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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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 회화
  • 4) 회화의 제경향
  • (5) 이암·신사임당의 화풍

(5) 이암·신사임당의 화풍

 조선 초기의 화단에서 이미 살펴본 대표적인 산수화가들과는 달리 영모나 초충의 분야에서 독보적인 경지를 개척했던 인물로 두성령 이암(1499∼?)과 申師任堂(1504∼1551)이 있다. 임영대군의 증손인 이암은 영모와 화조에 뛰어났고 앞에서 소개하였듯이 중종 어진의 제작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특히 강아지 그림에서 독특하고 독보적인 경지를 이루어 널리 알려져 있다.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호암미술관 소장의<花鳥狗子圖>는 그의 화풍의 특징을 잘 보여 준다(<그림 10>). 꽃나무를 배경으로 하여 평지에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세 마리의 강아지를 주제로 다루었다. 무엇인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검둥이, 낮잠에 빠져 있는 누렁이, 벌레를 가지고 놀고 있는 흰둥이가 서로 다른 털 색깔과 행위를 보여 주면서도 모두 한결같이 귀엽고 천진난만한 모습을 드러낸다. 특히 강아지들의 눈매와 표정은 너무도 귀엽고 재미있어서 보는 자로 하여금 웃음과 샘솟는 애정을 금할 수 없게 한다. 실로 강아지들의 생태에 대한 애정어린 관찰과 정확한 파악, 숙달된 솜씨와 요체를 득한 묘사력이 결합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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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0>화조구자도
<그림 10>화조구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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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강아지들의 묘사에서 간취되는 묵법은 일본의 滲透法이라고 하는 기법의 시원으로 믿어진다.818) 吉田宏志,<17世紀から19世紀に至る時代の韓國繪畵と日本繪畵の關係>(≪韓國學의 世界化≫ Ⅱ, 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90), 58∼67쪽. 이암이 일본에서 오랫동안 자국의 화가로 오인되었던 사실을 감안하면 그의 영향이 일본의 宗達을 비롯한 화가들의 묵법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은 쉽게 짐작된다.

 <화조구자도>는 이 밖에도 몇 가지 중요한 사실들을 일깨워 준다. 먼저 강아지들이 제한된 공간에 매어있지 않고 확트인 공간에서 자유를 누리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어 안견파 산수화들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은 공간개념을 드러낸다. 또한 주변의 바위 표현에는 16세기 전반에 유행한 안견파의 단선점준이 나타나 있어 이암도 안견파 화풍의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 준다. 그리고 배경에 보이는 꽃나무, 한 쌍의 새들, 그리고 곤충의 표현은 매우 섬세하고 정확하며 아름답다. 특히 꽃나무의 표현은 섬세한 雙鉤塡彩法으로 이루어져 있어 강아지들의 묘법과 대조를 보인다. 또 한가지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꽃을 향하여 날아드는 나비와 벌의 모습은 신사임당의 草蟲圖의 출현을 예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무튼 이암의 이러한 강아지 그림은 후대 영모화의 범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조선 초기의 회화가 독자적 경지를 개척하고 확립하였음을 분명하게 밝혀준다.

 이암 화풍의 또 다른 일면은 일본 개인 소장의<架鷹圖>에서 잘 드러난다.819)≪龍星閣コレクション李朝の繪畵展圖錄≫(西武美術館, 1988), 圖 1 참조.아름답게 장식된 횃대에 빨간 끈으로 매인채 앉아 있는 모습의 매를 표현한 이 그림은 매의 매서운 눈, 날카로운 부리와 발톱, 무늬있는 깃털 등을 섬세하고 정교한 필묵법으로 정확하게 묘사한 높은 경지를 보여준다. 횃대의 표현에서 드러나는 색채의 표현 또한 뛰어나다. 무엇보다도 맹금으로서의 매가 보여주는 당당함, 날카로움, 넘치는 氣의 표현이 주목된다. 이암이 맹금의 묘사에 있어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뛰어난 경지를 이루었음을 알 수 있다.

 이암 못지 않게 주목되는 인물이 신사임당이다.820) 이은상,≪보유수정 사임당의 생애와 예술≫(成文閣, 1977).
李成美,<朝鮮時代 女流畵家 硏究>(≪美術資料≫ 51, 1993), 98∼149쪽.
李珥의 어머니로서 현모양처의 대표적인 본보기로 널리 알려져 있는 신사임당은 시·서·화에도 뛰어났다. 신사임당의 넷째 아들인 李瑀(1542∼1609)와 장녀 李夫人(1529∼1582)도 그림을 잘 그려 예술가 집안을 이루기도 하였다.

 신사임당은 어려서부터 안견의 화풍을 배워 그림을 그렸고 산수·영모·포도·화훼·묵죽·초충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초충도로 유명하여 현재 전해지고 있는 대부분의 초충도들이 신사임당의 작품으로 전칭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초충도들을 포함하여 신사임당의 전칭 작품들은 한결같이 작가에 의한 낙관이 결여되어 있어서 진작이라고 단정지을 만한 것이 없다.

 다만 개인 소장의<月下孤舟圖>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초충도 병풍이 신사임당의 전칭 작품들 중에서 화풍이나 격조로 보아 비교적 그의 회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고 믿어진다.<월하고주도>는 한쪽 중반부에 치우친 편파구도, 확대된 공간, 遠山의 묘사 등에서 안견파 화풍의 잔흔을 보여 준다.821) 安輝濬, 앞의 책(1980), 그림 47 및 144∼145쪽. 그러나 土坡의 묘사, 필묵법 등에서는 조선 중기에 크게 유행하게 되는 절파 화풍의 기미가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어서 일종의 절충적이고 과도기적인 양상을 나타낸다.

 회화와 관련하여 신사임당의 위상을 뚜렷하게 하는 것은 초충도이다. 신사임당의 작품으로 전칭되고 있는 많은 초충도들 중에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작품을 가장 주목하게 된다(<그림 11>). 신사임당의 방계 후손인 申暻의 발문과 吳世昌의 발문이 있고 전존하는 작품들 중에서 제일 좋기 때문이다. 병풍으로 꾸며져 있는 현재의 순서는 ①수박과 들쥐 ②가지와 벌 ③오이와 개구리 ④양귀비와 도마뱀 ⑤맨드라미와 소똥구리 ⑥산나리와 매미 ⑦어승이와 개구리 ⑧산차조기와 사마귀 등으로 되어 있으나, 실제는 각 폭마다 2종 이상의 식물과 곤충이나 동물이 묘사되어 있다.822) 安輝濬, 앞의 책(1985), 圖 68∼70 및 163쪽의 李源福의 해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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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1>초충도(가지)
<그림 11>초충도(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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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지에서 자생하는 화훼초충을 주제로 한 이 그림들은 비교적 단순한 구도와 구성, 沒骨法 위주의 표현, 아름답고 차분한 색채, 여성적이고 섬세한 묘사 등이 공통적인 특징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특징들은 결국 이 작품들이 여성들을 위한 繡本 그림임을 말해 준다. 단순한 구도, 몰골법 위주의 표현, 음양의 대조가 강한 잎의 묘사, 점으로 단순하게 표현된 지면의 모습 등은 그 좋은 증거들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초충도들은 조선시대에 수놓는 여성들을 위하여 많이 그리고 자주 그려졌을 것이 분명하다. 또한 이러한 초충도들은 신사임당을 비롯한 여성들 사이에서 흔히 그려지고 보급되었을 것으로 믿어진다. 이 밖에 이러한 초충도들을 통하여 섬세한 女性畵의 면모와 한국적인 색채감각을 엿볼 수 있는 점도 중요하게 여겨진다. 그러므로 그 의의가 자못 크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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