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4. 붕당정치의 동요와 환국의 빈발
  • 1) 환국의 개념과 범주 및 연구 시각
  • (2) 환국의 범주

(2) 환국의 범주

 지금까지의 연구에서는 환국에 대한 개념이 명확하지 못하여 하나의 사건에 대해서도 서로 다르게 명명한 예가 적지 않으며, 또 어떤 사건을 환국으로 볼 것인지도 분명하지 못하였다. 환국의 실상과 정치사적 의미를 규명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 범주부터 분명히 설정할 필요가 있다.0290)환국에 해당하는 같은 정치적 현상을 놓고서도 시각과 처지에 따라서 또는 어떤 측면을 강조하는가에 따라서 다르게 부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를테면 甲寅禮訟·庚申大黜陟·丙申處分·辛壬士禍 혹은 辛壬獄事 등이 그것이다. 또 정치적으로 같은 성격의 현상임에도 논의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는 경우도 있다. 논의를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이들을 함께 묶어 객관적인 개념으로 통일시킬 필요가 크다.

 숙종 연간에 들어서면서 환국이 여러 차례 발생하였다. 첫번째는 위에서 말한 바 현종이 죽고 숙종이 즉위한 숙종 즉위년(1674)에 제2차 복제논쟁을 계기로 서인이 물러나고 남인이 정국을 주도권을 장악한 甲寅換局이다. 두 번째는 숙종 6년의 庚申換局이다. 경신환국은 정국을 주도하고 있던 남인이 淸南과 濁南으로 분립하여 대립하는 가운데 탁남이 兵權을 장악하려는 기미를 보이자 훈척계열의 金錫冑와 국왕 숙종이 합력하여 남인을 축출하고 서인을 다시 진출시킨 것이다. 세번째 환국은 숙종 15년의 己巳換局으로서 숙종과 昭儀 張氏 사이에 태어난 왕자의 位號를 정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이에 반대하던 서인들이 밀려나고 남인이 다시 등용된 것이다. 네번째는 숙종 20년 폐비되었던 仁顯王后 閔氏를 복위케 하고 왕후가 되었던 세자의 생모 장씨를 다시 嬪으로 강등하게 하는 조치와 함께 남인을 물러나게 하고 서인을 등용한 甲戌換局이다.

 흔히 위에서 말한 네 번의 환국, 혹은 갑인환국을 제외한 세 번의 환국만을 환국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으나, 정국을 주도하는 붕당과 견제하는 붕당이 서로 교체됨으로써 정국이 급격하게 전환하는 것을 환국이라고 정의하면 이러한 환국은 그 이후에도 몇 차례 더 발생하였다. 갑술환국 이후 약 15년간은 소론계열이 정국을 주도하는 가운데 노론의 일부가 참여하면서 정국은 안정되었다. 그러한 안정은 숙종 36년 3월 당시 정국을 주도하던 소론의 지도자 최석정이 지은≪禮記類編≫을 거두어 들여 불태우게 하는 조치를 계기로 깨어졌다. 이를 계기로 노론이 소론을 공격하면서 점차 정국의 주도권을 장악하였다. 이 때 정국의 전환은 그리 급격하지도 않고 그 규모와 영향 또한 상대적으로 매우 미약하였지만, 이로 인해서 소론이 퇴조하고 노론이 진출하였다는 점에서는 환국의 범주에 넣어 생각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를 庚寅換局이라 할 수 있겠다.

 노론과 소론의 정치적 영향력은 숙종 42년에 이르러 다시 크게 변전하였다. 숙종 42년 8월 숙종은 당시 정국을 주도하는 소론의 영수로 인정받던 尹拯의 부친 尹宣擧 문집의 인쇄 원판을 헐어 없애도록 하고, 이어 이듬해에는 윤선거와 윤증 부자의 官爵을 추탈하였다. 이러한 숙종의 조치를 흔히 丙申處分이라 한다. 병신처분은 이를 계기로 소론은 퇴조하고 노론이 정국의 주도권을 잡았다는 점에서 보면 환국에 해당하는 것으로 丙申換局이라 하는 데 무리가 없다.

 경종 원년(1721)부터 그 이듬해 경종 2년경에는 경종의 동생인 延礽君(후의 英祖)을 왕세제로 책봉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노론과 소론 사이의 대립이 극도로 날카로워진 상황에서 소론이 노론을 대거 숙청하고 주도권을 장악하였다. 이 역시 노론과 소론 사이에 정국 주도권이 급격히 교체된 사건이라는 점에서는 하나의 환국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를 辛壬換局이라 할 수 있다.

 경종 4년 8월 25일 경종이 죽고 왕세제 연잉군(영조)이 즉위하면서 정국은 대단히 불안정해졌다. 소론 가운데 노론을 처벌하는 데 강경파인 峻少계의 핵심 인물들은 자연히 중앙 정계에서 도태되고 온건파인 緩少계의 일부만 남게 되었다. 그러다가 결국 이듬해인 영조 원년(1725)에는 완소계도 물러나고 노론이 정국의 전면에 진출하였다. 이 때의 정국 주도 집단의 교체와 정국 전환도 분명히 환국의 범주에 드는 것이므로 이를 乙巳換局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을사환국으로 등장한 노론은 신임옥사 당시 처벌된 노론계열의 인물들을 신원하고 소론을 처벌할 것을 집요하게 주장하였다. 이에 영조는 영조 3년 노론 인물들을 핵심 관직에서 물러나게 하고 소론을 불러들였다. 이를 丁未換局이라 한다.

 정미환국 이후 완소계열의 인물들이 정국을 주도하는 상황에서 준소계열 및 남인의 일부 인물들이 영조의 왕권의 정통성을 부정하며 반란을 일으켰다. 이를 戊申亂이라 한다. 무신란을 진압한 뒤 영조는 더욱 강력하게 붕당을 부정하며, 노론과 소론 가운데 그 논의가 온건한 자들을 균형있게 등용하여 자신이 정국을 주도하는 탕평책을 추구하였다. 영조 초년 이후 탕평책이 추구되면서 환국은 더 이상 발생하지 않았다.

 이상 숙종 즉위년(1674)부터 영조 4년(1728) 사이 50여 년간에 걸쳐 발생한 아홉 차례의 환국은 다른 시기의 정치집단의 교체와 비교해서 비교적 짧은 시기에 집중적으로 발생했다는 점, 어떠한 경향성을 띠면서 당대 정치사를 대표할 만한 특성을 이룬다는 점에서 이를 특별히 구별하여 하나의 범주로 묶고 개념화하여 ‘환국’이라고 하는 것이 타당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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