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Ⅰ. 과학
  • 2. 천문 기상학
  • 5) 천문학 서적의 간행
  • (1)≪칠정산내외편≫과 역학서의 편찬

(1)≪칠정산내외편≫과 역학서의 편찬

 고대로부터 동아시아 국가들에서는 曆法은 정치이념과 강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그래서 역법은 국가의 大典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天의 理法은 천체현상을 통해서 표현된다고 생각되었고, 천체현상 중에서 알아낸 법칙성은 역법으로 체계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천체현상 중에서 법칙화될 수 있는 것은 모두 역법의 대상이 되었다.

 정확한 역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천체현상의 법칙성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 된다. 天의 理法, 즉 하늘의 뜻을 제대로 알고 있는 국가 권력임을 과시하기 위해서는 역법을 바로 잡고 그것을 관장해야 했다. 새 왕조가 역법을 왕조의 권위로써 다스리려는 생각은 조선왕조에 있어서도 당연히 제기되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천체관측과 정확한 계산기술이 따른다. 수준급의 천체관측기기가 확보되고 고도로 훈련된 천문학자들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세종 15년 무렵에 이르러 가능하게 되었다. 간의대의 축조를 시작하고 천체관측기기의 제작이 착수되고 학자들의 훈련이 일단락 되었던 것이다.

 ≪칠정산내편≫과≪칠정산외편≫의 편찬사업의 시작은 조선왕조의 역법을 세우려는 국가권력의 발현과정에서 마땅히 제기될 과제가 전개된 것이다. 세종 때의 천문학과 수학의 수준이 거기까지 다다른 것이다. 또한 그 편찬사업은 자주적 역법의 확립을 위한 노력의 발현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국가 자주성의 지향과도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것으로 주목할 만한 진전이었다.

 ≪칠정산내편≫은 授時曆을 바탕으로 했다. 수시력은 원대에 만들어진 역법이지만 중국의 전통 역법으로는 가장 정확한 것이었기 때문이다.≪칠정산내편≫은 그것을 바탕으로 서울에서 관측한 자료에 기초하여 서울의 위도에 따라서 작성되었다.≪세종실록≫의 기사에 의하면, 삼각산에서 한성의 北極高度를 측정했는데 그 값은 “漢陽北極出地 三十八度 少”로 전해지고 있다.091)≪世宗實錄≫ 권 77, 세종 19년 4월 갑술.≪증보문헌비고≫에 나타나 있는 木簡儀에 의한 측정치 38도 1/4이 그것이다. 38도 1/4은 지금의 도수로 환산하면 37°41′76″가 된다.092)≪증보문헌비고≫(국역본), 158쪽. 이 계산은 역주자들인 李殷晟·兪景老·玄正晙이 한 것이다. 숙종 39년(1713)에 측정한 값은 37도 39분 15초이다.
≪칠정산내편≫과≪칠정산외편≫의 연구는 1970년대에 이르러 이은성·유경로·현정준 세 천문학자가 그 역주사업을 벌임으로써 큰 전기를 맞이하였다. 그것은 처음있는 본격적인 연구였다.≪세종실록≫번역본의 일부로 간행되어 학계에서 크게 주목되지 않은 채로 있지만 그것은 높이 평가할 만한 업적이다.
상당히 정확한 측정치였다. 또한 이 달력은 1년의 길이를 365.2425일로 정하고 1달의 길이를 29.530593일로 정해 수시력과 같은 常數를 취하고 있다. 이 밖에 행성들의 視運動도 정확히 파악하고 산출한 값을 도입하고 있다.

 ≪칠정산내편≫은 수시력을 단순히 한양을 기준으로 해서 대입해 엮은 것이 아니다. 세종 때의 천문·역학자들은 중국 천문학과 曆法 계산의 기본 원리와 이론을 완전하고 정확하게 소화하고 있었다. 그들은 역법의 기본이 되는 칠정, 즉 태양과 달 및 5행성들의 복잡한 운동을 정확하게 계산해 낼 수 있었다. 그래서 조선 역법의 기본이 되는 칠정의 이론과 계산치를 엮어 七政算을 편찬한 것이다.

 ≪칠정산내편≫은 세종 24년(1442)에 鄭欽之·정초·정인지에 의하여 편찬된 역서이다. 세종 5년 2월, 왕의 명에 의하여 당의 선명력, 원의 수시력, 步交會步中星曆 등 역법의 차이점을 비교·교정하였고, 세종 14년에는≪칠정산내편≫과≪칠정산외편≫을 편찬하도록 했는데, 10년 만에 완성을 보게 된 것이다. 그 내용은, 서문이 있고, 天行諸率·日行諸率·月行諸率 및 日月食의 기본 수치가 적혀 있다. 이어서 曆日·太陽·太陰·中星·交食·五星·四餘의 7장과, 편의 끝에 한양을 기준으로 한 二至後의 일출입 및 주야시각의 표가 적혀 있다. 그 밖에 각 章의 필요한 곳에는 ‘立成’이라 하여 여러 종류의 수표가 끼워져 있다. 칠정은 태양과 달 및 5행성을 말하는데, 5행성의 운행을 자세히 살피고 있는 점으로 보아, 이 역서는 일종의 天體曆이라고도 할 수 있다.

 ≪칠정산내편≫은 수시력에 대통력의 장점을 가미하여서 보다 편리하고 완비된 체제를 갖추려고 한 역법이다. 그러므로 이 역법은 수시력이나 대통력에 비하여 일단 전진한 느낌을 줄 뿐만 아니라, 북경과 위도를 달리하는 한양을 기준으로 엮은 것으로 높이 평가되는 역법이다.

 ≪칠정산외편≫은 칠정산에 대한 밖에서의 이론과 계산을 그 내용으로 한 것이다. 이것은 回回曆을 바탕으로 해서 엮은, 다시 말해서 이슬람 천문·역법의 漢譯本과도 같은 책이다. 역법의 이론과 계산을 전개하는 데 중국의 그것 뿐 아니라 이슬람 천문·역법에 도입된 그 밖의 세계의 이론까지도 포괄해서 해내자는 것이다. 물론 明에도 회회력의 한역본이 있었다. 그러나≪칠정산외편≫은 그것을 훨씬 능가하는 내용과 체계를 가지고 있는 역법책이다.

 ≪칠정산외편≫은, 세종 14년에≪칠정산내편≫의 편찬이 시작되었을 때, 이순지·金淡 등이 따로이 편찬하여 세종 24년에 완성한 역법서이다.

 元은 재래의 중국력을 크게 개량하여 수시력을 편찬하였고, 동시에 고대 그리이스의 알마게스트(Almagest)를 기본으로 하여 편찬한 회회력을 도입하여 병용하였다. 그리고 명은 大統曆法과 회회력법을 편찬하여 썼다.

 ≪칠정산외편≫은 太陽·太陰·交食·五星·太陰五星凌犯의 5개의 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외편은 내편에 비하여 表가 많은데, 내편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그 角度의 표시법이다. 내편은 중국 고래의 전통에 따라서 원주를 365.25度, 1도를 100分, 1분을 100秒로 한데 반하여, 외편에서는 그리이스의 전통에 따라 원주를 360도, 1도를 60분, 1분을 60초로 하고 있다. 또 하나의 중요한 차이는, 외편은 알마게스트의 天動說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서양에서는 태양계의 구조에 대해서 기하학적인 모델을 가졌는데, 그것이 알마게스트에 그대로 기술되어 있다.

 그러므로 외편에는 비록 이러한 기하학적인 모델의 기술은 없지만, 이 모델이 그 뒤에 숨어 있고, 이 모델을 우리는 알마게스트를 통해서 재현할 수 있다. 태양계에 대한 아무 모델도 주어져 있지 않고, 또 그것을 추측하기도 불가능한 내편에 비할 때, 이것은 바로 외편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칠정산내편≫과≪칠성산외편≫의 완성으로 조선의 역법은 완전히 정비되고 자주적 역법체계가 확립되었다. 여기에는 이순지와 김담의 공헌이 컸다. 그들은 여러 가지 천문·역법서들을 저술했다. 서운관의 역법계산은≪칠정산내편≫이 기본이 되었다. 대통력은 참조·비교하는 데 쓰이게 된 것이다. 이 때부터 대통력은 중국력이라 하고≪칠정산내편≫은 本國曆이라고 하게 되었다. 칠정산을 엮어내는 과정에서 이순지와 김담은 여러 가지 역법 관련 서적을 저술했다.≪大統曆日通軌≫·≪交食通軌≫·≪五星通軌≫·≪月星五凌犯≫·≪重修大明曆≫·≪庚午元曆≫등이 그것이다. 이 책들은 명의 曆官들이 역법의 계산법에 대하여 저술한 같은 이름의 책을 한양의 북극고도를 표준으로 해서 교정하여 엮은 것들이다. 자주적 역법 확립을 위한 세종의 의지와 천문학자들의 노력의 소산이었다. 그리고 이 책들은 세종 때에 이루어진 첨단기술인 조선식 청동활자 인쇄기술에 의하여 모두 인쇄되어 천문·역학자들에게 활용하게 하였다. 조선의 자주적 역법의 연구와 교육에 크게 기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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