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Ⅳ. 학문과 종교
  • 6. 역사학
  • 2) 고려 이전의 역사에 대한 서술
  • (4) 역사지리학 연구의 심화

(4) 역사지리학 연구의 심화

 우리 나라에서 역사지리학의 시작은 정사체의 지리지로서≪三國史記≫나≪高麗史≫에서 찾을 수 있다. 이 계통으로 별도로 편찬된 책으로는≪八道地理志≫나≪世宗實錄地理志≫,≪東國輿地勝覽≫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이들 관찬 지리서류들이 단순한 편찬물인데 반하여 학문적으로 이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 사람은 韓百謙(1552∼1615)이라고 할 수 있다.0726)鄭求福,<韓百謙의 東國地理志에 대한 一考-歷史地理學派 成立을 중심으로->(≪全北史學≫2, 1978).
―――,<韓百謙의 史學과 그 影響>(≪震檀學報≫63, 1987).
―――,≪久菴遺稿·東國地理志≫(一潮閣, 1987).
그의 대표적인 역사지리 저술로≪東國地理志≫가 있다. 이에서 그는 한국인의 종족문제, 강역문제를 역사적으로 고찰하려고 하였으며, 특히 종래 분분하였던 삼한의 위치문제에 대한 견해는 오늘날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탁론을 내놓았다. 그는 도덕적 관점에서 역사를 평하고 정치적 교훈을 주려던 조선 전기의 역사학으로부터 완전히 탈피하여 강역과 관방 등의 역사와 지리문제를 논하면서 실증적인 방법을 써서 역사학을 독립적인 학문으로 발전시키는 데에 기여하였다.

 이런 학문경향은 이후의 학자들에 의하여 계승되어 현대 역사학에까지 그 학문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柳馨遠(1622∼1673)은≪東國輿地志≫의 연혁과 고적 등 항목에서 역사지리에 관한 문제들을 자세히 논급하면서 한백겸의 생각을 더욱 발전시켰다.0727)朴仁鎬,<柳馨遠의 東國輿地志에 대한 一考察-歷史意識과 關聯하여->(≪淸溪史學≫6, 1989). 그외 鄭克後·許穆·南九萬·李世龜·李頣命·洪萬宗 등 학자들은 한백겸과 유형원을 이어 역사지리학을 더욱 발전시켰다.0728)韓永愚,<許穆의 古學과 歷史認識>(≪韓國學報≫40, 1985).
朴仁鎬,<南九萬과 李世龜의 歷史地理 硏究>(≪歷史學報≫138, 1992).
韓永愚,<17세기후반∼18세기초 洪萬宗의 會通思想과 歷史意識>(≪韓國文化≫12, 1991).
이러한 연구경향은 18세기 이후에는 林象德·申景濬·安鼎福·丁若鏞으로 이어지면서 새로운 발전을 맞이하게 되었다.

 역사지리학에서 가장 공통된 문제가 된 것은 주제별로는 민족의 종족문제, 옛 국가의 영역, 옛 수도의 위치, 국방요새지의 위치 등을 밝히려는 것이었으며, 시간적으로는 단군과 기자조선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문제, 중국사에 나오는 한사군의 위치문제, 중국측 기록에 다양하게 나오는 패수가 어느 강을 지칭하는가의 문제, 尹瓘의 9성의 위치문제 등을 밝히는데 주력하였다. 이는 이 시기 양란을 거치면서 조국강토의 수호가 중요한 문제로 부각된 점과 조국강토에 대한 관심의 고조 각성과 깊은 관련을 가진다.

 조선 전기의 반도 중심적인 역사지리관과는 달리 한백겸 이후에는 반도 이외 지역으로 관심을 증대시켜 나가고 있었으며, 유형원 이후에는 대체적으로 요동일대까지 옛 조선의 영역을 확대하여 이해하려고 하였다. 그리고 그동안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였던 고구려와 발해의 강역을 요동일원에서 그 자취를 찾으려고 하였다. 학문적으로 역사지리학은 전문성과 독립성·자율성을 차츰 획득해 나가고 있었다.0729)朴仁鎬,≪朝鮮後期 歷史地理學 硏究≫(韓國精神文化硏究院 博士學位論文, 1996), 9∼11쪽.

 이러한 역사지리학이 발생하게 된 원인은 다음과 같다. 성리학자들이 철학적 문제를 깊이 있게 따져 들어가는 학문태도가 과거의 역사연구에 적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무비판적으로 문헌사료를 인용하여 역사를 쓰던 학문에서 사료를 비판하여 검토하는 안목이 성장하였다. 중국 사서가 널리 보급되어 이를 참조할 수 있는 여건이 보다 용이하여졌고, 지도의 작성 등으로 국토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졌다. 청나라 고증학의 영향도 작용하였다.

 역사지리학은 조선 중기에 발생하여 후기에 큰 발전을 이룬 역사학의 새로운 분야로 이는 역사학의 관심이 정치사 중심의 관심으로부터 현실적 분야로의 변화와 역사학이 도덕적 평가를 내리는 경학의 종속으로부터 벗어나 객관적 실체를 다루는 학문으로서의 역사학의 독립을 의미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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