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Ⅰ. 과학
  • 1. 전통적 자연관
  • 2) 풍수지리로 본 자연관
  • (1) 한양 천도의 논리

(1) 한양 천도의 논리

 고려의 멸망과 함께 조선왕조를 개창한 李成桂는 제일 먼저 국도를 송악으로부터 다른 곳으로 옮기려는 데 유다른 집착을 보였다. 이는 깊은 풍수지리 및 도참사상에서 유래한 것임이 분명하다.015) 李丙燾,≪高麗時代의 硏究≫(乙酉文化社, 1948), 394쪽. 이성계는 새로 왕조를 세우고 그에 맞는 새로운 도읍지를 찾으려 했던 것이다. 그 첫 후보지는 이미 고려 때 남경으로 지정되어 그에 합당한 궁궐까지 세워져 있던 한양, 즉 지금의 서울이었다. 그러나 남쪽 지방에 출장갔던 政堂文學 權仲和가 계룡산 도읍도를 바치자 태조는 마음이 크게 동요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권중화는 태조 2년(1393) 정월 2일에 임금에게 보고하면서 전라도 珍同縣에 吉地를 얻었다면서 그 곳의 산수형세도를 바치고 그와 함께<계룡산도읍도>를 바쳤다.016)≪太祖實錄≫권 3, 태조 2년 정월 무신. 왕실의 태실을 조사하러 전년 11월 지방에 갔던 권중화가 과연 태조에게서 무슨 다른 임무를 얻어가지고 이런 추가보고를 낸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또≪태조실록≫에는 마치 계룡산 도읍도가 겸하여 제출된 것으로 기록되고 있지만 진동현 그림이 단순히 ‘산수형세도’로 되어 있었던데 비해 계룡산의 것은 아예 ‘도읍도’라 표시되었다면, 이것 또한 어떤 의미가 있는 일이었을지도 생각해 볼 문제인 것 같다.

 태조는 이 보고를 받고 2주일 뒤인 정월 19일 신하들을 거느리고 계룡산 답사에 나섰다. 2월 8일 도착하여 5일이나 머물며 그는 이미 이곳으로 천도할 결심을 굳힌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3월부터 시작된 공사는 그리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했다. 그리고 그 해 12월 계룡산으로의 천도계획은 갑자기 중단되었는데 그 계기가 된 것은 경기도관찰사 河崙의 반대 때문이라고 밝혀져 있다. 하륜이 계룡산 천도를 반대한 이유로는 두 가지가 거론되었다. 즉 계룡산은 나라의 가운데가 아니라 남쪽에 치우쳐 있다는 점이 하나였다. 또 다른 이유로는 계룡산의 풍수조건이 宋의 胡舜申의 이론에 의하면 흉조라는 것이었다. 즉 계룡산의 물흐르는 방향이 잘못되어 있어서 도읍으로 삼을 수 없다는 결론을 제시한 것이었다.017)≪太祖實錄≫권 4, 태조 2년 12월 임오.

 계룡산 천도계획이 실패로 끝나자 태조는 하륜에게 서운관이 가지고 있던 관계 서적을 주어 도읍의 후보지를 추천하라고 지시했다. 다음에 등장한 후보지는 서울 서쪽의 毋岳이었다. 현재의 延世大學校 일대를 가리킨다. 태조 3년 2월 왕은 이 지역에 고위 관리 11명과 서운관 관원들을 파견하여 실제 답사를 하게 했다. 左侍中 趙浚·정당문학 권중화 등 모두가 이곳이 너무 좁아 도읍하기에는 알맞지 않다는 의견을 냈지만, 유독 하륜만은 무악의 명당설을 강하게 주장하고 나섰다. 반년 뒤인 그 해 8월 태조는 몸소 신하들과 함께 현장답사에 나섰지만 하륜을 제외한 모든 신하들과 지리학자들이 적당치 않다고 판단했다.

 송악을 제외하고는 남경이 가장 길하다는 것이 풍수가를 비롯한 대부분의 의견이었고, 결국 태조는 이 다수 의견에 굴복하여 한양을 후보지로 정할 수밖에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 한양에 들른 그는 한양도 그리 나쁘지 않다는 사실을 스스로 확인했고, 9월에는 궁궐 건설을 담당할 도감을 설치하기에 이르렀다.

 태조는 원래 전혀 새로운 도읍지를 찾아 궁궐을 새로 지으려 했고, 처음에는 권중화에게 다음으로는 하륜을 시켜 새 도읍 후보지를 찾아 추천하게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계룡산 천도계획이 무산되면서 모든 사람이 기뻐했다고≪태조실록≫이 전하는 것처럼 새 서울을 건설한다는 것은 경제적으로 엄청난 부담일 뿐 아니라 관리들과 백성들 모두에게 이만저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풍수설이 중심이라기 보다는 그 위에 더 중요한 현실론이 지배하는 상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오늘의 우리가 생각하는 과학의 단계에 있지 않았던 이론이었기 때문에, 당시의 풍수지리설은 풍수가마다 의견이 달라 이런 결말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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