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Ⅰ. 과학
  • 4. 의약과 약학
  • 1) 의약정책
  • (1) 고려 의학의 계승

(1) 고려 의학의 계승

 조선 초기의 의학은 의료제도뿐만 아니라 의학의 학술적 측면과 향약정책에서도 고려 의학의 전통을 계승하였다. 조선초 의료제도 중 여말의 典醫寺를 典醫監으로 고친 것만 다를 뿐이고, 惠民局과 東西大悲院은 고려시대의 것을 그대로 이어 썼다. 아울러 判事·監·小監·丞·直長·博士·檢藥·助敎 등의 관직명도 그대로 채택하여 썼다. 태종 때에 이르러 다른 모든 제도들의 개혁과 함께 의료제도도 약간의 변화를 보았으나, 이 역시 고려의 전통을 크게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조선초의 의학 또한 고려 때처럼 송·원시대의 의서를 중심으로 하였다. 태종 12년(1412)에 고려로부터 전해 오던 忠州書庫의 서책들 중 의학서적들도 넘겨 받아 春秋館에 이장하였다. 후에 다시 이 의서들을 內藥局에 옮겨 보관하였는데, 이들은 모두 고려로부터 전해 오던 송·원시대의 의서들을 그대로 접수한 것이다.

 고려 의학을 이어받은 것 가운데 가장 주목되는 것은 향약 장려정책이다. 이와 관련된 기록은 건국초부터 보인다. 태조 2년(1393)에 “각 도에 의학교수 한 명을 보내어 생도 등을 뽑아 고려의≪鄕藥惠民經驗方≫을 학습하도록 하며, 교수관에게 採藥丁夫들을 딸리게 하여 시기적절하게 약재를 채취하여 병자를 구료할 것”138)≪太祖實錄≫권 3, 태조 2년 정월 을해.을 명했고, 같은 해에 또 濟生院을 새로 창설하여 惠民局의 예와 같이 각 도로부터 향약을 수납하도록 하였다.

 또한 고려 후기에 편찬된 의서들인≪鄕藥救急方≫·≪御醫撮要方≫·≪鄕藥惠民救急方≫ 등이 조선초에 들어와서도 계속 사용되었으며, 이들 의서는 고려말에 나온≪三和子鄕藥方≫·≪鄕藥簡易方≫ 등과 합쳐져서 태종 때의≪鄕藥濟生集成方≫과 세종 때의≪鄕藥集成方≫의 토대가 되었다.

 그렇지만 세종 이후부터는 점차 명의 의학을 직접 수입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명나라화 된 李杲·朱震亨류의 의학이 차츰 풍미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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