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5. 국제교역의 발달과 마찰
  • 1) 중국·일본 사이의 중개무역
  • (4) 중·일 중개무역의 성격

(4) 중·일 중개무역의 성격

16세기 동아시아의 국제교역은 교역 참가국·상품·교역량 등에서 큰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교역 당사자는 중국·한국·일본 외에, 포르투갈·유구상인 등이 새로운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들은 동남아시아 상품을 중개하거나 중국 비단을 일본에 중개하여 이득을 취하였다.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16세기 동아시아의 국제교역은 은을 결제수단으로 삼았고 이에 따라 각국의 은이 중국으로 집중하는 추세를 보였다. 한국·일본으로부터도 많은 양의 은이 중국으로 흘러 들어갔다.

16세기 동아시아의 국제교역 활성화의 배경으로는 농업경제 발달을 빼놓을 수 없다. 15세기에 이르면 동아시아 3국은 休閑法의 제약을 극복하여 생산력 발전에 획기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었다. 농업경제의 발달은 상품의 구매력을 증대시켜 국내 유통경제와 함께 국제교역의 활성화에 큰 도움을 주었다. 농업경제의 발달에 따른 지방 장시를 통한 貿穀活動은 대외무역에서 필수적인 募銀·採銀의 자본으로 활용될 대량의 곡물 확보를 가능하게 하였다.300) 이상은 李泰鎭, 앞의 책(1986), 296쪽 및 앞의 글(1994), 177∼178쪽을 요약·정리하였다. 그리고 貢納·軍役 징수에서 급격히 증가한 代納化의 진전에 따라 획득된 미·포를 주축으로 대외무역 자본의 축적이 가능하게 되었다.301) 古谷暢子,<16世紀朝鮮の大規模耕地開發と對中國·日本貿易-李泰鎭氏の一連の硏究に寄せて->(≪歷史評論≫516, 1993), 62쪽.

대외무역은 서울의 부상대고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이들은 직접 또는 지방상인과의 동업을 통해 대외무역을 장악해 갔다. 대일무역의 중심지인 3포에는 많은 서울상인이 일본의 구리나 은을 사기 위해 활동하고 있었다. 구리는 鍮器 제작에 필요한 것이었고, 은은 대중국무역을 목표로 한 것이었다.302) 백승철, 앞의 글, 272쪽.

16세기 국제교역의 발달 속에서, 조선상인들은 사행원들과 결탁하여 대량의 비단과 원사를 중국에서 수입하여 三浦倭館에서 일본상인에게 판매하였다. 그리고 일본에서 수입한 은은 비단이나 원사를 수입하기 위해 다시 중국으로 수출되었다. 16세기 동아시아 3국은 중국의 비단·원사·도자기, 조선의 곡물·면포, 일본의 구리·은 등의 상품을 중심으로 상호교역체계를 발전시켰다. 이러한 중국-한국-일본을 연결하는 동아시아의 통교기구 속에서 조선은 중개무역을 통해 많은 이득을 올렸다.303) 李泰鎭, 앞의 글(1991), 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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