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4. 붕당정치의 동요와 환국의 빈발
  • 2) 환국의 실상
  • (5) 경인환국

(5) 경인환국

 갑술환국으로 진출한 정치집단은 전체적으로 서인이라 할 수 있지만, 그 내부에는 소론과 노론이 공존하고 있었다. 대체적으로 소론이 우세한 가운데 노론이 일부 안배되어 있는 형세로 갑술환국 이후 약 15년간은 노·소간의 대립보다는 공존의 분위기가 강해 이후 등장하는 탕평 정국과 유사한 면모를 보이기도 하였다.0326)鄭景姬,<肅宗後半期 蕩平政局의 變化>(≪韓國學報≫79, 일지사, 1995). 하지만 이 시기에는 아직 붕당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논리에 입각한 정국운영은 나타나지 않고, 그러한 방향을 지향하는 논리와 반대하는 논리가 제기되었다. 정치운영론은 국왕이 정국을 주도해야 한다는 탕평론이 상대적으로 우세하였다. 탕평론은 붕당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각 붕당을 골고루 균형있게 등용해야 한다는 박세채의 調劑保合論과, 붕당을 묻지 말고 능력에 따라 등용하고 상벌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建極論으로 나누어 볼 수 있으며, 탕평론과 다른 계열로는 君子黨-小人黨論에 입각하여 자신들의 黨論을 고집하는 주로 노론계에서 제기한 是非分別論 등이 있었다.0327)朴光用, 앞의 책. 이러한 가운데 당색으로는 소론계열이지만 당색보다는 실무 관료 성향이 강한 南九萬과 崔錫鼎과 같은 인물들이 숙종의 의지에 부응하면서 정국을 이끌어 갔고,0328)≪肅宗實錄補闕正誤≫권 26, 숙종 20년 4월 갑신.
≪肅宗實錄補闕正誤≫권 32 상, 숙종 24년 4월 임술.
朴光用, 위의 책.
노론 가운데 이들과 성향이 유사한 申琓과 李濡 등이 정국 운영에 참여하면서 淸流로 불리는 노론과 소론 일부의 是非分別論者들이 비판적 견제를 하는 상황이었다. 정치 집단이 노론과 소론 내부에서 각각 더 작은 집단으로 분기하면서 다시 사상과 이념 또는 좀 더 구체적인 정치운영론 등이 정치적 쟁점으로 부상하였다.

 이렇게 암류하던 정치운영론을 둘러싼 대립이 표출된 것이 숙종 36년의 최석정의≪禮記類編≫을 불태운 일이다. 당시 정국 운영의 중심에 있던 최석정이 당시로부터 10년 전에≪大學≫과≪中庸≫그 밖의≪孝經≫등 경전들에서 禮에 관계되는 내용을 발췌 재정리하여≪예기유편≫을 편집하였는데 숙종 35년에 이르러 이것이 경연의 교재로 쓰기로 결정되었다. 이에 노론계열의 관료들과 지방의 유생들까지 광범위하게 들고 일어나≪예기유편≫이 朱子를 경시하고 주자의 학설에 어긋났다며 그 板刻을 불태워 버리라고 1년이 넘도록 집요하게 공격을 가하였다. 숙종은 초기에는 이러한 노론의 행태를 禮書를 핑계로 黨同伐異하면서 소론의 중심 인물인 최석정을 공격하는 것이라며 최석정을 두둔하였으나, 결국에는≪예기유편≫을 모두 거두어 불태우게 하였다.0329)≪肅宗實錄≫권 48, 숙종 36년 3월 경진. 그 며칠 뒤에는 영의정 최석정을 판중추부사로 일선에서 한 발 물러나게 하고, 노론 李畬를 영의정, 金昌集을 우의정으로 앉혔다.0330)≪肅宗實錄≫권 48, 숙종 36년 3월 신묘. 이로써 정국의 주도권은 어느 정도 노론 쪽으로 기울게 되었다. 상대적으로 우세한 위치에 있던 소론계열을 밀어내고 노론계열이 정국의 주도권을 잡기 시작하였다는 점에서는 이 역시 하나의 환국으로 보아 경인환국으로 부를 수 있는 사건이다.0331)朴光用, 앞의 책.
李肯翊,≪燃藜室記述≫권 38(속집 권 7).

 경인환국은 기본적으로는≪예기유편≫이라는 최석정 개인의 편책을 둘러싼 다툼이다. 그러나 그 책이 경연에서 교재로 쓰일 예정이었기 때문에 학문·사상적 태도의 면에서 주자를 교조적으로 묵수하는 노론계열과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접근하는 소론계열의 대립이라는 측면이 부가되었고, 국왕 숙종이 개입하여 불태우라는 판결을 내림으로써 전국적인 차원의 노론·소론 사이의 이념 대립으로 확산되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최석정 개인의 저술에 국한된 문제였고, 노론과 소론 사이의 이념적·정치적 대립도 그리 날카롭지 않았다. 경인환국으로 교체된 정치 집단의 규모나 환국 후에 흔히 따르는 상대당에 대한 보복적 처벌의 강도 역시 여타 환국들에 비하면 매우 약한 편이었으며 노론의 정국 장악도 확고하지는 못하였다. 전반적으로 경인환국으로 인한 파급 효과는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 무렵부터 노출되기 시작한 노론과 소론 사이의 이념적·정치적 대립의 요인들은 숙종 말년으로 가면서 점차 전면으로 표출되어 양보할 수 없는 대립을 야기하였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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