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Ⅳ. 학문과 종교
  • 6. 역사학
  • 3) 당대사의 편찬
  • (3) 야사형 사서의 편찬

(3) 야사형 사서의 편찬

 조선시대 野史의 시원으로는 徐居正의≪筆苑雜記≫와 成俔의≪慵齋叢話≫를 들 수 있으며, 이후 다양한 隨錄類의 야사가 편찬되었다. 야사는 오늘날의 소설적인 허구적 내용이 아니라 당시의 개인이 기록한 견문록으로서 역사성은 대단히 높은 것이다. 16세기에는 활발한 사찬사서의 편찬과 궤를 같이 하면서 야사도 전형적인 체계를 갖추어 편찬되기 시작하였으며, 그 내용과 대상에 있어서도 초기의 신변잡기의 수록류에서 일정한 시간적 단위를 대상으로 한 체계적 형태를 갖춘 通史性의 저술로 발전하였다.

 이 시기에 전형적인 야사의 양식이 성립되는 대표적인 사서로는 許篈(1551∼1588)에 의해 편찬된≪海東野言≫을 들 수 있다.≪해동야언≫은 당시 성리학적 역사학의 일부면으로서 인물 중심의 역사이해를 보여주고 있으며, 서술에 있어서는 전거를 분명히 제시하는 특징을 보였다.0740)李泰鎭,<조선시대 野史 발달의 趨移와 성격>(≪又仁金龍德博士停年紀念 史學論叢≫, 1988), 110∼112쪽.

 ≪해동야언≫은 당대사의 필요성과 관찬사서와는 다른 시각에서의 역사서술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서술방식에서는 정치적 입장의 차이에 따르는 상대방의 시비를 피하기 위해 다른 저서의 내용을 인용하면서 편집하여 정리하는 방식을 취하였다. 물론 내용의 취사선택을 통하여 자신의 견해를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방식은 이후 편찬된 야사의 기본적인 체재를 이룬 것이기도 하다.0741)최이돈,<海東野言에 보이는 許篈의 當代史 인식>(≪韓國文化≫15, 1994), 244∼248쪽.

 이후 개인학자들에 의해 당대사를 기록한 업적이 활발히 쏟어져 나오기 시작하였다. 그 대표적인 예를 든다면 尹衡聖(1608∼1676)의≪朝野僉載≫,0742)≪朝野僉載≫는 50권 29책(별록 2권)의 필사본으로, 조선 건국 이후 숙종 46년(1720)까지의 사실을≪국조보감≫,≪용비어천가≫등을 참고하여 엮은 것이다. 이 책의 찬자에 대하여는 이설이 있으며 윤형선이 찬한 것이라 하더라도 후대인이 추가해 넣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는 앞으로의 연구과제이다. 구성은 각 권별로 조선의 왕을 중심으로 하여 편년체 형식으로 기록하고 있다. 徐文重(1634∼1709)의≪朝野記聞≫,0743)藏書閣에는 10책본의≪朝野記聞≫(2-289)과 11책본의≪記聞≫(2-137)이 있다. 한편 북한에서 편찬된≪력사사전≫(사회과학원 력사연구소편, 1971)에 따르면 34권의 필사본이 있다고 한다. 그외 23권 23책의 한글본≪됴야긔문≫(장서각 2-288)도 있다. 그 내용은 1626년까지의 연대표가 있고 다음에 제도, 경비 등 6개의 편목이 있으며, 다시 본편으로 들어간다. 본편에는 사건 단위로 관련자료들을 모아두었다. 李東郁(1646-?)의≪朝野記聞≫,0744)5권 5책본으로 藏書閣(2-290) 및 奎章閣(12714)에 소장되어 있다. 내용은 서문중의≪朝野記聞≫과 마찬가지로 왕조별 정치사건을 다루고 있다. 구성은 편년적 순서에 따라 기술하고 관련 인물의 열전을 부기하였다. 尹鍈(1612∼1685)의≪代嘯雜記≫등이 있다.≪조야첨재≫가 각 왕별 편년기사를 중심으로 기록되었던 반면에,≪조야기문≫은 사건을 분류하여 항목별로 해당 기사의 자료를 모으는 식의 기사본말체 형식을 따르고 있어 야사에 있어서도 다양한 서술체재가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야사형의 당대사는 18세기 이후≪朝野會通≫·≪朝野輯要≫·≪列朝通紀≫등이 편찬되어 나왔으며, 당쟁과 관련된 자파의 입장을 옹호하기 위한 黨論書가 활발히 편찬되었다. 그리고 양반층 부인들에게 읽히기 위해 야사의 언해본이 나오기도 하였다.

 한편 야사형 사서는 17세기 중반에 이르면 여러 야사를 종합적으로 수집 편찬한 총서 형식으로 정리되어 새로운 발전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 시기에 편찬된 야사총서로는 鄭道應(1618∼1667)의≪昭代粹言≫을 들 수 있다. 이후 조선 후기에는 통사성의 야사와 야사 총서류가 관변측 자료의 미비를 메꾸면서 계속 편찬되었다.

 조선 중기의 야사형 사서들은 16세기 사림파의 등장과 함께 크게 성행하면서 정치적 색채를 띠어 이 시기 사림정치의 발전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대체로 그 내용에 있어서는 인물 위주의 서술로 이루어져 있으며, 역사의 서술체재는 편년체, 기사본말체 등 자유로운 형식이 취하여졌다. 그러나 이러한 야사형의 사서들은 관변 자료들이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완벽한 내용을 갖추기 어려웠기 때문에 미흡한 점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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