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Ⅳ. 학문과 종교
  • 8. 도교와 민간신앙
  • 2) 민간신앙
  • (1) 선서와 관제신앙

(1) 선서와 관제신앙

 柳得恭(1749∼?)의≪盎葉記≫2, 中國書來東國條에 조선 태종 17년(明 永樂 15;1417)에 明 成祖가 善陰騭書 6백 부를 보내왔다는 기사가 보인다. 선음즐서는 유·불·도 3교의 사상이 융합한, 선행을 권장하는 내용의 책들로 善書로 약칭되기도 한다. 명대 이후 중국에서 대단히 많이 만들어졌다. 권선징악이라는 사회교육적인 의의를 높이 사서였으리라고 생각되지만, 이러한 선서들이 조선 초기부터 한말에 이르기까지 계속하여 널리 읽혀졌고, 각종 선서의 번각과 언해가 나왔다. 주요한 선서로는≪玉皇寶訓≫·≪注生延嗣妙應眞經≫·≪敬信錄≫과 그 언해본,≪三聖訓經≫·≪過化存神≫·≪感應篇圖說≫·≪功過格纂要≫등을 들 수 있다. 이 가운데서≪삼성훈경≫은 蜀漢의 명장 關羽, 晉의 張亞, 唐의 呂洞賓을 숭봉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생전의 공덕으로 천궁에 올라 관우는 關聖帝君으로, 장아는 文昌帝君으로, 여동빈은 孚佑帝君으로 각각 제군의 지위를 차지하게 되어 인간의 선악을 감시하고 그것에 따라 화복을 내리는 일을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중국에서 관우를 신격화하고 그를 신봉하기 시작한 것은 송나라 때부터였으며, 도교에서는 伏魔大帝라 하여 지옥신의 장으로 되어 있고, 한 고조, 진시황제 등 생전의 제왕은 도리어 그의 부하 격으로 돌려져 있다. 조선 중기에 와서는 우리 나라에서도 민간에서 관제를 숭봉하는 습속이 생겼다. 관제를 숭봉하는 습속은 본래 임진왜란 때 명나라 군사가 이 땅에 가져온 것으로, 그 습속을 받아들여 종로 및 동대문과 남대문 밖에 關王廟를 세우게까지 되었던 것이다. 동대문과 남대문 밖의 관왕묘는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 관우는 그 의용을 사서 城鎭을 수호해 주는 것 등을 비롯해서 여러 가지 능력이 있는 것으로 믿어졌고, 우리 나라에서는 특히 財神으로 받들어져 상인들에게 숭봉되었다.≪과화존신≫도 관성제군의≪覺世眞經救劫文≫·≪靈驗記≫등을 합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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