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Ⅰ. 과학
  • 4. 의약과 약학
  • 5)≪동의보감≫의 편찬과 간행
  • (4) 간본

가. 우리 나라 간본

 선조 29년(1596)에 착수되어 14년 후인 광해군 2년(1610)에 완성을 본 전 25권의≪동의보감≫은 발간되어 나오는 데 3년의 시간이 걸렸다. 광해군은≪동의보감≫이 완성되자마자 즉각 內醫院에 명하여 그것을 인쇄하여 널리 반포하라고 하였다. 왕명을 받아 내의원은 직접 인쇄를 담당할 특별 기구를 만들어 그것을 찍어내고자 하였다. 그렇지만 찍는 데 필요한 경비와 인력이 여의치 않아 내의원에서의 간행은 일단 포기되었고, 이듬해인 광해군 3년 11월에 내의원이≪동의보감≫을 下三道에 내려 보내 나누어서 찍도록 하였다.

 그러나 지방에서 나누어 인쇄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책의 분량이 방대해서 인쇄에 필요한 목판을 구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으며, 찍는 데 많은 인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또한≪동의보감≫의 판형이 독특해서 조그만 注가 행을 나누고 있고, 글자 수가 촘촘했기 때문에 목판의 형태로는 인쇄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작업이 별로 진척되지 못했다. 그리하여 다시 내의원이 인쇄를 맡게 되어 따로 局이 설치되었고, 하삼도에서 올려 보낸 재료를 바탕으로 하여 2년여의 작업 끝에 광해군 5년에 훈련도감의 활자본으로 인쇄가 마무리되었다.

 ≪동의보감≫은 그 후 몇 차례에 걸쳐 간행되었다. 먼저 湖南觀察營印 全州藏本과 嶺南官營印 大邱藏本이 있다. 이는 정조 때 徐有榘가 지은≪鏤板考≫ 권 1, 東醫寶鑑條를 통해 알 수 있다. 이 판본들은 호남·영남 兩營에서 초간의 활자본을 대본으로 하여 전주 및 대구에서 다시 목판으로 찍어낸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 그런데 영조 29년(1753) 9월에 영의정 金在魯가≪동의보감≫과≪증보만병회춘≫을 영남 감영에서 찍어내도록 하였다는 기록도 있어 이 때 다시 찍어낸 것이 아닌가 한다.

 오늘날 항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歲甲戌仲冬內醫院校正領營改刊本과 같은 해의 完營重刊本이다. 여기서 갑술년은 순조 14년(1814)이라고 추측되는데, 이는 순조 20년인 경신년에 다시 찍어낸≪醫學入門≫에 대한 金履喬의 발문을 통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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