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의 아악부흥과 향악창제는 한국음악사에서 빛나는 업적으로 꼽히는데, 이와 같이 빛나는 업적이≪세종실록악보≫에 그대로 전해오고 있다.≪세종실록≫에 의하면, 세종 12년(1430)에≪조회악보≫1질,≪제사악보≫1질, 주희의≪의례경전통해≫와 임우의≪대성악보≫1질 등 세 질의 악보가 편찬되었다.572)≪世宗實錄≫권 50, 세종 12년 윤12월 정유. 鄭麟趾의 雅樂譜序에 의하면,≪儀禮經傳通解≫및≪釋奠樂譜≫각 1질을 만들었음이 분명하다. 그 후 세종 29년에 많은 악보가 편찬되었으니,≪치화평보≫5권·≪취풍형보≫2권·≪여민락보≫2권·≪보태평보≫1권·≪정대업보≫1권·≪발상보≫1권·≪시용속악보≫1권이 그것이다.573)≪世宗實錄≫권 116. 세종 29년 5월 을묘.
조회아악이 완성되고, 회례아악과 제례아악의 제정이 착수되었던 때가 세종 12년이었으므로, 조회악보와 제사악보 그리고≪의례경전통해≫와≪대성악보≫의 편찬은 아악부흥과 무관하지 않다.≪용비어천가≫의 완성이 세종 27년에 이루어졌음을 상기할 때,≪용비어천가≫의 가사를 바탕으로 삼은 치화평 등의 악보는 세종 27년과 세종 29년 사이에 완성되었음이 분명하다.≪세종실록≫권 136∼147에 32井間譜와 律字譜로 기보된 이러한 악보들은 15세기 음악사연구에 귀중한 음악사료들이므로, 음악사적 관점에서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세조 때 五音略譜와 16정간보가 창안되고, 회례아악이었던 정대업과 보태평이 종묘제례악으로 개정됨에 따라서 악보 편찬작업이 필수적으로 따르게 되었는데, 그 결과가 바로≪세조실록≫권 48과 권 49에 전하는≪세조실록악보≫이다. 종묘악과 원구악을 오음악보와 16정간보로 전해주는≪세조실록악보≫는 조선초 제례아악 연구에 필수적인 고악보의 하나이기 때문에, 그 악보는≪세종실록악보≫와 함께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는 귀중한 음악사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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