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Ⅰ. 과학
  • 4. 의약과 약학
  • 5)≪동의보감≫의 편찬과 간행
  • (1) 편찬배경과 저술과정

(1) 편찬배경과 저술과정

 조선 초기에≪향약집성방≫과≪의방유취≫의 편찬으로 이전까지의 우리 의학과 중국 의학이 총정리되었으나, 조선 중기에 이르러 이는 많은 한계를 드러내게 되었다. 이 두 책은 많은 의학 내용을 모아 놓았다는 데는 큰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으나, 실제 임상에 적용하는 데에는 적합하지 못한 측면이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이 시기에 중국으로부터 무수히 많은 의서들이 수입되어 이전의 의서들과 함께 실제 임상에 큰 혼란을 초래하였다.

 이러한 상황은≪동의보감≫ 서문에 잘 드러나 있다. “의학에 관한 서적들이 오래 전부터 있었으나 … 논설이 분분하고 앞뒤가 표절되어 다투어 문벌을 세웠으므로 서책은 더 많아지고 의술은 더 어두워져 … 세상의 庸醫들은 궁리를 풀지 못하고 경서의 해석을 어겨 자의대로 약을 쓰거나, 또는 선례에 얽매여서 변통할 줄 모르고 … 활인을 구하다가 살인하는 사람이 많다”고 할 정도의 상황에 직면하여 그것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필요성이 생겼다. 이것은≪동의보감≫의 편찬으로 해결되었다.

 ≪동의보감≫은 선조 29년(1596) 왕명으로 편찬되기 시작되었다. 선조는 의학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당시 의학계의 혼란상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선조는 수많은 중국의 의학서적을 정리하여 하나의 책으로 엮을 것을 허준 등에게 명하였다. 특별히 새 의서를 편찬할 局이 설립되었고 太醫 허준을 비롯하여 儒醫 鄭錯, 태의 楊禮壽·金應鐸·李命源·鄭禮男 등 당대의 내노라 하는 의인들이 의서 편찬요원으로 선발되었으며, 허준이 편찬의 최고 책임을 맡았다.

 새 의서의 편찬은 겨우 뼈대만이 갖추어진 상태에서 정유재란을 만났다. 전란으로 인해 작업에 참여하였던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졌으며, 작업은 중단되었다. 그렇지만 선조는 의서편찬에 대해 강한 의지를 포기하지 않고, 몇해 후 궁궐 안에 소장하고 있던 의학서적 500여 권을 내주며 허준에게 단독으로 새 의서의 편찬을 완성토록 명하였다. 그 후 허준은 귀향살이 도중에도 작업을 계속한 결과 광해군 2년(1610)에≪동의보감≫ 25권 25책을 내놓게 되었다.

 ≪동의보감≫은 그로부터 5년 후인 광해군 7년에서야 발간을 보게 되었다. 왜냐하면 책수가 많아 인쇄를 하는데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을 뿐 아니라, 작은 주가 많고 분행자수가 세밀하여 꼼꼼한 교정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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