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Ⅰ. 과학
  • 4. 의약과 약학
  • 4) 의서의 편찬과 간행
  • (1) 중국의서의 수입과 간행

(1) 중국의서의 수입과 간행

 조선 전기에는≪향약집성방≫·≪의방유취≫·≪동의보감≫ 등의 뛰어난 종합의서들이 찬집되고 간행된 데에서 보이듯이, 이전까지의 의학을 종합한 것이 의학 학술상의 매우 큰 특징이었다. 그렇지만 이와 함께 중국 의학이 계속해서 수입되었다.

 조선 전기에는 의학이 크게 발달하여 우리 의학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의서가 다수 간행되었으나, 삼국시대 이래 의학교육과 치료에 이용된 대부분의 의서는 역시 중국 의서였다. 수입된 의서들은 필요에 따라 전국 각지에서 출간되었다. 조선 전기에 발간된 중국 의서를 시기별로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조선시대에 들어서 의서를 간행한 최초의 기록은 태종 때의≪鍼灸銅人圖≫이다. 이것은 체계를 갖춘 의서는 아니지만 침구를 시술하는 데 꼭 있어야 할 침 놓을 자리를 보여주는 그림으로, 태종 15년(1415)에 간행되어 전국에 반포되었다. 이 의서는 이 해 10월 尹吳眞이 명에 사절로 갔다가 돌아올 때 가져온≪침구동인도≫두 두루마리를 가지고 만들었다. 다음으로 간행된 책은 태종 18년에 강원도 洪州에서 중간한≪疑獄集≫이다. 이 책은 고려 문종 13년(1059)에도 간행된 바 있는 법의학서로서 살인의혹을 검증하는 데 이용되었다.

 세종 때에는 많은 의서가 간행되었다. 먼저 세종 12년(1430) 詳定所에서 정한 의학 취재의 교재를 보면,≪直指脈≫·≪纂圖脈≫·≪直指方≫·≪和劑方≫·≪傷寒類書≫·≪和劑指南≫·≪醫方集成≫·≪御藥院方≫·≪濟生方≫·≪濟生拔粹方≫·≪雙鐘處士活人書≫·≪衍義本草≫·≪鄕藥集成方≫·≪鍼灸經≫·≪補註銅人經≫·≪難經≫·≪素問括≫·≪聖濟摠錄≫·≪危氏得效方≫·≪竇氏全嬰≫·≪婦人大全≫·≪瑞竹堂方≫·≪百一選方≫·≪千金翼方≫·≪牛馬醫方≫등 25종이 열거되어 있다. 여기서≪난경≫·≪소문괄≫·≪천금익방≫ 등의 고전적 의경과 우리 나라에서 편찬된≪향약집성방≫148) 간행연도를 볼 때, 이는 정종 때 나온≪鄕藥濟生集成方≫을 지칭하는 듯하다. 4종을 제외한 21종의 의서들은 모두 송·원대의 중요한 의서들이다. 이들 의서는 과목 자체가 교재였으므로 대부분 교육과 치료를 위해 간행되었을 것이다. 세종 때 간행된 의서 중 특기할 것은 앞에서 살펴본≪신주무원록≫ 2권으로, 일종의 재판의학서이다.

 세조 때에도 여러 종의 중국 의서가 간행되었다. 세조 2년(1456)에≪和劑方≫·≪得效方≫·≪永類鈴方≫·≪衍義本草≫·≪銅人經≫·≪加減十三方≫·≪服藥須知≫·≪傷寒指掌圖≫등이 간행되었다. 이 밖에 세조 4년부터 10년까지 의원의 필독서로 새로 지정된 의서들인≪本草纂圖≫·≪黃帝素問≫·≪張子和方≫·≪小兒藥症直訣≫·≪外科精要≫·≪大全本草≫·≪脈經≫들도 계속 간행되었을 것이다.

 성종 3년(1472)에 四孟朔 의원 취재 과목을 다시 정하였다. 거기에는 새로이≪資生經≫·≪十四經發揮≫가 새로 지정되었고 아울러 침구의 취재 과목으로≪鍼經指南≫·≪子午流註≫·≪玉龍歌≫·≪鍼灸摘英集≫등과 의녀 습독서로≪和劑≫婦人門이 새로 지정되었다. 이들 책 역시 수요를 맞추기 위해 대부분 간행되었을 것이다. 한편 성종 5년에는 지난해 일본 島山의 사절 중 副使로 온 良心이 바친≪神應經≫과≪八穴灸法≫을 간행하였고, 성종 15년에는≪救急易方≫1권을 평양부에서 간행하였으며, 성종 18년(1487)에는≪周府袖珍方≫9책을 중간하였다. 또한 성종 19년에는 成健이 명에서 구해 온≪東垣十書≫를 내의원에서 인쇄·간행하였으며, 성종 25년에는≪拯急遺方≫상권에 해당하는≪加減十三方≫1권 30여 부를 인쇄하여 의관들에게 하사하였다.≪加減方≫은 어필이 책머리에 있어≪御醫加減十三方≫이라는 표제가 붙었다.≪安驥集≫과≪水牛經≫도 이 해 4월 李昌臣·李琚·權五福 등이 번역하여 인쇄하였고, 법의학서인≪裳陰比事≫와≪疑獄集≫도 성종 14년에 간행되어 수령이 참고하게 하였다.

 중종 때부터 선조 때까지 국내에서 중국의 많은 의서들이 발간되었지만 정확한 발간 시기를 알지 못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 중 발간연도를 확실히 알 수 있는 것만을 먼저 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중종 38년(1543)≪銅人經≫과≪直指脈≫을 똑같이 22부씩 발간하여 20부를 兩醫司에 두고 나머지 두 부를 경상·전라도에 내려 보내 그 곳에서 다시 간행토록 하였다. 이 밖에≪醫眼方≫ 1권이 중종 38년 경주부에서 발간된 적이 있다. 이는 우리 나라에서 최초로 간행된 안과 전문의서이다.

 이상에서 조선 전기를 통해서 국내에서 발간된 중국 의서들을 대략 살펴 보았는데, 중복된 의서를 제외해도 그 수가 약 70종에 달하며, 이 중에는 송·원·명대의 중요한 의학서적이 거의 포함되어 있다.

 이들 의서가 방대하게 발간되었다는 사실에서 당·송·원·명대의 중국 의학이 조선 전기 의학에 매우 큰 영향을 미쳤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같은 중국의학의 범람은 풍부한 의학적 경험과 이론을 국내 의학계에 제공하기도 했지만, 중종 이후에는 정도가 너무 지나쳐서 의학상의 큰 혼란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楊禮壽의≪의림촬요≫나 許浚의≪동의보감≫의 출현은 바로 이같은 혼란상황을 정리하려는 시도로 이해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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