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4. 붕당정치의 동요와 환국의 빈발
  • 2) 환국의 실상
  • (8) 을사환국

(8) 을사환국

 신임환국을 중심으로 한 경종 연간의 정치상황은 국왕의 지위를 근본부터 위협하는 것이었다. 당시 왕이었던 경종도 그렇지만 특히 노론의 지지를 업고 왕세제로 책봉되었던 연잉군의 처지는 매우 위태로웠다. 이러한 상황에서 경종 4년 8월 경종이 즉위 4년 만에 죽자 왕세제-연잉군이 왕으로 즉위하였으니 바로 영조다. 영조는 즉위한 직후 이광좌를 불러들여 좌의정으로 제배하였다.0359)≪英祖實錄≫권 1, 영조 즉위년 9월 신유. 이광좌는 경종 연간 준소계열 주도의 정국 아래에서 물러나 있던 인물이었다. 그리고 영조는 이어서 준소 가운데서도 강경파의 핵심 인물인 김일경이 지은 壬寅獄事에 대한 敎文 가운데 魯桓公子 翬가 형을 죽인 것을 가리키는 ‘鍾巫’, 진시황이 맏아들 扶蘇를 죽이고 작은 아들 胡亥를 세운 것을 뜻하는 ‘沙丘’, 당태종이 형과 아우를 죽인 것을 가리키는 ‘蹀血’ 등과 같은 표현을 문제 삼았다. 모두 영조가 왕세제 시절의 일들을 빗댄 것으로 인정하여 김일경의 관작을 추탈하고 문외출송하라고 명하였다.0360)≪英祖實錄≫권 2, 영조 즉위년 11월 기유. 김일경을 절도에 안치하였다가 의금부에 내려 국문하면서 신임옥사의 고변자인 목호룡과 내통한 것으로 몰아 목호룡도 잡아와 함께 국문하였다. 영조 자신이 의금부에 나가 이들을 친국하고는 그 날로 참형에 처하였다.0361)≪英祖實錄≫권 2, 영조 즉위년 12월 정축. 영조는 이어 붕당의 폐단을 누누히 강조, 붕당을 타파할 것을 천명하면서 자신이 직접 정국을 주도해 나갔다.0362)≪英祖實錄≫권 3, 영조 원년 정월 임인. 영조 원년(1725) 정월에 들어서는 노론계열의 척신으로서 영조의 탕평에 동조하던 閔鎭遠을 이조판서로 삼음으로써 완소계열을 견제하게 하였다.0363)≪英祖實錄≫권 3, 영조 원년 정월 신유 및 2월 정유. 그렇게 완소와 노론을 함께 등용하여 견제와 균형을 조성하고 나서 김창집·이이명·이건명·조태채 등 노론 4대신의 관작을 회복시켰다.0364)≪英祖實錄≫권 4, 영조 원년 3월 경자. 이렇게 상황이 변하자 노론측에서는 당국하고 있는 완소의 중심 인물인 이광좌와 조태억 및 경종 연간 준소의 중심 인물들을 처벌하라는 주장을 제기하면서 소론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였다. 영조는 4월말에는 당국하고 있던 완소를 대신하여 노론의 정호를 영의정, 민진원을 좌의정, 이관명을 우의정에 제배하였다.0365)≪英祖實錄≫권 5, 영조 원년 4월 경인. 을사환국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다.

 을사환국의 마무리 작업으로서 5월에는 경종 2년(1722)에 노론을 숙청하면서 책봉된 功臣의 錄券과 會盟錄, 그리고 고변자 목호룡이 받은 교서와 초상화 등을 모두 불태워 버리게 함으로써 임인년의 옥사를 부정하니 이른바 임인옥안의 飜案이었다.0366)≪英祖實錄≫권 6, 영조 원년 5월 무신.
≪俟百錄≫권 7, 영조 원년, 春 翻壬寅獄老 黨遂大進.
이와 함께 소론에 대해서는 조태구의 관작을 추탈하고,0367)≪英祖實錄≫권 6, 영조 원년 5월 무신. 유봉휘를 귀양보내고 이광좌와 조태억 등의 관직을 삭탈하고 문외출송할 것을 명하는 반면,0368)≪英祖實錄≫권 7, 영조 원년 7월 기해. 노론에 대해서는 金壽恒에게 文忠, 이건명에게 忠愍, 조태채에게 忠翼, 權尙夏에게 文純, 이이명에게 忠文, 李喜朝에게 文簡, 금창집에게 忠獻이라는 諡號를 내리는 한편,0369)≪英祖實錄≫권 5, 영조 원년 4월 신미. 노론 4대신의 서원 건립을 허락함으로써 명분을 뒷받침하여 주었다.0370)≪英祖實錄≫권 7, 영조 원년 8월 신사.

 숙종 말년에서 경종 연간을 거치면서 노론과 소론 사이의 대립이 왕위 승계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지면서 충역을 다투게 되었다. 노론과 소론은 서로 상대방을 용납할 수 없게 되면서 숙청과 살육이 크게 일어났다. 이러한 상황에서 즉위한 영조는 소론 가운데 논의가 온건한 완소를 등용하여 정국을 이끌게 하였다. 그러나 자신의 왕위의 정통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준소계열을 용납할 수 없었다. 준소의 중심 인물들을 제거하고 그 반면에 경종 연간 과정에서 피해를 입은 노론 중심 인물들의 정당성을 회복시키는 조치를 취하면서 일시 등용하였던 완소까지도 퇴진시켰으니 이것이 을사환국이다. 을사환국은 붕당 사이의 대립 구도에 끼여 위협을 받고 있던 국왕 영조가 자신의 입지를 확보하기 위하여 취한 첫 단계 조처라고 할 수 있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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