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3. 사족의 향권과 수령권
  • 1) 조선 중기 향권의 의미

1) 조선 중기 향권의 의미

 조선시대 향촌사회는 군현제로 편제되어 있었고 각 군현에 파견된 수령은 사법·행정 등 일읍의 통치권을 국왕으로부터 위임받아 행사하고 있었다. 이 향촌사회 최고권력으로서의 수령권은 조선 전 시기를 통해 부정된 적이 없었다. 왕명을 대행하는 ‘命吏’로서 수령은 향촌사회에서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수령권이 국가권력에 기반한 것이고 국가권력이 당시 지배계급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있었던 만큼, 왕권이 절대시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수령권이 절대시되기는 하였지만, 수령이 향촌사회에서 가지는 권력은 상대적일 수밖에 없었다.

 수령은 중앙 집권세력과의 관계에서 자유스러울 수 없었으며, 향촌사회에서 재지사족과의 관계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특히 수령은 향촌사회의 각종 지배기구를 통하여 향촌사회를 통치해야 했기 때문에 조선 중기 향촌사회 지배기구를 장악하고 있던 사족들과는 일종의 보험, 대립관계를 동시에 갖고 있었다. 따라서 향촌사회에서 수령권은 군현 단위에서 사족들이 누렸던 향권과 관련하여 이해될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아직까지 일반 백성은 권력을 나누어 가질 수 있는 주체로 서지는 못한 단계에 머물러 다만 피보호자로 인식되고 있었다. 조선시대에 士夫나 士族을 국가의 ‘元氣’, 수령을 牧民官으로 부르고 있었던 사실은 당시의 권력구조에서 사족, 수령, 민이 차지하는 위치를 상징하는 것이다.

 사족의 ‘鄕權’이 주목되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종래에는 향권에 대한 언급을 발견하기가 힘든 상태였다.0169)1970년대 전반까지만 해도 鄕權에 대한 이해가 전무한 상태였다. 이같은 사정은 1972년 대한민국 법제처에서≪典律通補≫를 번역 간행할 때, 刑典 禁令에 수록된 ‘鄕戰’을 石戰·索戰·車戰 같은 시골의 각종 놀이로 번역하고 있었던 데서 발견할 수 있다(법제처,≪전율통보(하권)≫, 497·503쪽 참조). 당시 법제처의 번역은 1939년 조선총독부 중추원에서≪大典會通≫을 간행할 때 붙였던 刑典 禁制 ‘鄕戰’ 항목의 頭註로 있는 日文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경인문화사 영인본,≪大典會通≫, 1972, 695쪽 참조).
그런데 이 ‘향전’은 시골에서의 각종 놀이가 아니라 조선 후기 향권을 둘러싼 지방세력간의 다툼을 가리키는 것으로, 영조대 편찬된≪續大典≫刑典에 처음 실렸던 항목이다. 그간의 향권에 대한 이해부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 하겠다.
이는 조선시대 향촌사회를 이해함에 있어 제도사적인 차원에서 군현제의 정비라던가, 신분사의 차원에서 양반이나 향리 등의 문제가 주요 관심사로 되어왔던 데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군현제의 전면적 실시가 고려와 조선을 구분짓는 큰 특징의 하나로 이해되면서, 군현에서의 권력관계면에서는 수령권 강화에 초점이 맞춰졌고, 수령 밑에 실무 집행자로서의 향리가 중간층으로 수령에 기생한다는 차원에서의 설명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 향촌사회의 지배기구와 향촌 사회세력에 대한 연구가 진전됨에 따라,0170)1970년대 이후 새로운 향촌사회 연구에 기초를 제공한 저서로서는 다음을 들 수 있다.
金龍德,≪鄕廳硏究≫(韓國硏究院, 1978).
李樹健,≪韓國中世社會史硏究≫(一潮閣, 1984).
李泰鎭,≪韓國社會史硏究≫(知識産業社, 1986).
국가의 지배방식을 이들 각 사회세력과의 관계에서 새롭게 이해할 수 있게 됨으로써 향권의 실체를 밝힐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다. 조선 향촌사회에서의 향권은 좁은 의미에서는 유향소의 임원이 가지고 있던 향촌사회 운영권을 의미하는 것이었지만, 보다 넓게는 향임에 대한 인사권까지를 포함하는 향촌사회 지배신분층으로서의 사족이 갖고 있었던 향촌사회 운영권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16세기 이래 조야에서 공히 사용되고 있던 용어였다.0171)金仁杰,≪조선후기 鄕村社會 변동에 관한 연구-18, 19세기「鄕權」담당층의 변화를 중심으로-≫(서울大 博士學位論文, 1991), 6∼10쪽.

 향촌사회에서 수령권 외에 향권이 문제시되었던 것은 조선왕조의 향촌사회 지배방식 및 재지사족의 존재형태와 관련된 것으로 이해된다. 국가는 지방사회에 수령을 정점으로 하는 관의 행정조직 외에 재지사족이 중심이 된 향촌 지배기구, 즉 유향소를 운영하였는데, 이 유향소는 기본적으로 각 군현의 수령을 보좌하는 재지 品官들의 기구로서, 경재소에 의해 통제되고는 있었지만 독자성을 강화하고 있었다. 국가가 아직까지 지방세력을 직접 통제하지 못하던 상황에서 그들을 매개로 통치권을 행사해야 했던 사정에서 비롯된 현상이었다. 선초의 유향소는 수령권을 위협할 정도였을 뿐만 아니라 중앙의 세력가와도 연결되는 등, 치폐를 거듭하면서도 지방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0172)李泰鎭,<士林派의 留鄕所復立運動(上)(下)-朝鮮初期 性理學定着의 社會的 背景->(≪震檀學報≫34·35, 1972·1973). 이 유향소의 임원이 가지고 있던 권한은 일정한 임기를 채우면 떠나야하는 수령의 그것에 못지않은 것이었다. 좁은 의미에서 향권이라고 할 때 바로 이 향임이 가졌던 권한을 지칭하였던 것도 유향소 및 그 임원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그런데 향촌사회에서 향임은 鄕案(鄕籍)에 올라야만 그 직책을 맡을 수 있었고, 향임의 천망은 향안에 오른 鄕員들의 의견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향권은 향임의 인사권 및 향안에 어느 인물을 올릴 것인가의 여부를 결정하는 권한(鄕籍權)까지를 포함하는 뜻으로도 널리 쓰였다. 이는 재지사족이 향안과 향안 구성원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향회를 통해 결속하고 있던 16, 17세기의 향촌사회 사정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한편, 위와 같은 사실들은 조선 중기 관인들이 지방에 근거를 가지고 활동하고 있었던 것과도 무관하지 않았던 것으로 이해된다. 당시 관인들이 지방사회에 뿌리를 두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국가권력의 이해만이 아니라 재지사족의 이해를 대변하고 있었고, 이 양자를 결합시키는 향촌사회 지배기구를 매개로 지방사회에서 향권을 행사하였던 것이다. 재지사족은 향촌사회에서의 그들 물적 토대를 바탕으로 향회, 유향소, 서원 등 그들 나름의 지배기구를 만들어 향권을 행사하고 있었는데, 결코 배타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관권으로부터 일정한 독자성을 가지는 것이었다.

 실제 재지사족들은 자신들이 지켜야 할 규범으로 수령의 정사에 득실이나 시비를 말하지 말라고 하는, ‘勿論官政得失’, ‘勿論是非官政’ 등과 같은 조목을 필히 거론하고 있었다. 사사로운 일로 관부에 출입하지 말아야 할 것을 어릴적부터 가르치고자 했으며,0173)李 珥,≪擊蒙要訣≫接人章. 17세기 전반 상주에 거주하였던 月澗 李㙉 같은 이는 노년에 아들에게 “州家의 정사득실을 절대 입에 올려서는 안된다. 혹 와서 그 같은 말을 하는 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응대를 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居鄕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다”라고 강조하였다.0174)李身圭,≪酉溪集≫권 3, 歡侍日錄.
이신규는 西涯 柳成龍의 문하로, 愚伏 鄭經世와 교유하였던 月澗 李㙉의 아들로서 50이 가까운 나이에도 부친을 옆에 모시면서 부친이 내리는 말씀을 기록하였다. 그 기록이≪歡侍日錄≫이다. 이전은 蒼石 李埈의 형이다.
화를 초래할 위험이라던가 백성과 수령과의 관계를 고려한 것이기도 하였지만, 언제든지 入朝(居官)할 가능성을 갖고 있던 그들로서 기본적으로 가져야할 윤리의 차원에서 위와 같은 거향관을 피력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재지사족의 거향관은 정치적인 의미를 강하게 갖는 것으로 수령의 절대권을 인정한 위에서 자신들의 입지를 확보하여 향권을 행사하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하겠다.

 그러니 이 향권에 수령이 간섭하는 것도 그들은 반가워할 일이 아니었다. 李珥가 해주에서 향약을 실시하는 가운데 수령의 관령은 향임(官任)을 통해서 처리하고, 그 향임을 사족들의 중론으로 통제하면서 사족들의 억울한 일에는 수령에게 공개적으로 이의를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을 마련하고 있었던 것은0175)李 珥,≪栗谷全書≫, 海州一鄕約束. 사족의 향권이 수령권에 대해 상대적 독자성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렇게 재지사족들이 향촌사회의 운영에 관한 제반 사항들을 결정하는 권한을 수중에 장악해 나감에 따라 이제 향촌사회에서 향권은 향론의 주도권을 의미하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재지사족의 향촌사회 지배권을 뜻하게 된 것이다. 그 중심 내용은 향촌사회 지배기구의 인사권과 부세운영권이었던 것으로 이해된다. 마치 중앙 조정에서의 朝權이 중앙 권력기구의 인사권이나 정책결정에 미치는 영향력을 가리키는 것과0176)≪肅宗實錄≫권 4, 숙종 원년 윤5월 갑인.
숙종은 초년에 남인의 견해를 받아들여 당론의 폐를 지적하는 가운데, “국량이 좁은 미세한 무리들이 儒名을 빌려 산림에 머물면서 朝權을 틀어잡고 있다. 무릇 인물의 진퇴나 대소 정사를 필히 먼저 양인(송시열, 송준길)에게 품의한 후에 왕에게 보고하니 극히 한심한 일이다”라고 조정의 서인들을 비판한 바 있다. 위 말에서 조권이 조정에서의 권력으로, 그 핵심은 인사권 정책결정권임을 추론할 수 있다.
같다고 하겠다. 이같은 재지사족의 향권을 행사하는데 있어 모체가 되었던 것은 향안과 향회였는데, 사족은 향안을 매개로 자신의 결속을 강화하고 이 향안 구성원들의 모임인 향회를 통해 향권을 행사하면서 吏民을 지배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향촌사회에서의 향권도 조선 후기에 접어들면서 변질되고, 사족들의 향권에의 참여도 극히 제한되게 되었다. 18세기 중엽을 전후하여 사족들의 결속력이 와해되는 가운데 향론은 분열되고, 향안이 파치되는 것과 아울러 향회도 부정되고 그 성격이 바뀌게 되며 향권의 의미도 축소 변질돼 나갔다. 이제 향회는 수령의 부세자문기관으로서 수령에 직속되게 되었으며, 향권의 의미도 향임이 가지는 권한(또는 유임이나 향임을 수령에게 추천하는 권한) 정도로 협소해졌다. 이는 기존 사족이 누려왔던 향권이 부정되고 향권이 수령권에 복속되어 감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같은 상황에서 사족들은 문중조직의 강화 등을 통하여 자신의 지위를 유지해 나가기도 하였으나 향권에서의 소외라는 대세를 바꿀 수는 없었다.

 이같은 변화의 배경에는 사족들의 사회경제적 기반의 동요와 일반 평민들의 경제적 상승이 자리잡고 있었고, 동시에 18세기 이래 왕권강화책의 일환으로 지속적으로 추진되었던 수령권 강화책도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조선 후기 사회경제적 기반의 변동 속에서 새롭게 부민층이 성장해 나옴에 따라 수령은 이제 더이상 사족들만을 향촌사회 통치에서 반려자로 삼지 않아도 되게 되었고, 이 부민층들을 향촌통제의 새로운 동반자로 삼게 되면서 향권 담당층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실제 조선 후기에는 구래의 사족에게는 못미쳤던 층, 또는 새롭게 성장하고 있던 층들이 수령권을 배경으로 향권에 참여하게 됨으로써 사족의 향권은 관권, 수령권과 마찰을 빚고 있었다. 결국 종래 사족들이 누려왔던 향권은 소멸의 운명을 맞게 되며, 이 후 향권은 유임이나 향임들이 갖는 권한이란 좁은 의미로 국한되는 변화를 보인다. 이 과정에서 향촌사회의 권력을 둘러싼 각종 쟁단이 야기되었다. 18세기 향전은 이같은 변화과정에서 나타난 것이었다. 초기 향전이 사족의 후예라 할 유림층과 수령의 비호를 받는 향임층의 대립으로 시작한 것은 향전이 구래의 사족의 향권과 수령권과의 마찰을 의미하는 것, 다시 말하면 넓은 의미의 향권이 수령에 의해 부정되고 향권이 수령권에 복속되면서 그 의미가 축소되는 것, 그리고 그 좁은 의미의 향권을 사족들이 이제 더이상 자신들의 통제하에 둘 수 없게 되는 것 등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향권의 의미가 이렇게 축소되게 된 후에는 향촌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직임을 둘러싼 대립만이 남게 되었다. 19세기의 향전이 주로 유임이나 향임 자리를 둘러싼 쟁단을 의미하였던 것이 이러한 사정을 반영한다. 이 후 19세기에는 18세기의 향권과 같은 내용을 ‘邑權’으로 표현하는 경우도 나타나는데, 이는 축소된 의미의 향권, 즉 읍의 행정권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향권도 독자성을 잃고 수령에 의해 천단되는 것이 일반이었다. 향임이 아전들과 같은 위치에 놓이게 되는 현상과 관련된 것이었다.

 이와 같이 사족의 향권은 수령권과의 관계 속에서 수령이 사족을 매개로 하여 향촌사회를 통제할 때는 사족의 일향 지배권을 의미하다가 새로운 담당층으로 향권이 이동하며서 기존의 재지사족의 향권이 부정되고 향권의 의미도 축소, 변화되는 식으로 변동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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