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3. 인구의 감소
  • 1) 조선시대 인구 추정
  • (3) 역사인구학적 연구방법에 의한 연구결과

(3) 역사인구학적 연구방법에 의한 연구결과

Tony Michel, Fact and Hypothesis in Yi Dynasty Economic History:The Demographic Dimension, Korean Studies Forum, No. 5. 1979 winter∼1980 spring;<朝鮮時代 人口變動과 經濟史-人口統計學的 측면을 중심으로->(≪釜山史學≫17, 1989).

 호구자료 중 인조 17년(1639)부터 작성된≪호구총수≫또는 실록의 통계 수치에서 총 인구수를 호의 총수로 나누어 4.3명이란 평균 가구원수부터 먼저 구했다. 그리고 이 수치는 1925년 인구조사의 평균 가구원수 5.34명에 비해 약 23%가 누락된 것으로 평가하였다. 평균 가구원수 5명 규모는 헌종 14년(1848)의 실록 통계수치에 대한 다음과 같은 분석으로 뒷받침하였다. 즉 이때의 실록 기록은 호 110만, 구 1,260만이라고 했는데, 이는 이전의 기록들이 호 약 140만, 구 약 600만 정도를 나타낸 것에 비하면 큰 차이가 있는 것으로, 기록대로라면 가구원수는 11.3명이 된다. 이런 대가족 규모는 일반적인 것이 될 수 없으므로 110만 호는 210만 호의 오기일 것으로, 이렇게 보면 평균 가구원수는 5.9명으로 1925년 것과 거의 일치한다고 밝혔다. 이 기록은 호수 표기에는 잘못이 범해졌으나 실제 호구수를 처음 밝힌 기록으로 주목할만한 것이라고 평가하였다. 이에 근거해, 이전의 각 식년 조사기록에서 총인구수는 무시하고, 호수에 7.95명을 곱하면 각 시기의 실제 인구수로 상정할만한 규모가 나오는데, 이런 결과는 일반적으로 평균 호수가 50% 정도 축소되었으며, 기록된 호라 할지라도 가구원수는 약 23%가 호적에서 누락되었을 것이라는 가정을 가능하게 하였다. 결국 가장 타당성이 있는 평균가구 규모는 5.3명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렇게 파악된 호수의 누락율과 실제 평균 가구원수에 근거해 조선시대의 시기별 인구수를 추정 또는 산출하여 도표를 그려 제시했다(<그림 1>의 ③).

 인구 동향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첫째, 15세기 중엽인 세종대는 실제 인구가 550만∼750만 명 정도로 인구가 증가일로에 있었던 시기로 이 시기 이후에 호패제도가 중단되고(1469), 군역이 군포 납부로 대신하게 된 것도 인구증가로 노동력 부족현상이 해소되었기 때문이라고 파악하였다. 조선 초기의 인력부족 현상이 농업생산력의 증가, 徙民에 의한 북방지역의 농지 개척 등으로 해소된 결과로 보았다. 그러나 조선의 인구는 16세기 중엽 무렵에 1,000만명을 한계로 최고의 수준에 이른 다음 정체되었을 것으로 파악하였다.

 임진왜란 전후의 인구 동향에 대해서는 왜란 이전부터 인구 증가 둔화현상이 있었을 것을 강조하였다. 16세기 후반부터 인구의 성장이 눈에 띠게 완화되어 이런 상태에서 전란, 기근, 전염병 등의 재난으로 회복력이 더욱 떨어져 1590년대를 지나면서 인구의 2할 즉 200만 명에 가까운 숫자가 감소했을 것으로 보았다. 그후 매우 완만한 회복세를 보이면서 17세기 중엽에서 신속한 증가가 나타난 것도 임란 이전에 이미 인구 성장이 둔해진 증거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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