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Ⅱ. 기술
  • 2. 인쇄기술
  • 2) 목활자의 제작 및 조판인쇄

2) 목활자의 제작 및 조판인쇄

 목활자는 일찍부터 책의 인쇄에 등장하여 혹은 금속활자의 補字로 쓰이기도 하고, 혹은 긴급한 인쇄 수요에 손쉽게 만들어져 사용되기도 하고, 또는 특정체재로 인쇄하고 싶은 경우 만들어져 쓰이기도 하면서 발달하였다. 그리고 관서·왕실·사찰·서원·개인들이 고루 목활자를 만들어 금속활자와 병용해서 서적 인쇄에 사용할 정도로 발달해 왔다.

 목활자의 제작 및 조판 인쇄에 있어서는 주로 민간에서 전통적으로 적용해 온 것을 중심으로 설명하기로 하겠다.222) 목활자를 만드는 법에 대한 참고문헌은 다음과 같다.
王禎,≪農書≫권 22, 卷末 附錄 造活字印書法.
徐有榘,≪林園十六志≫권 105, 怡雲志 6, 圖書藏訪 下, 鋟印 木刻活字法 및 聚珍版式.
柳鐸一,<韓國木活字印刷術에 對하여>(≪民族文化論叢≫4, 嶺南大, 1983), 111∼125쪽.

 목활자를 제작하는데 있어서도 금속활자의 경우와 같이 먼저 글자본을 정하여 글씨를 잘 쓰는 자가 만들고자 하는 활자의 크고 작은 규격에 맞추어 글자를 써냈다. 이 경우 같은 글자라 하더라도 모두 몇 벌씩 중복되게 쓰고 특히 어조사 등과 같이 많이 쓰이는 글자는 필요한 만큼 많은 수량을 준비하는 것이 금속활자의 경우와 좀 다른 점이라 하겠다.

 활자를 새기는 나무에 있어서 관서는 주로 황양목을 사용하였으나,223) 成俔,≪慵齋叢話≫권 7, 活字. 우리 나라 문헌에는 박달나무·돌배나무·자작나무·산벗나무를 비롯한224) 李圭景,≪五洲衍文長箋散稿≫上, 권 24, 鑄字印書辨證說 木刻字. 감나무·배나무·고욤나무·모과나무·은행나무 등이 목활자를 만드는 재료로 쓰여졌다고 언급되어 있다. 중국 문헌에는 대추나무가 더 소개되고 있으나, 그 밖에도 글자를 새기기 쉽게 질이 연하고 먹물을 잘 흡수하여 인쇄가 잘 되며 경제적으로 입수할 수 있는 나무라면 모두 쓸 수 있었다.

 큰 자, 중간 자, 작은 자의 활자를 만들어 내는데 알맞는 두께로 나무판을 켜서 짠물 또는 민물 웅덩이에 일정 기간 담가 글자를 새기기 쉽게 결을 삭힌 뒤 충분히 건조시킨 다음 판면을 고르고 판판하게 대패질하였다. 그리고 그 위에 미리 준비한 여러 글자를 크고 작은 것끼리 뒤집어 붙이고 볼록새김을 하였다. 한 나무판의 글자를 다 새기면 가는 실톱으로 하나씩 잘라내어 칼로 네 면을 다듬어 크기와 모양을 가지런하게 하고 높낮이 또한 일정하도록 깎아 손질하여 완성시켰다.225) 徐有榘,≪林園十六志≫권 105, 怡雲志 6, 圖書藏訪 下, 鋟印 木刻活字法(農書 附錄 造活字印書法 引用文).

 목활자의 조판인쇄는 원칙적으로 금속활자의 경우와 같으므로 여기서는 주로 민간에서 실시했던 고착식 판짜기를 중심으로 설명하겠다.

 먼저 인판틀을 준비하였다. 판판하고 곧은 판목을 적당한 크기와 두께로 켜서 인판대를 마련하고 그 위에 네 변을 고정시킨 둘레(우리)를 돌린 다음, 대조각을 깎아 界線을 넣었다. 이 때 계선용 대조각은 많이 만들어 언제라도 바꾸어 낄 수 있게 하였다.

 인쇄할 때는 먼저 계선 사이의 인판 바닥에 활자를 고착시키는 점착성 물질인 밀랍을 깔고 밀골판으로 밀랍을 고르게 다지는 작업을 실시했다. 활자인쇄의 초기에는 활자를 고착시키는 점착성 물질로 고체밀랍을 쓰고 활자를 식자한 다음 불로 녹여 판판한 철판으로 활자를 눌러 고르게 하고 식혀 굳으면 책을 찍어냈지만, 머리를 써서 마침내 굳지 않는 점착성 물질을 개발해냈다. 그것은 밀초에 참기름이나 피마자기름을 1대1의 비율로 배합하여 끓여 만들어냈다. 이렇게 만든 밀초는 오래 사용하여도 굳지 않고, 점착력이 있기 때문에 손쉽게 활자를 고착시키고 뗄 수 있었다.226) 柳鐸一, 앞의 글, 111∼125쪽.

 식자할 준비가 다 되면 찍고자 하는 원고나 책의 본문을 한자한자 차례로 불러주는 대로 활자를 찾아내서 그 원고나 책의 글자 위에 벌여 놓았다. 이것은 오늘날의 문선에 해당하며, 민간에서는 대개 활자 주인이 직접 이 일을 맡아 하였다. 골라 놓은 활자가 한 장분이 되면 판에 올렸다. 오늘날의 식자에 해당하였다. 활자를 식자할 때는 오른 손에 쥔 대칼로 활자를 붙일 수 있을 만큼의 밀랍을 떠올리고 왼손으로 활자를 붙였다. 활자의 배열이 끝나면 다지개로 활자를 다져 고르게 하고 넓은 평판이나 장척으로 활자면을 고르게 눌러 판판하게 하였다. 이것이 인판의 활자면 고르기 작업이며, 숙련된 기술이 필요했다.

 활자면의 고르기 작업이 끝나면 인쇄가 시작되는데, 먹솔로 활자면에 먹물을 고루 칠한 다음, 그 위에 종이를 놓고 말총 또는 털뭉치 등의 인체에 밀랍이나 기름 등 잘 미끄러지는 물질을 칠하여 종이 위를 위 아래로 고루 문지르거나 비벼서 밀어냈다.

 애벌을 밀어내면 주색으로 오자와 탈자를 비롯하여 거꾸로 된 것, 비뚤어진 것, 희미한 것, 너무 진한 것 등을 바로잡아 교정한 다음 필요한 부수를 찍어냈다. 그리고 장책과정을 밟아 비로소 하나의 활자본을 만들어냈던 것이다.227) 千惠鳳,≪韓國古印刷史≫(韓國圖書館學硏究會, 1976), 365∼366쪽.

 조선시대 관판과 왕실판 목활자본은 새김이 정교하고 인쇄가 우아·미려하여 금속활자를 방불케 하였다. 그러나 목활자본은 아무리 정교하다 하더라도 금속활자로 찍은 인본과 면밀히 대조하여 보면 그 차이점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다음에서 양자의 식별방법에 대해 설명하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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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판 6>세종 29년(1447) 인출의 목활자본≪동국정운≫
<도판 6>세종 29년(1447) 인출의 목활자본≪동국정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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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째, 글자 모양에 있어서 목활자본은 활자 하나하나를 글자본을 써서 뒤집어 붙이고 새겨내기 때문에 동일한 글자라 하더라도 똑같은 모양이 없고 조금씩 다르다. 이에 대하여 금속활자본은 일정한 글자본에 의해 주형을 만들어 주조하였기 때문에 글자 모양이 같고 정연하다. 글자본이 다르거나 주자방법이 다른 초기 및 민간활자의 경우는 동일한 글자라 하더라도 모양이 달랐지만, 관주의 금속활자본은 글자 모양이 같고 정연하여 양자의 차이가 뚜렷하였다.

 둘째, 글자획에 있어서 목활자본은 활자의 글자본을 일일이 써서 뒤집어 붙이고 새기기 때문에 굵기와 가늘기의 차이가 생겨 고르지 않다. 이에 대하여 금속활자본은 글자본에 의거하여 어미자 하나를 정성껏 만들어 필요한 수만큼 찍은 주형에서 부어내기 때문에 글자획의 굵기가 고르고 일정하다. 어미자에 의한 주조방법을 쓰지 않은 초기 및 민간활자의 경우는 그다지 고르지 않았지만, 관주의 금속활자본은 글자획이 고르고 일정하여 양자의 식별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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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판 7>목활자 조판
<도판 7>목활자 조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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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셋째, 목활자본은 활자를 하나하나 칼로 새겨 만들기 때문에 글자획에 칼자국이 예리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세로획과 가로획이 겹치는 곳에 칼이 스쳐간 자국이 나타나기도 하다. 이에 대하여 금속활자본은 글자획에 칼자국이 있을 리 없다. 그러나 활자의 부족을 메운 나무활자의 보자는 예외이다. 쇠활자는 주조한 다음 줄로 손질하기 때문에 대체로 글자획의 시작과 끝이 둥글둥글한 맛이 나는 것이 특징이며 이런 점에서 목활자는 곧 식별된다.

 넷째, 목활자본은 활자 사용이 오래된 것은 글자획이 닳아서 부분적으로 이지러지고 나무결이 생겨 인쇄가 조잡한 편이다. 이에 대하여 금속활자본은 활자 사용이 오래되면 글자획이 마멸되어 가늘어지고 일그러지지만 글자획만은 그대로 붙어 있어, 양자의 차이가 곧 가름된다.

 다섯째, 목활자본은 송연먹을 사용하여 인쇄한 경우 먹색이 일반적으로 진하면서도 현미경 등으로 확대하여 보면 먹물이 주위에 번져 있다. 이에 대하여 금속활자본은 유연먹을 사용하여 인쇄하기 때문에 먹색이 별로 진하지 않으며 현미경 등으로 확대하여 보면 반점이 나타나고 있어, 양자의 식별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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