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Ⅴ. 문학과 예술
  • 2. 미술
  • 5) 건축
  • (5) 사찰건축

(5) 사찰건축

 조선시대는 개국과 더불어 숭유억불정책을 쓴 만큼 사찰건축의 초창은 활발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고려 때까지 창건된 많은 기존의 사찰에서, 특히 임진왜란으로 불탄 여러 전각들이 중건됨으로써 개별적인 사찰건축의 조영은 활발하였다.

 화엄사는 임진왜란으로 거의 전사찰이 불타서 임진왜란 이후에 다시 짓게되어 중기의 사찰모습을 잘 보여준다. 인조 8년(1630)에 覺性이 중건을 시작하여 인조 14년에는 대웅전을 비롯한 여러 건물들을 짓고, 숙종 28년(1702)에는 性能이 장육전을 중건하였는데 숙종은 이를 覺皇殿이라 사액하고 선교 양종 대가람으로 격을 높였다.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는 배치를 살펴보면 일주문을 들어서면 금강문이 이 문의 축과는 어긋난 축상에 자리잡고, 금강문에서 다시 비껴 축상에 천왕문이 자리잡고 있다. 천왕문을 지나 여러 단의 돌계단을 딛고 올라서면 보제루 앞이 되고 오른쪽으로 돌아 또 몇 단의 돌계단을 올라서면 동서 탑들이 서 있는 대웅전 아래 마당에 이른다. 이 때 천왕문과 보제루 중심축은 서로 어긋나며, 동탑과 서탑의 동서축도 서로 어긋나는데 이는 산지가람에서 공간의 균형을 이루면서 자연의 지세에 조화되도록 조영하는 조형의식에 따른 것이다. 사찰의 중심 전각인 대웅전은 탑이 서 있는 아래 마당보다 높은 웃마당에 보제루의 전각들인 면부전, 원통전, 나한전들이 건립되어 전체적으로 비좌우대칭균형의 배치체계를 이루고 있다(<도면 8>).0889)朱南哲, 위의 책, 279∼2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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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면 8>화엄사 배치도
<도면 8>화엄사 배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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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神勒寺 祖師堂은 예종 원년(1469)에 건립된 정면 1칸, 측면 2칸의 단층팔작기와집이다. 공포는 내외1출목 다포식으로 첨차의 단부는 교두형이고 쇠서는 강직하고 내부의 천장을 모두 우물천장으로 처리하였다.0890)朱南哲, 위의 책, 298∼301쪽.
≪韓國의 古建築≫8 (문화재관리국문화재연구소, 1986).

 道岬寺 解脫門은 성종 4년(1473)에 건축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맞배집으로 주심포식건축이다. 공포는 외2출목으로 헛첨차를 내어 소로를 얹어 앙서로 된 살미첨차를 받치고 안쪽에는 보아지를 두었다. 내부의 가구에서는 솟을합장으로 종도리를 결구하고 포대공으로 종도리를 받치며, 전후 평주사에 우미량을 얹어 다른 쪽 끝단은 중도리를 받치는 공포에 짜여 마무리되고 있다(<도면 9-1, 9-2>).0891)≪韓國의 古建築≫1 (문화재관리국문화재연구소,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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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면 9-1>도갑사 해탈문 공포(1)
<도면 9-1>도갑사 해탈문 공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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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면 9-2>도갑사 해탈문 공포(2)
<도면 9-2>도갑사 해탈문 공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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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開心寺 대웅보전은 성종 15년에 중창된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맞배집으로 다포식건축이다. 약한 배흘림이 있는 기둥과 우주의 귀솟음이 있으며, 공포는 외2출목 내3출목으로 첨차의 단부는 교두형이며 특히 종도리를 파련대공이 받치고 솟을합장으로 결구하고 있음이 조선 초기 건축인 무위사극락전의 구조와 닮은 점이다.0892)≪韓國의 古建築≫2 (문화재관리국문화재연구소, 1975).

 임진왜란 이후에 지어졌거나, 불탄 것을 다시 지은 건축으로는 법주사 팔상전(1605년), 관룡사 대웅전 및 약사전(1617년), 전등사 대웅전(1621년), 금산사 미륵전(1635년), 화엄사 대웅전(1636년), 통도사 대웅전(1645년), 용문사 대장전(1670년), 쌍봉사 대웅전(1690년), 화엄사 각황전(1697년) 등이 있고, 또 임란 전후로 지어진 건립연대를 알 수 없는 건축으로는 선운사 대웅전, 무량사 극락전, 봉정사 화엄강당 및 고금당, 장곡사 하대웅전, 쌍계사 대웅전 등이 있다.

 관룡사 약사전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단층 맞배집으로 공포를 네 기둥 위에만 짜올린 주심포식건축이다. 주간의 창방 위에는 화반도 없고 특히 창방머리를 첨차로 이용한 점이 특이하며 또 단칸이면서 7양가구로 우미량을 사용한 점도 주목되는 점이다.0893)≪韓國의 古建築≫6 (문화재관리국문화재연구소, 1984).

 법주사 팔상전은 5층으로 3층의 쌍봉사 대웅전과 함께 단 두 개의 현존하는 목조탑이다. 정유재란 때 불타 선조 38년(1605)에 다시 지은 건축이나, 이 때의 양식으로 이루어졌는지는 의문이다. 장대석바른층쌓기의 비교적 높지 않은 기단 위에 정면 5칸, 측면 5칸의 정방형 평면 속 중앙에 심주를 세웠고 모서리에 고주를 세워 변주와 모서리 기둥에 퇴보를 놓고 이 퇴보 위에 2층의 변주를 세웠으며 같은 방법으로 2층, 3층 등이 이루어 진다. 공포는 2출목으로 1층은 주간에도 공포를 짜고, 2, 3, 4, 5층 모두 기둥 위에만 공포를 짜올려 놓았으나, 공포의 양식은 波蓮刻을 갖는 다포양식을 이루고 있음이 특이하다(<도면 10>).0894)朱南哲, 앞의 책(1983), 289∼2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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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면 10> 법주사 팔상전 입면도(수리전)
<도면 10> 법주사 팔상전 입면도(수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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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산사 미륵전은 정유재란 때 소실되어 인조 13년(1635)에 다시 지어 그 후 4차례의 중수를 거쳤다. 미륵삼존불을 모신 유일의 3층 불전이다. 정면 5칸, 측면 4칸의 평면으로 내부에 4개의 고주를 앞뒤로 세우고 고주와 변주에 퇴량을 걸어 퇴량 위에 2층의 변주를 세웠으며, 3층의 변주는 1층의 고주가 연장되어 변주로 되었다. 공포는 내외2출목으로 살미첨차의 끝단은 앙서로 되어 있고 연봉으로 장식되었으며 안쪽은 한판으로 붙어 있다. 특히 앙서들은 살미첨차에 붙인 것으로 하나의 부재로 된 것과 비교할 때 격이 떨어진다.0895)朱南哲, 위의 책, 285∼2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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