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Ⅱ. 기술
  • 1. 농업과 농업기술
  • 2) 농업기술
  • (1) 수전농법

가. 벼농사법

 조선 전기의 벼농사 기술은 고려 후기에 완성된 水稻의 直播連作 기술을 근간으로 하였다. 특히 이 기술은 세종 11년(1429)에 편찬한 농서인≪농사직설≫에 보다 완성된 하나의 기술체계로 수록되었다. 이 시대의 벼품종으로는 早稻·晩稻 등의 수도품종과 오늘날의 밭벼인 旱稻가 있었다. 같은 시대의 농서인≪금양잡록≫에 의하면 조선 전기의 도종은 조도가 7품종, 만도가 17품종, 그리고 한도가 3품종 등 모두 27품종이나 존재하였다.175)≪衿陽雜錄≫ 穀品. 또한≪농사직설≫에 의하면 이 시대의 벼재배법은 ‘水耕’·‘乾耕’ 등의 直播法과 移秧法이 있었다. 특히 여기에는 휴한법이 크게 나타나지 않을 뿐 아니라, 수도의 직파연작법과 건경법이 우리 나라에서만 나타나는 독특한 기술이란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하겠다.176)≪農事直說≫ 種稻.

 먼저 조선 전기의 수도작법을 정리한 것이 바로 다음<표 1>이다.

재배법 水 耕(水沙彌) 乾耕(乾沙彌) 揷 種(苗種)
도 종 早 稻 晩 稻 晩 稻  
수전의
선 택
擇連水源肥膏水
  春旱不可水耕
宜乾耕
擇水田雖遇旱不乾
파 종 稻種漬水 輕三
日漉出 納蒿
中(鄕名 空石)
置溫處…芽長
二分 均撒水田
中(二月上旬)
與旱稻法同(三月
上旬至芒種節)
足種驅鳥 養苗處 : 先漬稻種
: 三日 漉入蒿
(鄕名 空石) 經一日
下種 (二月下旬至
三月上旬) 苗長一
握以上 可移栽之
시 비 冬月 : 入糞
正月 : 入糞或入
新土
正月 : 入糞入土,
今年 : 入土, 明
年 : 入糞, 雜草
泥濘虛浮 水冷地
: 專入新土或莎

塉薄地 : 布牛馬
糞及連技杼葉(鄕
名 加乙草) 人
糞蠶沙亦佳
稻種 : 和熱糞或
尿灰
養苗處 : 剉柳枝軟
梢厚布
本畓 : 布杼葉(鄕名
加乙草)或牛馬糞
제 초 苗生二葉 : 以手
耘 去苗間細草(然
水渴土强 則當用
鋤)
苗長反尺許 : 又
耘以鋤…耘至三四
與早稻法同 雜草生 則雖旱苗
槁 不可停鋤
此法 便於除草 萬
一大旱則失手 農家
之危事也
농 구 以木斫(所訖羅)
縱橫摩平 復以鐵齒
擺(手愁音) 打破
土魂 以板撈(翻
地) 或把撈(推介)
覆種
與早稻法同 以檑木(古音波)打
破之土塊 又以木
斫(所訖羅)縱橫摩
平熱治
以板撈(翻地)覆種

<표 1>수도작법

 이를 보면 이 시대의 수도작법으로는 발아시킨 도종을 무논에 고르게 파종하는 早稻의 水耕法이 가장 많이 권장되던 기술이었는데, 이 재배법은 가장 비옥한 수리안전답에만 행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 시대에는 수리가 불완전한 열등지가 훨씬 많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었다. 수리불완전답에서는 晩稻를 水耕하는 재배법이 권장되었는데, 이처럼 열등지에 직파된 만도에는 무엇보다 가장 집약적인 시비와 객토가 행해졌다.

 더구나 봄가뭄을 만나 그것이 불가능한 때에는 한국 특유의 재배법인 건경법이 사용되었다. 건경에서는 먼저 묘를 만든 후 그 위에다 발뒷꿈치 자국을 낸 다음 가루비료에 혼합한 만도씨앗을 파종하고 다른 발로 복토하는 이른바 한전작물에서 널리 사용되던 방법으로 파종하였고, 적어도 장마철이 되어 완전한 수전이 될 때까지는 한전작물처럼 재배하였다. 이앙법은 중간 정도의 비옥한 수전을 택하여 그 중 10분의 1의 면적을 못자리로 하여 발아된 도종을 산파하였다가, 모가 9㎝ 정도 자라면 본답에 이식하였다. 모내기는 한 포기에 4∼5묘를 심었고, 묘근이 활착되기 전에는 묘가 떠오르므로 관수를 얕게 하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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