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Ⅰ. 학문의 발전
  • 2. 훈민정음의 창제
  • 4) 기원설들의 검토

4) 기원설들의 검토

 정음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구구한 억측이 있어 왔다. 그 대부분은<해례>를 보지 못한 때에 제기된 것들이어서 여기서 들어 말하기도 새삼스러운 느낌이 있다.≪훈민정음≫(해례본)의 출현으로 制字解가 그 제자의 원리를 분명히 밝혀 놓은 것을 읽은 뒤에는 다시는 그 기원이 문제될 것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근년에 와서는 이에 관한 논의가 계속되기도 하고 새로운 기원설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정음의 기원에 대해서 이미 그 창제 당시에 “古篆을 모방했다”는 설이 있었는데, 이는≪세종실록≫(권 102, 세종 25년 12월)의 기사와 최만리의 상소문에서 볼 수 있다. 상형설은≪훈민정음≫(해례본)에 처음 나타난 것으로, 정인지는 이 책의 서문에서 “象形而字倣古篆”이라 해서 두 설을 합쳐 놓았다. 이 고전설은 그 연대로 보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최만리 상소문이「字形」이라고 한 점과 정인지가 상형을 위에 놓아 그것을 기본원리로 삼고 고전을 본뜸을 부수적으로 제시한 점에 주목할 때, 이것은 글자의 모양을 구체적으로 결정하는 과정과 관련된 것으로 봄이 온당하다. 즉 입의 모양은 여러 가지로 나타낼 수 있으나 한자의 ‘口’(입구)를 택했고 이의 모양도 ‘齒’에 보이는 ‘ㅅ’을 택한 것을 가리킨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口’에 加畫한 글자가 ‘ㅂ’이 된 것도 이것이 고전에서 ‘口’(입구)자의 모양이었던 것이다.144) 李基文,<訓民正音에 관련된 몇 問題>(≪國語學≫2, 974) 참조. 그리고 위에서 지적한 것처럼<起一成文圖>의 영향도 여기에 포함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종래의 기원설 중에는 정음이 알파벳계통 문자의 모방이라는 설이 유력하였다. 梵字 기원설은 성종대에 성현이≪용재총화≫에서 “그 字體는 범자에 의하여 만들었다”라고 한 것에서 발단하였는데, 李睟光의≪芝峯類說≫(권 18)에 이르면 “우리 나라 諺書는 전적으로 범자를 모방했다”로 발전하여 그 뒤에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한편 몽고자 기원설은 李瀷의≪星湖僿說≫(권 7)과 유희의≪언문지≫에 보인다.

 현대에 와서도 몇몇 기원설이 우리 나라 학자들 사이에 있었다. 요컨대 정음이 참고한 중국의 字母法은 근원이 인도의 범자에서 온 것이요, 그 字體는 범자에 의거하여 만든 몽고자(파스파문자)의 변체라고 한 견해가 있었다.145) 李能和,≪朝鮮佛敎通史≫(新文館, 1918) 참조. 또한 위 나라의 고대문자에서 나온 것이라는 견해도 있었다.146) 權悳奎,≪朝鮮語文經緯≫(新文館, 1923) 및 金允經,≪朝鮮文字及語學史≫(朝鮮紀念圖書出版館, 1938) 참조, 그러나 고대문자의 실체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한편 우리 나라 음악서에 나오는 樂譜字들이 정음과 같음을 주장하여 樂理 기원설을 주장하기도 하였다.147) 安 廓,<諺文의 淵源>(≪朝鮮史學≫1, 1926) 참조. 정음이 서구라파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초엽의 일인데 그곳 학자들은 처음부터 정음의 외국문자 기원설에 집착하였다. 이것은 유럽 문자학의 큰 조류에서 연유한 것이다. 서구라파의 문자학은, 여러 문자는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고대문명의 발상지인 몇 군데에 국한되어 있어, 가능하다면 모든 문자가 단일 기원에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보려는 강한 경향을 지녀왔다. 이런 관점에서 정음을 보았을 때 이것이 어떤 계통을 끄는 것이냐 하는데 그들의 관심이 집중되어 온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하겠다.

 서구라파에서 정음에 대한 연구는 19세기 초엽에 아벨 레뮈사와 클라프로트 등에 의해서 시작되었는데,148) Jean Pierre Abel Rémusat, Recherches sur les langues tartares (Paris, 1820);Heinrich Julius Klaproth, Aperçu de l'origine des diverses écritures de l'ancien monde (Paris, 1826) 등 참조. 그 주된 흐름은 인도의 梵字·티벳문자·파스파문자 기원설이었다. 이런 설들의 근거는 대개 정음의 몇몇 글자와 모양이 비슷한 것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단편적 유사성으로써 정음의 기원을 논하는 것에 대한 회의가 그곳 학자들 사이에도 없지 않았다.

 최근까지도 歐美학자들 사이에 끈질기게 남아 있는 것은 파스파문자 기원설이다.149) E.R. Hope, Letter Shapes in Korean Önmun and Mongol hP'agspa Alphabets,(Oriens. Vol. 10, 1957). G.K. Ledyard는 정음 창제를 인정하면서도 파스파문자의 영향을 말하였다. The Korean Language Reform of 1446. (Dissertation, 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 1966) 참조. 일본과 우리 나라에도 이 설을 주장한 학자가 있었다.150) 服部四郞,≪元朝秘史の蒙古語を 表けす 漢字の 硏究≫(文求堂, 1946).
兪昌均,<象形而字倣古篆에 대하여>(≪震檀學報≫29·30, 1966).
이것도 단편적인 유사성이 그 주된 근거라고 할 수 있다. 이 문자와 정음 사이에는 매우 특이한 일치가 있음이 사실이다.151) 李基文, 앞의 글(1974) 참조. 그러나 이 문자는 정음처럼 음운이론에 기초를 둔 것이 아니다. 중국 음운학을 참고하기는 했지만 티벳문자를 고쳐서 만든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근래에 와서 우리 나라 일부 학자들 사이에 우리 나라의 문자생활의 전통을 중시하려는 경향이 나타나 고대로부터의 借字表記法에 나타난 한자와 정음과의 관계를 논하기도 하였다.152) 南豊鉉,<訓民正音과 借字表記法과의 關係>(≪國文學論集≫9, 1978). 그리고 이것을 고전설과 결부시키려는 시도도 있었다.153) 金完鎭,<訓民正音 制字 經緯에 대한 새 考察>(≪金哲埈博士華甲紀念史學論叢≫, 1983) 참조. 그러나 거듭 말하거니와, 정음의 창제가 한자로써 국어를 표기하려고 한 과거의 노력의 부정에서 싹텄음을 생각해야 할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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