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1. 16세기 사족의 향촌지배
  • 1) 사족지배체제의 형성과 그 의미

1) 사족지배체제의 형성과 그 의미

 16세기는 조선 초기에 완성된 국가질서가 이완된 시기라고 이해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조선 초기의 혁명적 권력을 토대로 정립된 강고한 국가권력과 국가의 지배층을 이루는 사족들이 지배권력을 공유하는 방향으로 이행한다고 할 수 있다. 이른바 ‘사족지배체제’란 그러한 국가체제를 염두에 두고 붙여진 이름이라고 이해된다.

 사족지배체제란 사족이 지배하는 사회체제라는 의미이다. 사족지배체제에 대해서 “관권과의 일정한 타협 위에서 군현 단위 및 촌락사회에서 그들의 향권을 관철시킬 수 있는 지배기구를 장악하고, 사족들이 관권과의 타협 위에서 吏民을 통제하고 있었던 향촌지배구조”라는 정의가 있다.0001)金仁杰,≪朝鮮後期 鄕村社會의 變動에 관한 硏究-18·19세기 ‘鄕權’ 擔當層의 變化를 중심으로-≫(서울大 博士學位論文, 1991). 이러한 구도를 조선 말기까지 발전시켜서, 수령의 향촌지배를 의식하는 입장에서는 사족지배체제를 ‘守令-士族主導 鄕村支配’라고 바꾸어 표현하기도 하였다.0002)高錫珪,≪19세기 鄕村支配勢力의 變動과 農民抗爭의 樣相≫(서울大 博士學位論文, 1991). 그러나 ‘사족지배체제’라는 말을 향촌사회에 국한하지 않고 조선 중기의 지배체제 일반으로 정의한다면, 사족지배체제를 “조선시대 사족지배를 위한 법률, 제도 및 이데올로기의 총체”라고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0003)金炫榮,≪朝鮮後期 南原地方 士族의 鄕村支配에 관한 硏究≫(서울大 博士學位論文, 1993). 물론 사족지배체제에 대한 개념 규정이 간단히 처리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단순히 향촌사회에서 국가권력(수령권)과 사족지배권과의 대립과 갈등이라는 문제에만 국한하지 않고-물론 그러한 점을 부각시킨 공로는 있지만-사림파의 성리학적 향촌지배 이데올로기의 관철과 그러한 이념에 의한 체제 구축이라는 점 등을 감안하여 이러한 제도, 관행 및 이데올로기의 총체가 무엇인가에 대한 포괄적인 개념정의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여기에서는 사족지배체제가 가장 전형적으로 나타난 시기라고 알려진 16세기 사족의 향촌지배의 여러 양상을 정리하고자 한다. 이 시기는 사림파에 의한 향촌지배가 전개되어 이른바 사족지배체제가 정착되는 시기이므로 사족의 향촌지배의 여러 양상을 살펴보는 것은 사족지배체제의 구체적인 의미를 천착하는 것이 될 것이다.

 고려 말 재지지배집단이었던 향리층이 조선 초기에 在地士族과 吏族으로 분화되고 이러한 가운데 재지세력은 향리층이 이탈되고 品官層을 중심으로 운영된다. 품관층은 사족층의 모집단이면서 향촌사회의 지배층이기도 하다. 이러한 품관층은 16세기 이후 관직과 일정한 연계를 가지는 사족과 그렇지 못한 비사족으로 구분되어 간다.0004)李樹健,≪嶺南士林派의 形成≫(嶺南大 出版部, 1979).

 이렇게 계층분화가 꾸준히 진전되는 가운데, 사족이나 품관향족이나 모두 유향소를 구심점으로 향촌사회의 지배층으로서 수령을 보좌하면서 자신들의 지방지배를 관철시켜 나갔다. 유향소 이외에도 이들은 군현 단위에서는 司馬所, 鄕校 등 향촌기구에 참여함으로써 향론을 형성하였고, 면리 단위에서는 향약의 시행을 통하여 향촌지배를 실현하여 갔다. 한편 이 시기에 이들 재지세력들이 향촌사회를 지배할 수 있었던 체통과 위신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성리학적 교양과 그를 유지할 수 있는 중소규모의 토지와 노비를 소유한 중소지주로서의 경제력에 의하여 가능하였다.

 16세기 사림파의 등장과 함께 중앙 정계는 갈등구조를 이루고 있었으며, 사림파들은 자신들의 기반인 향촌사회를 장악함으로써 그들의 권력을 강화하려 하였다. 그들은 지배이데올로기로서 성리학적 지방지배의 이념을 들고 나왔으며, 그 구체적인 방법으로 제시된 것이 유향소의 복립을 통한 향권의 장악과 향약을 통한 지배이데올로기의 실천이었다.0005)李泰鎭,<士林派의 留鄕所 復立 운동-조선초기 성리학 정착의 사회적 배경->(≪震檀學報≫34·35, 1972·1973).
―――,<朝鮮前期의 鄕村秩序-성리학적 질서의 확립을 중심으로->(≪東亞文化≫13, 서울大 東亞文化硏究所, 1976).
―――,<士林派의 鄕約普及運動-16세기의 경제변동과 관련하여->(≪韓國文化≫4, 서울大 韓國文化硏究所, 1983).

 조선 초기 군현제의 정비와 수령권의 확립을 통하여 안정된 지방지배질서 위에 사림파들에 의한 새로운 지방지배의 구상이 전개된 것이다. 사림파들은 재지사족을 그들의 지방지배 실현의 파트너로 끌어들인 것이다. 국가에서도 군현제와 수령만으로는 지방을 효율적으로 지배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향촌사회에서 그들의 영향력을 어느 정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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