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Ⅰ. 학문의 발전
  • 4. 지리지의 편찬과 지도의 제작
  • 1) 지리지의 편찬
  • (1)≪경상도지리지≫의 편찬

(1)≪경상도지리지≫의 편찬

 세종은 태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지만 초기에는 태종의 섭정이 계속되었다. 세종은 李原·卞季良 등과 의논하면서, 동왕 원년(1419)부터 4년 사이에는 태종의 뜻에 따르지 않고 마음대로 정사를 처리한 일이 없었다. 요컨대 그 동안의 史草를≪태종실록≫에 실으면 어떤지를 물을 정도였다.342)≪太宗實錄≫권 26, 세종 6년 12월 임인. 그러므로 세종의 본격적인 치세는 동왕 5년 이후부터 시작되었다. 그 후 세종은 여러 제도를 정비하면서 지리지 편찬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즉 세종 6년에 大提學 변계량을 불러 지리지 편찬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春秋館에서는≪태종실록≫의 편찬으로 업무가 과중하니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까를 상의하였다. 변계량은 지리지와 州府郡縣의 연혁을 나누어 편찬하려는 세종이 의도는 옳지 않다고 하여, 두 가지는 나누어 작업할 수 없음을 강조하였다. 이에 세종은 변계량의 의견을 받아들여 그에게 지리지 편찬작업을 지시하였다.343)≪世宗實錄≫권 26, 세종 6년 11월 병술.

 그 이듬해에 춘추관에서는 忠州史庫에 보관되어 있는 주부군현의 연혁과 산천형세에 관한 기록을 지리지 편찬에 이용하도록 건의하였다.344)≪世宗實錄≫권 28, 세종 7년 6월 경자. 실제로≪慶尙道地理志≫의 서문에 의하면, 춘추관과 예조에 명하여 전국 주현의 歷代官號와 읍명의 연혁·이합을 조사하여 보고하도록 하였으며, 중앙에서 일정한 規式을 마련하여 그 규식에 따라 각 도에서 조사·편찬하여 춘추관에 올려내보내도록 하였다.

 한편 세종은 이미 경연석상에서 문신들에게 여러 차례 지리지 편찬사업의 중요성을 역설한 것 같다. 이러한 세종의 뜻을 받들어 춘추관과 예조는 일정한 규식을 마련하고 그에 따라 지리지를 편찬하여 올려보내도록 하였다.345)≪慶尙道地理志≫序文. 이러한 朝令에 의해서 각 도는 지리지 편찬사업에 착수하였다.

 경상도지리지의 편찬사업은 知大邱郡事 琴柔와 仁同縣監 金鑌이 주관하여 6개월이라는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에 이루어졌고, 편찬된 지리지는 춘추관으로 보내졌다. 그런데 經歷 南施智와 慶州府尹 吳公湜, 判官 鄭施介保 등이 다시 한 부를 만들어 경상도에 보관하자고 건의하였으므로, 慶尙道觀察使 河演이 이를 허락하고 부본을 만들어 경상도감영에 보관하였다.346) 위와 같음.

 이와 같이≪경상도지리지≫는 경상도감영의 독자적인 지시에 의해 편찬된 것이 아니라, 세종의 명에 의하여 예조와 춘추관의 협조로 통일된 규식을 각 도의 감영에 하달하고 그 규식에 의하여 국가에 보고용으로 편찬되었음을 알 수 있다. 경상도는 다른 도와 달리 부본을 만들어 감영에 보관하였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전해져 온 것이다. 다른 도에서도 중앙정부의 지시에 의하여 지리지를 편찬하였지만 이를 춘추관에 보내고 초고본을 남겨 놓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날 전해지지 않은 듯하다. 이렇게 보고된 8도의 지리지를 참고하여 세종 14년(1432)에 전국지리지가 편찬되었다.347)≪世宗實錄≫권 55, 세종 14년 정월 기묘. 이 전국지리지는 수결본 상태로 춘추관에 보관되다가, 단종 2년(1454)에≪세종실록≫을 편찬하면서 약간의 보완을 거쳐 그 부록으로 수록되었다. 이 지리지가 흔히 말하는≪世宗實錄地理志≫이다. 이와 같이≪경상도지리지≫는 8도지리지를 편찬하기 위하여 기초자료로 편찬되었으며,≪경상도지리지≫와≪세종실록지리지≫는 동일한 취지에서 편찬된 지리지이다. 두 지리지 사이에 약간이 차이점이 있는 것은 중앙에서 하달된 규식에 의하여 편찬되었지만, 각 지방마다 그 규식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편찬 기준이 조금씩 달라졌기 때문이다.348) 鄭杜熙, 앞의 글(1976a).

 ≪경상도지리지≫의 편찬내용을 알아보려면≪경상도지리지≫서문의 규식 및≪경상도지리지≫총론과 일반 군현의 서술 규식 등을 살펴보면 그 윤곽을 알 수 있다. 그런데≪경상도지리지≫서문에 실려있는 규식은 중앙에서 하달된 규식인 듯하며 이를 참조하여 감영에서 구체적으로 하달한 규식이 일반 군현의 서술 규식인 듯하다. 이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경상도지리지≫서문에 나타난 서술 규식>

① 여러 도와 여러 읍의 역대 명칭의 연혁 ② 부·주·군·현과 향·소·부곡의 이합 ③ 산천의 경계와 관방처 표시 ④ 산성과 읍성의 규모, 온천·소금생산지·목장·良馬소산지 ⑤ 토지의 비옥도, 기온의 차이, 풍속 ⑥ 호구·인물·토산·잡물의 수 ⑦ 조세를 운반하는 길 ⑧ 군사시설이 있는 곳, 군인수, 전함의 수 ⑨ 섬이 육지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으며 그 섬에서 농사의 유무 ⑩ 봉화대 소재처 ⑪ 本朝의 先王·先后의 능, 前朝의 태조와 명현들의 묘, 그 지방출신으로 출세한 사람, 옛날부터 전해오는 전설류

<≪경상도지리지≫총론에 나타난 서술 규식>

① 道名이 某代에는 某道라고 부르고 어느 시대에 도명을 고쳤으며 개명하게 된 사연을 아울러 적을 것 ② 도내 주·부·군·현이 타도에 이합하였던 사항을 적을 것 ③ 도내 府·牧·大都護府·郡·縣이 몇인지 적을 것 ④ 도내 명산대천과 사바의 경계, 관방처 표시 ⑤ 도의 常貢物을 적을 것 ⑥ 도내 산성·읍성이 규모, 온천·소금생산지·목장·良馬소산지 ⑦ 군사시설의 표시, 소속 군인수 표시 ⑧ 도내 水營과 都萬戶·萬戶·千戶의 표시와 소속된 군함수 ⑨ 본조의 선왕·선후의 왕릉과 단군·기자사당, 기자릉, 전조의 태조묘, 명현의 묘가 어느 읍의 어느 방향에 있는지 표기 ⑩ 도내 토지의 비옥도, 기온의 차이, 풍속 ⑪ 도내 섬이 육지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으며 그 섬에서 농사의 유무 ⑫ 도내 조세를 운반하는 조운과 그 운반하는 육로 ⑬ 도내 현재 살고 있는 호구 ⑭ 도내의 풍속

<≪경상도지리지≫의 일반군현 서술 규식>

① 삼국시대 명칭, 고려시대 명칭, 본조의 명칭, 군현명칭이 升降改號한 시기를 기록할 것 ② 소속된 향이 몇 개이고 소·부곡·역이 몇 개인지, 그 명칭을 적고 다른 군현과 이합이 있거든 어느 시기였는지 아울러 적을 것 ③ 境內 명산대천과 사방의 경계, 산천의 里數, 犬牙相入處 및 越境處와 鎭山의 기록 ④ 人戶와 人口가 얼마인지 기록 ⑤ 그 지방출신으로 출세한 자가 어느 시대 누구인지 적고 옛날부터 전해오는 전설류도 같이 적을 것 ⑥ 본읍의 성씨와 속현의 성씨는 무엇무엇인지 구분하여 적을 것 ⑦ 常貢物은 무엇이며 所産物은 무엇인지 적으며, 토산물 중 금·은·동·철·주옥·납·주석·약재·도기와 자기 등도 적을 것 ⑧ 界首官이 관할하는 군·현의 명칭을 적을 것 ⑨ 소금생산지와 유명한 저수지를 적을 것 ⑩ 봉화대 소재처를 적을 것 ⑪ 사원 중에 혁파하지 않은 것 ⑫ 수령이 제사하는 처소를 적을 것

 위의 서술 규식을 살펴보면≪경상도지리지≫가 어떠한 목적으로 편찬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중앙에서 하달한 규식보다 감영에서 일반군현에 하달한 규식이 더욱 구체적임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군현의 연혁을 감영에서 하달한 규식은 삼국시대에는 어떻게 불렀으며 고려시대에는 어떻게 불렀고, 본조에 와서는 어떠했는지를 조사하여 적으라고 구체적으로 지시하고 있다.

 ≪경상도지리지≫는 규식에 잘 나타나 있듯이, 국가를 통치하는 데 절실히 요구되는 정치·경제·군사 등 국가적인 현실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하여 편찬된 것이고,≪세종실록지리지≫의 기초자료로 편찬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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