井邑과 動動은 중종 때 가사가 개찬되었다. 그러한 사실은 중기에 이르러 그 음악도 변질되었음을 짐작케 한다.
정읍은 본래 조선 초기에 무고정재 등에서 노래와 반주로 쓰였고, 만기 중기 급기의 세 틀로 되었었다. 그러나 조선 중기의 정읍(만기)은 세 틀로 된 것이 아니고 진연에서 아박무와 무고정재의 반주음악으로 쓰이지만 노래로는 불려지지 않아서, 초기의 음악에서 많이 변화된 기악곡일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것은 사설없이 선율만 기록된≪대악후보≫의 정읍과 같은 것으로 추측되고, 그 음악은 선율이 복잡하게 된 점에서 이미 본래의 만기가 아닐 것이다.
한편 초기에 아박무의 노래와 반주로 쓰였던 동동은 조선 중기의 진연 기록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사설이 없고 정읍과 함께 기록된 점에서≪대악후보≫의 동동도 이 시기의 것으로 짐작된다.
≪대악후보≫의 정읍과 동동은 다음<악보 6>처럼 악곡의 머리선율이 완전히 동일하며, 전체적인 음악내용도 매우 유사하다. 그리고 이 두 곡은 공통적으로 선율에 동음반복이 많은 특색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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