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2. 상업·수공업·광업의 변모
  • 2) 시전의 변화
  • (3) 금난전권의 강화와 상권경쟁

(3) 금난전권의 강화와 상권경쟁

 정부와 시전상인간의 상호 이해에 따라 성립된 금난전권은 점차 강화·확대되어 가는 추세에 놓이게 되었다. 시전상인들이 그들의 상권을 유지·강화하기 위한 목적에서 그리 되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또한 17세기 이후 수공업의 기술이 발달하면서 새로운 물품이 상품화되거나, 혹은 기존의 상품이 새롭게 가공되어 신상품으로 등장하는 현상이 발생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곧 상품의 다양화로 이어졌으며, 이러한 물품들을 취급하는 새로이 허가 받은 시전도 증가하게 되었다. 자연 금난전권을 가진 시전이 늘어나게 되었음은 물론이다.

 시전의 금난전권이 확대·강화됨에 따라 시전상인들은 물품의 독점적인 판매에만 만족하지 않았다. 시전상인들은 수공업자의 가공상품의 원료를 독점하여 수공업자를 자신들에게 예속시키려 하였다. 수공업 원료에 따라서는 본래부터 시전상인의 물종으로 市案에 등록되어 있었던 것도 많았다. 따라서 이러한 물종은 반드시 시전에서 구입해야만 했으며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난전으로 취급되었다.0978)宋贊植,≪李朝後期 手工業에 관한 硏究≫(서울大 韓國文化硏究所, 1973), 22쪽.

 뿐만 아니라 시전상인들은 수공업자의 생산품에 대한 전매권을 확보함으로써 생산자와 소비자를 격리, 이윤을 극대화하려 하였다. 시전상인들은 수공업자들이 제품을 소비자나 다른 상인에게 공급하지 못하도록 통제하고 있었다. 즉 제품을 本廛에게만 판매하도록 강요하였던 것이다. 시전상인의 물종으로 시안에 등록되어 있던 물품에 대해서는 생산자들이 자유스럽게 판매할 수가 없었고 본전상인의 통제를 받도록 되어 있었다.0979)宋贊植, 위의 책, 29쪽. 요컨대 시전상인들은 원료와 제품에 대한 규제를 가함으로써 수공업자에 대한 철저한 상업적 통제를 꾀하였던 것이다.

 이 같은 시전상인들의 움직임에 대하여 가장 민감한 대응을 한 사람들은 도시, 특히 서울의 수공업자들이었다. 이들은 본래 工曹·司饔院·造紙署·繕工監·尙衣院 등 관청 소속의 장인이거나 혹은 군인들이었다. 또한 이들은 생산에 필요한 도구를 가지고 있는 소상품 생산자들이었으나, 시장의 확대와 사회적 분업의 촉진에 따른 새로운 상품 수요의 증대로 말미암아 상품 생산에 진력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0980)宋贊植, 위의 책. 이들은 주변 여건의 성숙에 따라 자유로운 판매를 위한 목적으로 도성 내외에서 각종의 상품 생산에 힘쓰게 되었다.

 하지만 이들의 움직임은 곧 시전상인들로부터 제약을 받게 되었다. 상인들은 시장통제를 통하여 이들의 활동을 억누르려 하였다. 시전상인들은 수공업자로 하여금 그들의 제품 원료를 시전에서만 구입하도록 강요하였다. 수공업자가 시전에서 구입하는 상품은 최고 가격을 지불해야 했고, 시전에 판매하는 상품은 최저 가격을 받아야 했다.0981)宋贊植, 위의 책, 11쪽. 금난전권이 이들의 상업적 횡포의 근거였음은 물론이다.

 금난전권을 가진 시전이 증가하면서, 수공업자의 원료와 제품이 市案에 등록되는 예가 늘어나게 되었다. 이는 곧 시전상인에게는 독점적으로 취급하는 물종이 증가하는 것인 만큼 유리한 것이었지만, 수공업자에게는 그 반대였다. 예를 들면, 17세기 후반 凉臺의 제조와 판매는 성외의 의탁할 곳이 없던 寡女와 砲手妻가 담당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시안에 등록하여 市役에 응하기는 어려운 처지에 있었다. 결국 이들의 양대 제조·판매는 원료의 독점권을 가진 凉臺廛 市民에 의해 적발되었고 이어 난전으로 고발되기에 이르렀다.0982)≪承政院日記≫304책, 숙종 10년 6월 23일. 이러한 현상이 계속되자 수공업자들은 시전상인들의 움직임에 맞서 독자적으로 시전을 개설하려 하였고, 이러한 상황 속에서 양자간의 상권경쟁은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한편 시전상인의 금난전권에 의한 독점적 물품 매매는 물가의 상승을 초래하였고, 이에 따라 도시민의 생계에 큰 타격을 주게 되었다. 즉 금난전권의 확대와 강화에 따라 도시민의 생활물품의 대부분이 시전의 전매품이 되었으며, 그 결과 물가가 앙등하여 도시민의 생활에 큰 위협을 초래하게 되었던 것이다.0983)姜萬吉, 앞의 글, 327쪽. 또한 자본력이 미약한 도시의 영세상인이라든가 근교 농촌지역의 소생산자나 소농민의 자유로운 생산과 판매에도 지장을 가져오게 되었다. 결국 금난전권이라는 특권은 시전상인들의 상업적 성장에는 도움이 되었지만, 도시민 특히 빈민층과 주변의 농촌민들에게는 그들의 생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금난전권의 발동에 대한 이들의 반발과 저항이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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