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Ⅰ. 과학
  • 3. 물리학과 물리기술
  • 2) 자석과 자기의 이론

2) 자석과 자기의 이론

 자석에 대한 지식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는 아직 밝혀져 있지 않다. 다만 삼국시대에 신라에서는 당나라의 주문에 따라 자석을 중국에 보내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초 자석에 대한 재미있는 사건 한 가지는 태종 7년(1407) 10월 한성부 판사 劉旱雨가 몰래 세자에게 자석과 쇠를 바쳤다 하여 파직당했다. 세자는 이 자석을 가지고 金巖驛으로 가서 물을 떠다가 그 위에 띄우고 시험해 보았다. 이를 환관 朴英文이 간했으며, 허조는 자석과 쇠를 봉하여 사헌부에 보내고 상서하여 유한우의 처벌을 요구했던 것이다.103)≪太宗實錄≫권 14, 태종 7년 10월 무자.

 당시 허조는 사헌부 집의였다. 유한우는 당대 활약한 地官이었고, 漢陽 정도에도 상당한 역할을 한 인물이다. 유한우는 이 사건으로 파직당한 것처럼≪태종실록≫에 기록되어 있지만 다음에 나오는 기록으로 보아 그는 오래 파직당하지는 않았음이 분명해 보인다. 계속 능 자리를 고르는 일을 열심히 하여 임금의 시상을 받았다는 기록 등이 있기 때문이다.

 왜 자석을 가지고 놀았다는 사실이 사건이 되었던가는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세자의 ‘玩物喪志’로 공부하는 자세를 잃게 했다는 뜻일 뿐이지 자석 그 자체가 잘못된 물품이어서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소해 보이는 사건으로도 당시 제대로 공부하는 사람들은 자석같은 것을 가지고 놀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짐작하게 해 준다. 자석에 대한 기록은≪세종실록지리지≫의 경상도와 강원도 편에 그 지방의 산물로 한 번씩 소개되는 정도일 뿐이다.

 ≪東醫寶鑑≫에 기록된 자석에 대한 부분은 조선 전기의 자석에 대한 지식수준을 보여 준다. 이 책에서 許浚은 한글로 ‘지남석’이라 표시한 다음 그 성질이 차고 맛은 신감이며 독은 없다고 쓰고 있다. 그리고 의학상의 용법으로 신장에 좋고 기를 강하게 해주는 등의 효능을 여러 가지 열거하였는데, 끝으로 물에 갈아서 마시면 아들을 갖게 해 준다는 뜻도 써 있다. 그리고는 이어서 중국의 의학서를 인용하는 형식으로 자석은 바늘을 많이 끌어 올릴 수 있는 성질이 있음을 소개하고 힘이 좋은 자석은 몇 근의 쇠를 끌어당길 수 있다고 쓰고 있다. 또 그릇 밖에도 그 힘이 미치는데 이는 사물이 서로 감응하는 物類相感의 이치에 따른 것이라 설명하고 있다. 또 그 아래 항목으로는 磁石毛를 소개하고 있는데, 자석에 구멍이 있고 거기에 털이 있다고 되어 있다. 무엇을 가리키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역시 의학적 효능은 대단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에 의하면 자석모는 쇠의 어미(鐵之母)로서 어미가 자식을 끌어가듯이 쇠를 취한다고 되어 있다.104) 許浚,≪東醫寶鑑≫湯液篇 권 3, 磁石.

 조선 전기까지의 자석에 대한 지식은 대체로 이 두 갈래에 머물고 있었던 것이다. 즉 나침반으로서 주로 지관이 사용하는 방향을 잡는 도구로써가 하나이며, 다른 한 가지는 의학상의 용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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