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의 아악부흥은 올바른 율관제작 및 악기제조가 없었다면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율관제작은 음악이론의 근본이었고, 악기제조 중 편종과 편경의 제작은 아악부흥의 시작이었기 때문이다. 세종 7년(1425) 경기도 南陽에서 磬石을 발견하고 해주에서 기장의 발견477)≪世宗實錄≫권 59, 세종 15년 정월 을묘.은 음악사적 관점에서 보아 획기적인 사건들이었다. 왜냐하면 기장이 올바른 율관제작에 필수적인 낱알이었고, 또 아무리 올바른 율관이 제작되었다고 하더라도 경석이 없으면 편경의 제작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선초 율관제작과 경석의 발견은 앞 시대와 구분하는 기준의 하나로 삼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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