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Ⅰ. 과학
  • 1. 전통적 자연관
  • 1) 재이현상으로 본 전통적 자연관
  • (1) 가뭄으로 본 재이

(1) 가뭄으로 본 재이

 다른 자연현상이 통제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자연현상인 것과는 달리 가뭄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어느 정도 극복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다른 재이가 실질적 피해가 없어서 그저 조심하는 태도나 갖고 있으면 되겠다는 것과 달리 가뭄은 농민에게 심각한 피해를 직접 주기 때문에 더욱 적극적 관심을 보인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가뭄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면 우선 흥미있는 사실은 조선초의 임금 10명 가운데 가뭄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웠던 왕은 세조와 연산군 둘뿐이라는 사실이다.≪조선왕조실록≫에 가뭄이 없던 것으로 기록된 햇수가 세조의 경우는 재위 14년 가운데 4년이나 차지하고 있고, 연산군의 경우는 재위 12년 가운데 5년이나 차지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다른 임금들의 경우는 가뭄이 없던 해는 한 해도 없다시피 하였다. 세종의 경우는 재위 32년 가운데 단 1년만 가뭄 걱정없이 지낸 것으로 드러났고, 성종은 재위 25년 가운데 2년만이 가뭄에서 해방된 해였다.003) 朴星來,<韓國史上의 가뭄>(≪한국문화의 제문제≫, 국제문화재단, 1981), 131∼155쪽.

 가뭄이라는 자연현상에 대해 조선초의 반응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났던가. 이 반응은 당시의 자연관의 중요한 한 부분을 살피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 우리들과는 달리 당시에는 수리사업을 적극적으로 벌여 물 부족을 해결하려는 의지나 노력은 그리 크게 나타나지 않았다. 예를 들면 水車의 개발 노력 같은 것이 얼마나 효과적이지 못했던가를 살펴보아도 이를 짐작할 수 있다. 그 대신 비를 빌어 보려는 노력만은 여러 가지로 진행되었다. 당시의 祈雨 형태를 몇 가지로 구분하여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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