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Ⅰ. 학문의 발전
  • 2. 훈민정음의 창제
  • 6) 훈민정음과 관련된 사업들
  • (1) 언문청과 정음청

(1) 언문청과 정음청

 정음과 관련해서 종래 큰 주목을 받아온 기관으로 諺文廳과 正音廳이 있다. 언문청의 이름은 세종 28년(1446)에≪태조실록≫을 여기에 두고≪용비어천가≫에 첨입하도록 했다는 기사에 처음 보인다.157)≪世宗實錄≫권 114, 세종 28년 11월 임신. 다음으로는 세종 31년에 내린 교지에 언문청을 처음 설치했을 때 李賢老(善老)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는 말이 보인다.158)≪世宗實錄≫권 123, 세종 31년 3월 병오. 이것은 이선로가 언문청에 관여했음을 확실히 말해 주는 것인데, 그는 세종 26년 2월에≪韻會≫를 번역하기 시작하였을 때 최항·박팽년·신숙주·이개·강희안과 함께 議事廳에서 일했고, 그 뒤≪훈민정음≫(해례본)·≪동국정운≫·≪용비어천가≫등의 편찬에도 위의 사람들과 성삼문도 함께 참여한 바 있다. 이런 사실들을 종합해 보면 처음≪운회≫를 번역할 때에는 마침 그 일을 동궁이 관장하게 되어 동궁이 있는 의사청에서 일하다가 뒤에는 언문청을 따로 차리고≪훈민정음≫(해례본)·≪동국정운≫·≪용비어천가≫등의 편찬을 하게 된 것으로 추측된다.

 그런데 문종대에는 언문청이란 이름은 보이지 않고 정음청이란 이름이 보이다가 세조와 성종대에는 그나마도 보이지 않으며 중종이 반정에 성공한 뒤 일련의 개혁을 단행하였는데 그 중에 언문청을 혁파했다는 기록이 보인다.159)≪中宗實錄≫권 1, 중종 원년 6월 경신. 이로써 보면 언문청이 명목으로나마 있었던 모양이다.

 ≪문종실록≫에 처음으로 정음청이란 이름이 나타난다. 그런데 그 내용이 주목을 끈다. 첫째로 정음청을 혁파하라는 신하들의 요구에 대해 문종은 정음청이 자기가 세운 기관이 아니고 전부터 있어온 것이라고 밝혔다.160)≪文宗實錄≫권 4, 문종 즉위년 10월 무술·11월 신축. 이것은 정음청이 세종대부터 있어온 것임을 의미하는 것으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여기서 정음청이란 사실상 언문청의 다른 이름이었으리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즉 정음청이 본 이름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둘째로,≪문종실록≫의 가사에 의하면 정음청에서는 대군들이 주동이 되어 鑄字를 가지고 책을 찍어내는 일을 한 것으로 되어 있다. 실제로 나타난 것은≪小學≫의 간행이었다.161)≪文宗實錄≫권 4, 문종 즉위년 10월 무술. 신하들이 정음청은 필요 없는 기관이니 주자를 鑄字所에 돌리라고 거듭 주장하고 나선 까닭은 실은≪소학≫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印經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정음의 연구 및 보급의 본거지라는 데서 이것을 혁파하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문종은≪소학≫의 간행이 끝나지 않았음을 이유로 정음청 혁파를 미루고 끝내 응락하지 않았는데, 단종이 즉위한 후 정음청은 혁파되었다.162)≪端宗實錄≫권 4, 단종 즉위년 11월 경신.

 세조대에 언문청이나 정음청이 있었음을 암사하는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세조가 스스로 관여했던 이 기관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다만 刊經都監의 설립으로 그것을 따로 세울 필요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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