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 의료제도
  • 2) 의료기구
  • (4) 지방의 의료기구

가. 의료기구의 설치와 운영

 조선시대에도 지방에 의료기구가 설치되어 백성들의 질병을 치료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지방의료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 자료가 거의 없어 그 대 강만 간략하게 서술하고자 한다. 조선 최초의 지방 의료기구는 醫院이었는 데, 이 의원에서는 의생을 교육하였고 교수관에게는 또 채약정부[藥夫]를 속하게 하여 약재를 채취, 이것으로 백성의 질병을 치료하게 하였다. 그런데 그것은 태조 2년(1393) 전라도안렴사 김희선의 다음과 같은 건의로부터 비 롯되었다.

외방에는 의약에 밝은 자가 없으니 각 도에 醫學敎授 1명씩을 보내주십시오. 각 界首官마다 醫院을 설치하여 양반자제를 뽑아 생도를 삼은 다음 그 중에서 글을 알고 성품이 온후한 자를 택하여 敎導를 삼아≪鄕藥惠民經驗方≫을 익히게 하되, 敎授官이 돌아다니며 교육하게 해주십시오. 또 採藥丁夫를 교수관에게 속하게 하여 때를 맞추어 약재를 채취하게 하고, 이것으로 方文대로 약을 지어두었다가 병자가 생기면 구료하도록 하소서(≪太祖實錄≫ 권 3, 태조 2년 정월 을해).

 각 도에 배치된 醫學敎諭(태종 16년 8월 이전까지는 의약교수라 하였음)는 지방의료의 중심적 존재로서 의생교육 그리고 관리와 백성의 병치료는 물론, 약재의 채취와 건정 및 조제까지도 담당하였다. 의생은 피교육자였지만 교유를 보좌하여 민간의 질병을 치료하고 약재를 관리하는 등 지방의료의 중요한 몫을 담당하였다. 또 각 도에 1∼3명씩 배치되었던 審藥도 지방민 구료의 중요한 존재였다. 한편 전염병이 유행할 때는 이들만으로는 감당할 수가 없어 3의사의 의관이 파견되어 치료하였다. 그러나 교유 혼자서 넓은 지역을 담당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의생이 직접 치료하거나, 때로는 무격으로 하여금 병자를 구료하게 하고 이들의 巫稅나 잡역을 감면해 주기도 하였다.674)≪世宗實錄≫권 44, 세종 11년 4월 계사. 단종 즉위년(1452) 5월에는 任元濬의 건의로 諸道左右界首官이 의국을 설치하여 제약·판매하도록 함으로써675)≪端宗實錄≫권 1, 단종 즉위년 5월 계사. 지방 의료기구가 확대되었으나 그 효과는 알 수 없다. 이 외에 개성에도 대비원과 혜민국이 있었는데,676)≪新增東國輿地勝覽≫권 4, 開城府 上, 驛院·公廨. 그 조직이나 구료활동 등은 잘 알 수 없다.

 한편 동북면과 서북면에도 태종과 세종대에 토관이 설치되면서 의료의 혜 택이 미치게 되었다.677) 孫弘烈, 앞의 책, 194∼195쪽. 이곳에 설치된 의료기구와 관원을 보면 다음의<표 1>과 같다.

 지방의료의 말단은 채약인으로서, 이들은 목 이상에는 5명, 도호부에 4명, 군에 3명, 현에 2명씩 배정되어 약재를 채취하였다.678)≪經國大典≫권 4, 兵典 雜類. 채취한 약재 중 상납할 것 이외의 것은 監營에서 민간의 질병을 구료하는데 사용하였고, 일부는 청심원·소합원·보명단 등을 만들어 판매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약재의 채취 및 판매와 관계되는 것으로 생각되는 藥店679) 藥店은 고려시대에 지방에 설치되어 있던 의료기구로 藥店正·藥店副正·藥店史 등의 鄕吏가 있어 이를 관리하였다(자세한 내용은 孫弘烈, 앞의 책, 115∼116쪽 참조).도 있었던 것 같으나,680)≪世宗實錄≫권 109, 세종 27년 7월 을유. 그 실체를 파악할 수 없다.

지 역 의 료 기 구 소 속 관 원
平壤府

永興府
咸興府
慶源府
寧北鎭
鏡城府
會寧府
醫學院
大悲院
醫 學
醫學院
司醫局
掌醫局
醫學院
掌醫局
掌醫藥 : 副使·直長
掌病人
丞 1·助敎 2
丞 1
丞 1
丞 1
錄事
丞 1

<표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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