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Ⅴ. 문학과 예술
  • 2. 미술
  • 5) 건축
  • (6) 주택

(6) 주택

 조선 초기 세종 13년(1431)에 반포된 주택의 크기와 장식을 제한한 家舍規制는 신분계급에 따라 집의 크기와 장식을 달리하게끔 한, 왕권사회의 일면을 보여준다. 이 때에는 단지 칸수[間數]만으로 집의 크기를 제한하여 기둥 사이, 즉 주칸을 크게 잡을 때 같은 칸수로도 보다 큰 집을 지을 수 있는 결점이 있었다. 때문에 세종 22년과 31년 두 차례에 걸쳐 부재의 크기를 제한하였었는데,≪경국대전≫이 반포된 예종 원년(1469)에는 단지 대군 60칸, 군·공주 50칸, 옹주·종친·2품 이상 40칸, 3품 이하 30칸, 서인 10칸으로 칸수만을 다시 제한하는 법이 반포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법은 잘 지켜지지 않았고 보다 크게 집을 짓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을 알 수 있다.0896)朱南哲,≪韓國住宅建築≫(일지사, 1980), 54∼55쪽.

 중기에 건축되어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주택들로는 강릉 오죽헌, 강릉 해운정, 강원도 명주군의 임경당, 회덕 동춘당과 고택, 회덕 제월선생고택, 예산 이참판고택, 하회 양진당, 하회 충효당, 의성 김씨대종가, 월성 손동만씨가, 울성향단, 월성 관가정, 해남 녹우당 등을 들 수 있다.

 월성 香壇은 회재 이언적(1491∼1553)이 경상감사로 있을 때 지은 중기의 건축으로 이의 평면은 ‘用’자를 기본으로 한 것이다. 높은 언덕 위의 일각대문을 들어서면 앞에 줄행랑채가 자리잡고, 이보다 한단 높은 터에 사랑채가 모양의 안채와 연이어져 건립되어 행랑채와 더불어 길상문자인 ‘用’자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0897)朱南哲, 위의 책, 166∼167쪽.

 해남의 윤고산 고택인 녹우당은 조선 중기의 주택건축으로 일자형 사랑채, ㄷ자형 안채, 일자형 대문간채, 광채들이 넓은 울 안에 자리잡고, 여기에 사당간이 건립된 대가이다. 특히 울 밖에는 사당이 두 채 서 있는데 이는 불천지위의 사묘인 고산 사당과 어초은 사당이다. 또 이 주택에서 주목되는 것은 사랑채 앞에 설치한 차양과 부엌 상부에 가설한 덫지붕이다(<도면 11>).0898)朱南哲, 위의 책, 179쪽.
―――, 앞의 책(1983), 175∼1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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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면 11>해남 윤고산 고택 평면도
<도면 11>해남 윤고산 고택 평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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