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Ⅱ. 기술
  • 1. 농업과 농업기술
  • 1) 농업과 그 환경
  • (4) 노동대상

가. 농경지

 이 시대의 노동대상이었던 농경지와 그 土性, 그리고 당시의 농업지대 분포 등에 대해 살펴보겠다. 먼저 조선 전기의 문헌에 실린 田結數가 조선 후기의 그것과 맞먹는 넓은 면적이었음이 주목된다. 조선 전기의 전결은 이미 152만∼171만 결에 달하여 최소한 434만ha 내외의 면적으로 평가된다.167) 李鎬澈,<토지파악방식과 田結>(위의 책), 258∼259쪽의<표 5> 참조.
Hochol Lee, Rice Culture and Demographic Development in Korea, c. 1429∼1918, Economic and Demographic Development in Rice Producing Societies(Akira Hayami & Yoshihiro Tsubouchi : 1989).
이는 조선 후기에 정부가 파악한 최대의 전결수인 숙종 45년(1719)의 149만 결(약 433만ha)과 맞먹는 넓은 면적이었다고 추정된다. 그러나 이는 양안에 실린 원장부의 결수였으며, 실제로 경작된 면적은 훨씬 적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를 통해 전체 결수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는 무리가 없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사실은 조선 후기보다 인구가 매우 적었던 조선 전기에 농민 1인당 보유농지가 조선 후기의 그것보다는 두 배 정도 넓었음을 의미하며, 이는 결국 농업기술과 생산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판단된다.

 다음으로 조선 전기의 토지이용법에 대해 살펴보겠다. 이 때의 토지는 休閑田과 常耕田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상경전은 ‘1년 1작’전과 ‘2년 3작’이 있었다. 그러나 특수한 지역을 제외하고는 ‘1년 1작’ 작부체계를 근간으로 하는 토지이용방식이 일반적이었다.168) 李鎬澈,<朝鮮前期 旱田農法의 展開와 그 性格>(≪慶北大論文集≫ 41, 1986). 결국 조선시대 전기간을 통해 외형적인 토지면적에는 큰 변동이 없었지만, 전기에는 실제로 갓 개간된 토지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熟田化 및 작부체계 고도화 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이처럼 조선 전기의 농업이 조선 후기와는 달리 ‘1년 1작’식을 근간으로 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이 시대 농업이 보다 넓은 면적을 연작화·숙전화하는 기술을 중심으로 영위되었음을 의미한다.

 한편 조선 전기에는 결수로만 파악할 때 水田이 전체의 약 27.9%에 달하였지만 이를 다시 면적으로 환산하면 19%에 불과하였다.169) 李鎬澈,<토지파악방식과 田結>(앞의 책), 264∼265쪽의<표 7>과 주 57 참조. 이는 수전농업이 한정된 지역에서만 시행되었음을 보여준다. 하삼도에서도 조선 전기에는 한전비율이 50%를 넘는 군현이 지배적이었으므로 이 시대 농업은 주로 척박한 한전을 중심으로 시행되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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