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Ⅳ. 예술
  • 6. 공예
  • 1) 금속공예
  • (5) 도검

(5) 도검

 여말선초 왜구의 침입이 자주 있었고, 또 조선 초기 북방을 경비케 한다든가 북방 6진을 개척하기 위해 병력을 동원하였다든가 하는 기록이 자주 보이고 있는 점으로 볼 때 공격용이든 방위용이든 무구류계통의 제작이 상당한 수준까지 발전되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실제의 유물과 현존하는 것 등을 비교하여 볼 때 그렇게 발달하지는 못한 것 같다. 刀劍은 원래 鍛工品으로 조선시대의 도검은 대체적으로 양질의 것이 아니었으나 임진왜란 전에는 일본도검의 영향을 받아 그나마 우수한 도검을 제작하였던 것 같다. 그 예가 李舜臣의 有銘刀雙口(아산 현충사 소장)이며 이 검은 칼날과 칼등부가 별개의 것을 단조로 접합시켜 하나의 도검을 만들었다. 명문에는 검을 만든 검장인 李茂生·太貴蓮의 성명과 함께 “三尺誓天山河動色 一揮掃蕩血梁山河”라는 문구가 있으며 조선 초기 도검의 대표작임을 알 수 있다.

 이 밖에 개인 소장의 三寅劍과 궁중에서 의식도로 사용되었던 삼인검 등이 있는데, 특히 전자에 銘記된 내용을 보면 “寅年寅月寅日”에 만들었다고 되어 있다. 劍身에 金銀象嵌으로 ‘三寅劍’이라는 劍銘과 星座가 入絲되어 있고 검신의 한편에는 星辰, 한편에는 梵字와 전서체로 “參寅劍乾降精坤援靈日月象岡澶形撝雷電運玄坐推山惡玄斬貞放”이란 28자가 金入絲되어 있다. 궁중의 삼인검이 대개 은입사이므로 금입사된 것은 이 검이 유일한 것이 아닐까 한다. 이 검은 入絲技法 또한 정교하다.

 이와 같은 도검류 이외에 개인용의 還刀·粧刀 등이 있으나 제작수준은 이에 미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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