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2. 붕당정치의 전개
  • 3) 제2차 예송과 남인정권의 등장
  • (3) 제2차 예송 후의 정국 변동

(3) 제2차 예송 후의 정국 변동

 일반적으로 1674년의 제2차 예송 귀결은 곧 서인정권의 몰락으로 간주되고 있으며 남·서인 정권교체는 바로 남인들의 예송 승리 결과라고 인식되고 있다. 당시의 정권교체는 물론 예송이 직접적 계기가 되었지만, 이것만이 유일한 원인은 아니었다. 갓 즉위한 숙종은 일찍부터 송시열 일파에 적개심을 가지고 있었던 터에 청풍 김씨 외척들에 의해 좌우되고 있었다. 그는 정치경륜이 전무한 외에도 독선적인 성품 때문에 정국을 좌우하는 주요 고위직의 인사를 즉흥적이고 과감하게 처리하였다.

 숙종이 즉위한 후에도 서인·남인의 정권교체는 매우 완만하고 복잡하게 진행되었다. 7월의 복제 개정 후 12월까지 약 반년간은 여전히 서인들이 정권을 장악하고 있었는데, 김수흥을 비롯한 몇 사람의 서인들이 처벌을 받기는 하였으나 그들은 여전히 의정부·6조·삼사 등의 요직에 절대 다수를 점령하고 있었고, 특히 동서반의 모든 인사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다만 승정원과 양사에 남인들이 다수 배치되어 있어 그들의 발언권이 강화될 여지를 안고 있었다. 남인들은 현종의 인산을 마친 12월 18일부터 본격적인 송시열 탄핵에 나서기 시작하였는데, 이는 곧 12월 인사 때부터 압도적인 남인 우세로 나타나게 되었다. 숙종 원년(1675) 정월 2일 허목이 이조참판이 되어 인사권을 쥐게 되면서0178)이 때 판서 洪處亮과 참의 李翊相은 西人이었지만 모두 사표를 제출하고 정무를 회피하고 있었다(≪肅宗實錄≫권 2, 숙종 원년 정월 신유). 대대적인 정권 교체 작업이 일어나게 되었다. 허목은 예송의 귀결 이후 일약 국가의 원로로 받들어져 권위를 누리고 있었고, 그 역시 숙종과 마찬가지로 관례를 무시하고 독단적인 인사를 과감하게 추진할 수 있었다. 이리하여 남인들과 청풍 김씨 일가는 그해 3월까지 이조·병조·삼사·승정원 등 대부분의 주요 관직을 장악하여 문무관의 인사권은 물론 통청권·언론권·병권 등의 주요 권한들을 장악하게 되었다. 이러한 정국의 변동에는 김우명·김석주 등 외척을 중심으로한 서인 비주류의 송시열 일파 축출공작이 크게 작용하고 있었고, 이들은 남인들과 일종의 연합전선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러나 송시열 일파의 서인 주류가 축출되자 외척세력과 남인들은 곧 경쟁상태에 들어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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