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2. 상업·수공업·광업의 변모
  • 3) 공인과 공계
  • (2) 공계의 구성과 조직

(2) 공계의 구성과 조직

 공인은 대동법 시행에 따라 새롭게 등장한 상인이었지만, 시전상인과 함께 이 시기 도시 상인, 특히 서울 상인의 주축을 이룰 정도로 빠른 상업적 성장을 이루어 나갔다. 여기에는 공인에 의한 공물 청부제를 실시하면서 정부가 市價보다 훨씬 후한 貢價를 책정, 先給하는 등 공인에 대한 경제적 지원책을 펴나갔던 데에 큰 원인이 있었다. 따라서 공인이 된다는 것은 상당한 상업적 이윤을 보장받는 것으로 인식되었고, 자연히 공인이 되려는 사람들도 여러 계층에서 나오게 되었다.

 하지만 공인의 구체적인 인적 구성에 대해서는 상세하게 밝혀져 있지 못하다. 기록에 따르면, “…坊民을 택하여 주인으로 정하고 (貢)價를 優定하여…”0995)≪續大典≫戶典 稅貢. 라 되어 있으나 이때의 방민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사람들이었는지는 분명하지가 않다. 다만 이후 공인의 역할을 수행하던 사람들을 살펴보면, 공인 가운데에는 위의 ‘방민’ 이외에도 시전상인이나 匠人·其人·京主人·營主人 등이 공인으로서 공물 청부에 나서고 있었으며, 기왕의 방납인 중에도 공인으로 전환되어 간 사람들도 다수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공물을 납부할 수 있는 권리인 공인권이 점차 특권화되면서 고가로 매매되기에 이르면 私商이나 양반 사대부들도 공인권을 매입하여 공물 청부업에 직·간접으로 관여하는 현상도 벌어지게 되었다.0996)이러한 현상에 대해서는
吳美一,<18·19세기 貢物政策의 변화와 貢人層의 변동>(≪韓國史論≫14, 서울大, 1986).
―――,<18·19세기 새로운 貢人權·廛契 창설운동과 亂廛活動>(≪奎章閣≫10, 1987).
金東哲,≪朝鮮後期 貢人硏究≫(韓國硏究院, 1993) 참조.

 공인은 貢價라 불리는 공물 구매가를 지급 받았는데, 공가는 대동미 혹은 대동미를 作錢한 화폐로 지급되었다. 공가는 공인의 조직인 貢契에 주어졌다. 공계의 종류는 시대에 따라 존폐를 거듭한 까닭에 일정한 수가 유지되지는 않았다. 또한 이들이 공물청부업에서 차지했던 비중도 분명하게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정조 2년(1778) 各廛과 各契에 지급된 別貿공가의 액수를 보면, 공인이 조달한 액수가 70%를 상회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공물납부에서 공계가 차지하고 있던 비중의 일단을 짐작해 볼 수가 있다.

 공인들로 이루어지는 공계가 어떠한 형태와 조직, 규모로 구성되었는지도 확언하기는 어렵다. 대체로 적게는 수명으로부터 많게는 수십 명, 혹은 그 이상의 공인들로 구성되었던 것으로 여겨지지만, 상인조합을 결성하고 있던 시전상인의 예라든가 목재 조달 공인이었던 外都庫貢契의 경우를 통하여 공계의 내부적 구성의 일단을 살펴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일반적으로 상인들의 조합조직인 ‘都中’을 구성하는 제일 요소는 조합원인 都員의 가입 자격이었다.0997)劉元東, 앞의 책, 153쪽. 시전의 경우 각전마다 연고가 가장 밀접한 자를 우선 가입시켰으며, 전혀 연고가 없는 사람에 대해서는 도원의 총회에 회부하여 엄격한 전형을 거쳐 가입 여부를 결정하였다.0998)위와 같음. 육의전의 하나인 立廛이 혈연을 중심으로 한 강한 단결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0999)劉元東, 위의 책, 155쪽. 하지만 시전 중에서도 성립 당시의 사정이나 구조적 특질에 의해 반드시 비혈연자의 가입을 배제하지는 않았던 경우가 있듯이,1000)吉田光男,<李朝後期ソウルの米商人組合「米廛」について-1791年の辛亥通共前後を中心に->(≪史潮≫新 17號, 1985), 177쪽. 禮錢으로 불리는 신입 도원의 입회금에 등급을 설정하면서 비혈연자의 가입을 당연시하는 시전도 있었다.1001)金東哲, 앞의 책, 89쪽.

 공인 조직인 貢契도 각 계의 특성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을 띠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공인조합은 입전 시민과 같은 혈연적 유대도 없고, 단결도 시전 정도로 강하지 않았다는 견해1002)田川孝三,<貢人關係文書について>(≪夏博士還曆記念東洋史論叢≫, 山川出版社, 1975), 278∼279쪽.처럼 시전보다는 혈연적 유대관계나 조직의 공고함 면에서 미약했던 공계도 존재하였을 것이다. 貢人權의 매매가 광범하게 이루어지게 되는 시점에 즈음해서는 더욱 그러하지 않았을까 짐작된다. 그렇지만 외도고공계의 경우를 보면, 신입 계원의 선정 기준은 혈연적인 관계가 우선적으로 중시되었다. 이러한 기본 정신은 연고자와 무연고 신규자간의 가입 자격에 여러 순위를 규정하는 동시에, 가입금에 대해서도 상당한 차이를 둠으로써 구체화되었다.1003)金東哲, 앞의 책, 87∼88쪽. 요컨대 공계의 경우도 시전의 경우처럼 공계 성립 당시의 사정이나 해당 공계의 변천 과정에 따라 일률적이라기 보다는 보다 다양한 형태의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지 않았나 여겨진다.1004)초기에 혈연적인 유대관계가 강했던 외도고의 경우에도 공계의 자금부족에서 오는 현실적 문제를 타개하기 위하여 연고가 없는 신규가입자의 가입금을 점차 하향 조정한 사실도 공계의 인적 구성상의 성격이 항상 일정하지는 않았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일 것이다(金東哲, 위의 책, 86∼89쪽).

 공계의 조직은 이원적인 체계로 이루어져 있던 것으로 짐작된다. 외도고의 경우 원로층인 首席·任席·領位와 실무층인 大房所任·別任·房使喚·京庫次知·江次知·助哀次知·文書次知·戶曹次知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1005)金東哲, 위의 책, 90쪽. 각 次知들은 각기 공계의 업무를 상호 분담하면서 또한 견제하고 있었다.1006)육의전 중 하나였던 입전의 경우를 보면, 上公員에 大行首·都領位·首領位·副領位·次知領位·別任領位가 있었으며, 下公員으로 實任·矣任·書記·書寫 등이 있었다. 이들의 직임과 기능에 대해서는 劉元東, 앞의 책, 157∼159쪽 참조.

 공계를 유지하는 조합원의 자본금 출자는 불균등 출자의 형태를 띠는 것이 일반적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렇지만 공계에 따라서는 불균등 출자의 초기 형태를 유지하던 경우도 있었겠지만, 불균등 출자로부터 균등 출자로 전환되는 현상을 보이기도 하였다. 외도고의 경우가 그러하였다. 불균등 출자로부터 균등 출자로의 전환은 초기의 출자 형태가 어떠하였든, 점차 불균등 출자로 발전해 나가는 상인 조직의 일반적 출자 형태의 추세에 역행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그만큼 당해 공계의 商勢가 위축, 쇠퇴해가고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라 하겠다.1007)金東哲, 앞의 책, 1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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