가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끝으로 외과의인 치종의가 있었다. 이것은 종기를 전문으로 치료하는 의원으로 선 조 때는 治腫廳까지 설치되기도 하였다.652)≪經國大典≫권 3, 禮典 獎勵.
≪大典後續錄≫권 4, 兵與 遞兒.
≪增補文獻備考≫권 223, 職官考 10, 典醫監 附 治腫廳.
이 외에 각종 전문의서가 편찬된 것으로 보아 산부인과·안과·치과·소아과 등의 전문의도 있었을 것이나 상고할 만한 자료가 없다.

 조선 초에는 의료기구의 기능을 강화하고 의료시혜의 폭을 넓히는 과정에 서 의정부를 비롯하여 6조·종친부·충훈부·도총부에 의원이 배속되었고, 사역원·형조·전윽서·군기감·훈련관·의금부·성균관 등과 경성 5부에 월령의가 파견되어 관리·죄수·유생 및 민간의 치료를 담당하였다.653)孫弘烈, 위의 책, 189∼191쪽. 또한 각급 군부대와 군영에 군의(수군영에는 해도의원)가 배속되어 군인의 질병을 치료하였으나, 그 중 해도의원은 세종 6년에 설치되었다가 동 18년에 폐지되었다.654)孫弘烈, 위의 책, 191∼193쪽.

 조선 초기의 의료시책은 건국 초라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3의사를 확대·개편하고, 지방에는 의원을 설치하였으며 의녀제도를 창설하고 향약을 개발·보급하여 질병 퇴치에 노력하는 등 큰 성과를 이루었다. 특히 세종대에는 전문의를 양성하고 정부내 각 기관에 의원을 배치하였으며 월령의제를 실시하는 등 획기적인 의료정책을 실시하였다. 또한≪항약집성방≫·≪의방유 취≫등 한국 의학을 대표하는 의서를 편찬함으로써 우리 나라의 의학 발전에 큰 전기를 마련하는 한편 한국 의학의 자주적 발전의 토대를 이룩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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