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Ⅰ. 학문의 발전
  • 2. 훈민정음의 창제
  • 5) 훈민정음 창제의 의의
  • (1) 민족문화의 창조

(1) 민족문화의 창조

 정음의 창제는 세종의 여러 문화적 업적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것이었을 뿐 아니라, 우리 민족의 허다한 문화적 창조 중에서도 가장 빛나는 것이었다.

 선사시대에 대해서는 확실하지 않지만, 그 뒤에 이루어진 우리 나라의 주목할 만한 예술적·학문적 업적들은 하나의 공통된 특징을 보여준다. 즉 중국을 거쳐서 흘러온 또는 중국 자체에서 넘쳐온 문화의 물결이 우리 민족의 창조적 정신에 부딪쳐 높은 물마루를 이룬 예들이 많다. 불교예술이 그렇고 元曉의 사상이 그렇고 高麗靑磁가 그렇다. 정음은 이런 특징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라고 하겠다.

 위에서 지적한 것처럼, 정음 창제의 밑받침이 된 학문은 중국에서 들어와 우리 나라에서 한층 더 심화된 음운학과 문자학의 이론이었다. 그런데 이 중 음운학의 근원은 고대 인도에 있었다. 멀리 인도에서 중국을 거쳐온 학문이 우리 나라에 와서 고도로 발전되어 정음이라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된 것이다. 한편 정음의 창제에는 알파벳계통의 문자들의 충격이 있었다. 이런 체계를 세종이 택하기로 결정한 것은 당시로서는 여간 큰 결단이 아니었다. 최만리 등의 표현을 빌리면 이것은 스스로 오랑캐와 같아지려는 것이었다. 정음은 중국에서 들어온 학문과 오랑캐문화의 합류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런데 세종은 이들의 어느 것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독창적으로 발전시켜서 하나의 이상형을 추구하였다. 실로 정음은 인간이 만들 수 있는 문자의 가장 높고 가장 아름다운 체계를 실현한 것이었다.

 정음은 세종을 통해 발휘된 우리 민족의 위대한 창조력을 보여준 것으로서, 앞으로도 길이 우리 민족의 문화와 학문의 발전을 촉진시키는 원동력이 될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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