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Ⅰ. 임진왜란
  • 3. 강화회담의 결렬과 일본의 재침
  • 3) 조·명군의 활약
  • (3) 조·명군의 추격전

(3) 조·명군의 추격전

 조·명군은 육·해전에서 왜육군의 북상과 왜수군의 서해로의 진출을 좌절시키면서 왜군의 전력이 임진왜란의 초기보다 약세임을 파악하게 되었으므로 후퇴하는 왜군을 맹렬하게 추격하였다.

 경기감사 洪履祥 등은 蘇草坪에서 왜군을 추격하였고, 경상우병사 정기룡은 9월 중순부터 청주에 머물면서 20일경 본대에서 떨어져 나온 가등청정군의 일부 부대가 聞慶·比安·軍威를 경유하여 達城郡 공산방면으로 후퇴할 때 이를 報恩 부근에서 공격하여 막대한 손실을 입혔다(보은전투). 이 전과는 도원수 권율이 서북병 수천을 지휘하여 가등청정을 비안까지 추격하고 경상감사 李用淳이 義城방면에서 왜군을 견제하는 가운데 이루어진 승리였다. 앞서 가등청정은 경리 양호에게 靑山에서 쫓기고 있었으므로 울산으로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제독 마귀는 직산(소사평)전투 후 퇴각하는 모리수원의 주력을 뒤쫓아, 부총병 彭友德·유격 擺賽·柴登科 등으로 하여금 금강까지 추격케 하여 진천의 왜군도 荊江을 떠났다. 이를 추격한 명군은 연전연승하여 왜군도 영·호남으로 후퇴하였다.

 한편 우희다수가의 왜좌군은 호남을 석권하고 충청 서부방면으로 진출하였지만 우군의 북상이 좌절되자 9월 상순경부터 舒川에서 익산방면으로 회군하였고, 소서행장도 중순에는 井邑을 거쳐 順天으로 후퇴하였다. 이로써 왜의 정유재침은 육·해전에서 모두 실패로 끝나 왜군은 종전되기까지 수세와 방어로 일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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