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Ⅴ. 문학과 예술
  • 4. 민속

4. 민속

 조선 중기는≪經國大典≫의 편찬과 함께 중앙집권적 관료체제가 완성된 시기로서, 경제적으로는 농업을 바탕으로 한 장시가 읍치를 중심으로 발달하기 시작한 때였다. 사회적으로는≪國朝五禮儀≫의 편찬과 함께≪朱子家禮≫가 본격적으로 보급되어, 주자학적 의례체계가 확립된 시기라고 하겠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은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과 같은 사건을 겪으면서도 변함이 없었다.

 한편으로 이러한 시대적 배경과 사건들은 지역에 따라 새로운 민속을 형성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 주고 있다. 정치적으로나 학문적으로 명망이 높은 인물들과 왜란이나 호란을 극복하는데 공헌한 인물들을 숭배하는 풍속이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한편으로 일상생활의 사회적 단위인 마을도 전통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것 이외에, 새로이 동족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하였으며, 생활조직도 부계를 중심으로 한 친족조직이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이러한 배경을 갖고 있는 조선시대 중기의 민속을 전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문헌자료는 현재 전해지지 않고 있다. 다만 成俔(1439∼1504)의≪慵齋叢話≫에 남아 있는 기록에 의해 간략하게나마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國朝五禮儀≫를 통해서 왕실과 관료체제의 민속을,≪新增東國輿地勝覽≫및 읍지 등을 통해서 일부 지방의 민속이 부분적으로 밝혀지고 있다. 그 밖에 몇몇 禮書를 통해서 주자학적 의례체계에 의해서 형성되는 민속을 밝힐 수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문헌자료에 나타나는 이 시기의 민속을 정월부터 차례로 파악하기로 한다.

 ≪국조오례의≫에 의하면, 정월 초하루 丑時 1刻0941)≪國朝五禮序例≫에 의하면, 왕실과 국가의 행사로 규정된 모든 제의의 시각은 축시 1각으로 통일되어 있다.에 종묘에서 大祀로 享儀를 올린다. 날이 밝으면 궁궐에서는 왕이 왕세자와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중국 황제에 대한 望闕禮를 행한다. 이어서 왕은 왕세자와 백관, 왕세자빈으로부터 朝賀儀를 받는다. 그리고 중궁에서는 왕비가 命婦, 왕세자, 왕세자빈, 백관으로부터 조하의를 받는다. 조하의가 끝나면 각각 會儀宴을 갖는다. 그리고 상순에 날을 잡아 七祀 중에 小祀로 司命祭와 司戶祭를 올린다.

 모든 관청은 3일 동안 일을 하지 않으며, 벼슬아치들은 다투어 친척과 동료들의 집에 가서 名刺를 문안에 던지는데, 대가집에서는 미리 함을 설치하여 받는다.0942)成 俔,≪慵齋叢話≫권 2.
柳得恭,≪京都雜志≫에는 이것을 歲啣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성현의≪용재총화≫에 의하면 초하루에 서로 집으로 찾아가서 인사를 나누는 것을 세배라고 한다. 또한 大夫와 私庶人 모두는 가묘에서 조상의 신주를 내어 모시고 俗節告祭·祠堂參禮를 지내거나, 또는 墓祭를 지낸다.0943)≪국조오례의≫에 의하면 그 밖의 속절고제는 한식·단오·추석·동지·납일에도 지내도록 되어 있다. 李彦迪,≪奉先雜儀≫와 李珥,≪祭儀抄≫에 의하면 祠堂參禮라고 되어 있으며, 그 밖에 동지와 삭망에, 그리고 묘제는 한식·단오·추석에도 지내도록 되어 있다.
한편 묘제는≪朱子家禮≫를 따라서 3월 상순에 택일을 하여 지내도 괜찮다고 되어 있다.

 또한 초하루 아침에 사람을 만나 이름을 불러 대답하면, 내 어리석은 것을 사가라고 한다0944)沈守慶,≪遣閑雜錄≫.
柳得恭,≪京都雜志≫에 의하면, 보름날 새벽에 더위를 판다고 되어 있다.
. 이날은 모두 일하지 않고, 모여서 윷놀이(梟盧戱)를 하며 다투고, 술을 마시며 논다. 새해에 들어 子日, 午日, 辰日, 亥日에도 이와 같이 한다. 그리고 아이들은 다북쑥을 모아서 동산에서 불을 지르면서, 해일에는 수퇘지 주둥이를 지진다고 하며, 자일에는 쥐를 지진다고 한다.0945)成 俔,≪慵齋叢話≫권 2.
柳得恭,≪京都雜志≫正月에 의하면, 이 놀이를 궁중의 행사로 기록하고 있으며, 또한 쥐날에는 시골에서 콩을 태우면서 쥐주둥이 지진다고 여러번 주문을 왼다고 하였다.
≪松都志≫에 의하면 開城府에서는 여자 아이들은 蹴鞠戱0946)鄭昌順이 증보한≪松都志≫風俗에 의하면, 蹴板戱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蹴鞠은 蹴板의 오기로 보여진다.를 하고 놀며, 남자들은 投石戰을 하는데 죽고 다치는 것을 가리지 않는다. 濟州牧에서는 淫祠를 숭상하는데, 산·늪·냇물·연못·언덕·물가·평지·나무·돌 등이 있는 곳에 고루 신사를 만든다. 그리고 매년 초하루부터 보름까지 巫覡이 神纛을 받들고 儺戱를 행한다. 징과 북을 울리며 신독을 안내하여 동리로 들어가면 사람들이 다투어 재물과 돈을 내놓으며 굿을 한다0947)≪新增東國輿地勝覽≫권 38, 濟州牧 風俗.
洪錫謨,≪東國歲時記≫正月에 의하면 이것을 花盤이라고 부른다고 하였다. 金邁淳의≪洌陽歲時記≫에는 “초하루에 지방관청에서는 優人들이 허수아비의 탈을 쓰고 바라를 울리고 막대기를 휘두르며 호령을 하고 무엇을 쫓는 시늉을 하면서 두루 몇 바퀴를 돌다가 나가는데, 이것은 儺禮에서 끼쳐진 것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중기에도 지방의 주현에서는 이러한 풍속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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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춘이 되기 전에 궁궐에서는 문신을 모아 五, 七言律詩나 絶句로 立春延祥詩를 짓도록 하여, 잘 지은 것을 골라 입춘시에 맟춰 궁문에 붙인다.0948)≪成宗實錄≫권 260, 성종 22년 12월 을축. 보름이 되기 전에 궁중에서는 內農作을 한다. 14일에 承旨 이하 監造官·監掌官 등을 2패로 갈라서 후원의 좌우에 짚·김·벗나무 껍질 등으로 周公의 故事와 山色·奇花·異草·蟲漁·禽獸·인물 등을 만들어 농사의 어려움을 나타내도록 하며, 왕 이하 백관들이 이것을 보고 잘된 편에 상을 내린다.0949)≪中宗實錄≫권 19, 중종 9년 정월 무인·임오.
柳得恭,≪京都雜志≫에는 이 행사는 祈豊을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며, 이 내농작은 시골에서 짚을 묶어 깃대모양을 만들고 장대 끝에 붙들어 매어 집 곁에 세우고 긴 새끼를 내려뜨려 고정시키는 禾積이나 여항의 禾竿과 같은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江陵都護府에서는 동지에 五穀種子를 항아리에 담아 흙집에 두었다가, 입춘에 이르러 獻官을 뽑아 봄맞이 의례를 행하고 土牛로 밭을 가는 놀이를 한 다음에, 항아리의 종자를 꺼내어 가장 많이 불은 것으로 그 해의 흉풍을 점친다.0950)≪臨瀛誌≫권 2, 祀典.

 보름날에 사당에 薦獻儀를 드리는데, 시식으로 약밥[藥飯]을 올린다.0951)李 珥,≪祭儀抄≫에 의하면 이 밖에도 천헌의를 올리는 날은 3월 3월, 5월 5일, 6월 15일, 7월 7일, 8월 15일, 9월 9일, 납일로 되어 있다. 이날 경도에서는 아이들이 연날리기를 하는데, 연이 떨어지는 집은 그 해에 반드시 액이 생긴다고 믿는다.0952)≪明宗實錄≫권 32, 명종 21년 정월 정미.
柳得恭,≪京都雜志≫에 의하면, “보름날 厄자를 연에 써서 해질 무렵에 줄을 끊어 날려 보낸다. … 우리 나라의 풍속은 겨울부터 정월 보름까지 날린다. … 매년 정월 보름전 하루 이틀은 수표교 연변 상하를 따라 연싸움을 구경하는 사람들이 담을 쌓듯이 모여 선다. … 그러나 보름날이 지난 다음에는 다시 연을 날리지 않는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남녀들이 무리를 지어 12개의 다리를 건너면 그 해의 액을 넘긴다고 하여 踏橋를 한다.0953)≪明宗實錄≫권 28, 명종 15년 5월 신미.
柳得恭의≪京都雜志≫에는 답교가 성한 곳으로 대광통교, 소광통교, 수표교를 들고 있다.
개성부에서는 남녀 모두 횃불을 들고 높은 곳에 올라 달을 맞으면서 그 해의 복을 빌며, 또 달이 일찍, 늦게, 높게, 낮게 뜨는가를 살펴 흉풍을 점친다.0954)횃불을 들고 달을 맞는 것은 송도에만 있는 풍속이나, 달을 보고 점치는 것은 8도가 같다고 하였다(金堉,≪松都志≫). 艮方에서 달이 뜨면 풍년이 들 징조라고 하였다(柳希春,≪眉巖日記≫). 경상도 善山縣에서는 보름날 동리에서 줄다리기를 한다.0955)≪秋官志≫審理 獄案. 安東都護府에서는 16일에 성안에 있는 개울을 경계로 좌우로 나누어 석전을 하여 승부를 겨룬다.0956)≪新增東國輿地勝覽≫권 24, 安東大都護府 風俗.

 2월 1일에 왕이 신하들에게 栢層을 하사하는데, 實栢子를 솔잎에 하나씩 끼고 붉은 종이로 감싸서 붉은 칠을 한 자루를 대어 만든다.0957)≪中宗實錄≫권 17, 중종 8년 2월 경자. 한식에 종묘에서는 대사로 향의를 올린다. 이날 조상에게 속절제, 헌식례를 올리거나, 또는 묘제를 올린다.0958)≪國朝五禮儀≫.
李彦迪,≪奉先雜儀≫.
李 珥,≪祭儀抄≫.
柳得恭,≪京都雜志≫에 의하면, 경도에서는 정조, 한식, 단오, 중추에 성묘를 하는데, 한식과 중추에 가장 성하다고 하였다.
그리고 上丁日에 경도와 지방의 주현에서 文宣王廟에 중사로 釋奠祭를 올리며, 매월 삭망에도 奠을 올린다. 또한 上戊日에는 경도와 지방의 주현에서 대사로 社稷祭를 올린다. 한편으로 상순에 날을 잡아 風雲雷雨祭와 山川城隍祭, 그리고 嶽海瀆祭,0959)같은 날 지방의 신사에도 향축을 내려 지내도록 하는데, 그 지역은 다음과 같다.
南嶽神(智異山, 전라도 南原), 中嶽神(三角山, 도성 북쪽).
西嶽神(松嶽山, 경기 開城), 北嶽神(鼻白山, 영안도 定平).
東海神(강원도 襄陽), 南海神(전라도 羅州), 西海神(황해도 豊川).
南瀆神(熊津, 충청도 公州;伽耶津, 경상도 梁山).
中瀆神(漢江, 도성 남).
西瀆神(德津, 경기 長湍;平壤江, 평안도 平壤;鴨綠江, 평안도 義州).
北瀆神(豆滿江, 영안도 慶源).
名山大川祭,0960)같은 날 지방의 신사에도 향축을 내려 지내도록 하는데, 그 지역은 다음과 같다.
東名山神(雉岳山, 강원도 原州).
南名山神(鷄龍山, 충청도 公州;竹嶺山, 충청도 丹陽;亐佛山, 경상도 蔚山;主屹山, 경상도 聞慶;錦城山, 전라도 羅州).
中名山神(木覓山, 도성내 남쪽).
西名山神(五冠山, 경기 長湍;牛耳山, 황해도 海州).
北名山神(紺岳山, 경기 積城;義館嶺, 강원도 淮陽).
南大川神(揚津溟所, 충청도 忠州;揚津, 경기 楊州).
西大川神(長山串, 황해도 長淵;阿斯津松串, 황해도 安岳;淸川江, 평안도 安州;九溺津水, 평안도 平壤).
北大川神(德津溟所, 강원도 淮陽;沸流水, 영안도 永興).
歷代始祖祭0961)역대시조제는 지방에서만 지내는데, 그 내용과 지역은 다음과 같다.
三聖祠(황해도 文化:桓因·桓雄·檀君).
崇靈祠(평안도 平壤:檀君·東明王).
崇仁殿(평안도 平壤:箕子).
崇德殿(경상도 慶州:朴赫居世王).
溫祚王廟(충청도 稷山:溫祚王).
崇義殿(경기 麻田:고려 太祖·顯宗·文宗·元宗).
를 중사로 올린다. 경칩에 소사인 纛祭를 지내며, 임란 이후에는 關王廟0962)임란 이후에 생긴 신사로는 관왕묘를 비롯하여, 중국의 인물을 모신 宣武祠(邢玠, 楊鎬), 愍忠壇(戰亡 明軍將士), 武烈祠(石星, 李如松, 楊之, 李如柏, 張世爵) 등과 함께, 조선의 인물을 모신 忠愍祠(李舜臣, 李億祺, 安弘國) 등이 있는데, 춘추로 향축을 내려 제를 지내게 하고 있다.에도 소사로 제사를 지낸다. 또한 경칩 후 吉亥日에 중사로 先農祭를 지낸다. 춘분후 剛日에 馬祖祭를 지내며, 李珥의≪祭儀抄≫에 의하면, 춘분에 조상에게 時祭를 올린다. 2월과 8월의 中丁日이나 下丁日에 전국의 書院에서 향사를 올린다.

 2월 초하루를 花朝라고 하며, 이른 새벽에 솔잎을 문앞에 뿌린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빈대를 미워하여 솔잎으로 찔러 물리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이날 제주목의 歸德·金寧 등과 같은 지방에서는 장대 12개를 세워 놓고 신을 맞아다가 제를 지내며, 涯月에 사는 사람들은 나무로 말머리를 만들어 채색비단으로 꾸며서 躍馬戱를 하면서 신을 즐겁게 해준다. 보름에 이르러 그치는데, 이것을 然燈이라고 한다. 또한 이 달에는 배를 타는 것을 금한다.0963)≪新增東國輿地勝覽≫권 38, 濟州牧 風俗. 이외에 춘추로 남녀가 무리를 지어 廣壤堂과 遮歸堂에 모여 주육으로 제사를 지낸다는 기록도 보인다.

 ≪국조오례의≫에 의하면, 3월 吉巳日에 왕비가 명부들을 거느리고 중사로 先蠶祭를 지낸다. 청명 3일 전에 지방의 주현에서는 城隍發告祭를 지내며, 청명에 경도와 주현에서 소사로 厲祭를 지낸다.≪국조오례의서례≫에 의하면 중정일에 宣武祠에 소사를 올린다. 3월 3일은 삼짇날, 上巳日, 踏靑節이라 하며, 주현에서 鄕射禮를 한다.0964)≪成宗實錄≫권 245, 성종 21년 9월 갑신.
≪新增東國輿地勝覽≫권 34에 의하면, 전라도 龍安縣의 풍속에 춘추로 향음주례와 향사례를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조상들에게 천헌의0965)李 珥,≪祭儀抄≫.
金邁淳,≪冽陽歲時記≫에 의하면, 우리 나라에서는 시제보다는 기제를 중히 여겼는데, 본조 중엽부터 시제를 중히 여기게 되어 삼짇날과 중양절에 많이 지낸다고 하였다.
를 드리고, 모두 교외에 나가 노는데, 꽃이 있으면 꽃술을 지져서 술과 함께 먹으며,0966)진달래 꽃으로 花煎을 만들어 먹는다고 하였다(柳得恭,≪京都雜志≫). 또 성현의≪용재총화≫에 의하면 새 쑥을 따서 雪餻를 만들어 먹는다.

 4월 상순에 날을 잡아 七祀 가운데 司竈祭를 소사로 올린다. 8일은 석가여래가 탄생한 날이라고 하여 燃燈을 한다. 봄에 아이들이 종이를 잘라 기를 만들고 물고기 껍질을 벗겨서 북을 만들어 무리를 지어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등불켜는 기구를 구걸하는데, 이를 呼旗라고 한다. 그리고 이날이 되면 집집마다 장대를 세워 등을 거는데, 부자집에서는 크게 채색한 등대를 세워 층층이 불을 밝혀, 마치 하늘에 별이 떠 있는 것과 같았다. 사람들은 밤새도록 놀면서 구경하며, 무뢰한 소년들은 혹 쳐다보고 돌을 던져 맞추면서 좋아한다.0967)지금엔 불교를 숭상치 않으므로 혹 연등놀이를 한다 하더라도 그 전의 번성함과 같지 못하다고 하였다(成俔,≪慵齋叢話≫권 2). 金堉의≪송도지≫에 의하면 개성부에서도 관등을 아주 성하게 한다. 熊川縣에서는 매년 4월과 10월에 熊山神堂에서 신을 맞아 하산하여 종과 북을 울리면서 잡희를 하며, 원근의 사람들이 다투어서 제를 지낸다.0968)≪新增東國輿地勝覽≫권 32, 熊川縣 祠廟.

 5월 2일에 궁궐에서는 문신들을 모아 端午帖子를 짓게 한다.0969)≪成宗實錄≫권 165, 성종 23년 5월 신미. 5일 단오에, 종묘에서는 대사로 향의를 지내며, 왕은 관원들에게 貼扇을 하사한다.0970)柳希春,≪眉巖日記≫1책, 무진 5월 5일.일반에서는 조상들에게 속절제, 헌식례, 천헌의를 올리거나,0971)≪國朝五禮儀≫.
李彦迪,≪奉先雜儀≫.
李 珥,≪祭儀抄≫.
묘제0972)李彦迪,≪奉先雜儀≫.
李 珥,≪祭儀抄≫.
를 지내며, 시식으로 艾餠을 올린다. 이이의≪제의초≫에 의하면 하지 후 강일에 소사로 先牧祭를 지낸다. 그리고 하지에도 조상에게 시제를 올린다.

 또한 단오날에는 艾虎를 문에 걸며, 창포를 술에 띄운다. 아이들은 쑥으로 머리를 땋고, 창포로 띠를 하며, 또 창포뿌리를 뽑아서 수염처럼 붙였다. 사람들은 길거리에 큰 나무를 세우고 그네를 뛴다. 여아는 모두 아름다운 옷으로 단장하고 길거리에 들끓어 채색한 줄을 잡고 서로 다투고, 소년들이 무리로 몰려와서 이것을 밀고 끌고 하여 더없이 음란하기까지 하였다고 한다.0973)이를테면 종루 뒤에서 그네를 메고 남북으로 나누어 승부를 겨루었는데, 풍기가 문란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으로 말미암아 조정에서 이를 금지하여 지금은 성행하지 않게 되었다고 했다(成俔,≪慵齋叢話≫권 2). 김육의≪송도지≫에 의하면 개성부에서도 남녀가 정장을 하고 그네를 뛰고, 씨름을 하여 승부를 겨루며, 말달리는 재주를 비교하는데, 말달리는 놀이는 다른 곳에서는 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김해도호부에서는 매년 4월 8일에 아이들이 석전을 연습하다가 단오날에 이르면 장정들이 좌우로 나누어 깃대를 꽂고, 북을 울리고 소리를 지르며 석전을 하여 승부를 가른다.0974)≪新增東國輿地勝覽≫권 32, 金海都護府. 그 밖에 매년 춘추에 노인들이 金首露王陵에 모여 제를 올린다. 軍威縣에서는 매년 단오날에 首吏가 사람들과 함께 말을 타고 깃발을 들고 북을 치며, 金庾信祠에 가서 신을 맞아다가 거리에서 논다.0975)≪新增東國輿地勝覽≫권 25, 孝靈縣 祠廟. 신사는 현의 서악에 있는데, 속칭 三將軍堂이라고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固城縣에서는 1일부터 5일까지 사람들이 모여 2대로 나누어 성황사의 신상을 모시고 採旗를 들고 거리를 돌면, 사람들이 다투어 주찬으로 제를 올린다. 끝나면 儺人들이 백희를 베푼다.0976)≪新增東國輿地勝覽≫권 32, 固城縣 祠廟. 安邊都護府에서는 霜陰神祠에 宣威大王의 부인을 모시고 있는데, 매년 단오가 되면 성황사에 모신 선위대왕을 함께 모시고 함께 제를 지낸다.0977)≪新增東國輿地勝覽≫권 49, 安邊都護府 祠廟.

 三陟都護府에서는 烏金簪祭를 지내는데, 사람들이 오금으로 만든 비녀를 소함에 가득 담아 동헌 동쪽 모퉁이에 있는 나무 아래에 두었다가 매년 단오가 되면 아전이 꺼내어 받들고 제를 지낸 후, 다음날 다시 보관한다.0978)≪新增東國輿地勝覽≫권 44, 三陟都護府 風俗. 許穆(1595∼1682)의≪陟州誌≫에 의하면, 효종 4년(1653)에 府使 鄭彦璜이 오금잠제를 금하였으며, 이듬해에는 부사 李之馧이 성황사의 목상을 없애고 사판을 모신 것으로 되어 있다.0979)金宗彦,≪陟州誌≫에 의하면, 烏金簪과 함께 있던 화상을 없애고, 사판을 성황당에 모신 사람은 金孝元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당시에 전통적인 의례체계가 관권에 의해서 유교적 체제의례로 바뀌고 있는 상황을 잘 나타내 준다.

 6월 土旺日(입추 전 18일)에 궁궐에서는 七祀 가운데 소사로 中榴祭를 지낸다. 15일은 유두라고 하며, 궁궐에서는 당상관에게 얼음을 하사한다.0980)柳希春,≪眉巖日記≫ 3책, 기사 6월 15일. 이이의≪제의초≫에 의하면 조상에게 천헌의를 올리는데, 시식으로 水團을 올린다.≪용재총화≫에 의하면 이것은 水團餠이라고도 하는데, 대개 회화나무 잎가루를 냉수에 일어 먹던 유속이라고 한다. 김육의≪송도지≫에 의하면 개성부에서는 東流水에 머리를 감아 상서롭지 못한 것을 없애고 모여 술을 마시는 것을 流頭飮이라고 하며, 또 머리를 풀고 폭포물을 맞으면 어질병이 없어진다고 하는데 이것을 打頭會라고 부른다.

 7월 상순에 날을 잡아 七祀 가운데 國門祭와 公厲祭를 소사로 올린다. 13일에 지방의 주현에서는 성황발고제를 지내며, 15일에 경도와 주현에서 소사로 厲祭를 지낸다. 입추 후 진일에 靈星祭를 소사로 지낸다. 이이의≪제의초≫에 의하면 칠석에 조상들에게 천헌의를 올린다. 김해도호부에서는 6월 그믐에 긴 장대를 세우고 잡악으로 太宗神을 모신 다음 7월 10일까지 角低戱를 하는데, 이것을 七夕戱라고 한다.0981)≪見睫錄≫권 1, 風俗. 7월 보름을 百種이라고 부르며, 절에서 백가지 꽃과 열매를 모아 盂蘭盆을 베푼다. 서울에 있는 여승의 암자에서 심하여, 부녀가 많이 모여들어 미곡을 바치고 돌아간 어버이의 영혼을 불러 제사지낸다. 가끔 중이 탁자를 길가에 놓고 제를 지내기도 한다.0982)成 俔,≪慵齋叢話≫권 2. 김육의≪송도지≫에 의하면 이것은 특히 개성부에서 성하다고 하였다. 전라도 礪山縣에서는 7월 보름에 鵲旨라는 곳에서 충청도 恩津縣 사람들과 모여 手搏戱를 하며 승부를 겨룬다.0983)≪新增東國輿地勝覽≫권 34, 礪山郡 山川.

 8월 상순에 날을 잡아 풍운뇌우제와 산천성황제, 嶽海瀆祭, 명산대천제, 역대시조제를 中祀로 지낸다. 추석에 종묘에서는 大祀로 향의를 올린다. 상정일에 문선왕묘에 중사로 석전제를 올린다. 상무일에는 경도와 지방의 주현의 사직단에서 대사로 사직제를 올린다. 추분에 老人星祭를 소사로 지내며, 추분 후 강일에 소사로 馬社祭를 지낸다. 일반에서는 추석에 속절제, 헌식례, 천헌의를 올리거나 묘제를 올린다.0984)≪國朝五禮儀≫.
李彦迪,≪奉先雜儀≫.
李 珥,≪祭儀抄≫.
그리고 이이의≪제의초≫에 의하면 추분에 시제를 올린다.

 ≪용재총화≫에 의하면 중추에 달구경을 한다. 제주목에서는 매년 8월 보름날에 남녀가 함께 모여 노래하고 춤추며 좌우로 편을 갈라 큰 줄의 양쪽을 잡아당겨 승부를 겨룬다. 줄이 만약 중간에서 끊어져서 양편이 모두 땅에 자빠지면 구경꾼들이 크게 웃는데, 이것을 照里戱라고 하며, 그네도 뛰고, 닭을 붙잡는 놀이(捕鷄戱)도 한다.0985)≪新增東國輿地勝覽≫권 38, 濟州牧 風俗.

 9월의 霜降에는 독제와 관왕묘제를 각각 소사로 지내며, 중정일에는 선무사에서도 소사를 지낸다.0986)≪國朝續五禮儀序例≫권 1. 또한 9일에는 주현에서 향사례를 올린다.0987)≪成宗實錄≫권 245, 성종 21년 9월 갑신. 重陽에 조상에게 헌식례,0988)李彦迪,≪奉先雜儀≫. 천헌의0989)李 珥,≪祭儀抄≫.를 올린다. 그리고 登高라고 하여 높은 데 올라가서 논다.0990)成 俔,≪慵齋叢話≫권 2.

 10월 초하루가 되기 3일 전에 지방 주현에서는 성황발고제를 지내며, 초하루에 경도와 지방 주현에서 소사로 厲祭를 지낸다. 그리고 상순에 날을 잡아 七祀 가운데 國行祭를 소사로 지낸다. 충청도 報恩縣의 俗離山에는 大自在天王神이 매년 10월 寅日에 내려와 45일 동안 法住寺에 머무는데, 사람들이 음악을 갖추어 맞아 모신다.0991)≪新增東國輿地勝覽≫권 16, 報恩縣 祠廟. 熊川縣에서는 매년 10월에 웅산신제를 올린다.

 11월의 첫 庚申日에 궁궐에서는 밤을 새는데0992)≪燕山君日記≫권 28, 연산군 3년 11월 경신. 庚申守夜라고 하며, 일반에서도 밤을 샌다.0993)成 俔,≪慵齋叢話≫권 2. 동지에 종묘에 대사로 향의를 올리며, 동지 후 강일에 소사로 馬步祭를 지낸다. 이날 조상에게 속절제,0994)≪國朝五禮儀≫. 사당참례,0995)李彦迪,≪奉先雜儀≫.
李 珥,≪祭儀抄≫.
또는 시제를 올리는데, 시식으로 팥죽(豆粥)을 올린다.0996)李 珥,≪祭儀抄≫.

 12월 臘日0997)조선시대에는 동지 후 셋째 未日을 臘日로 삼았다(金邁淳,≪冽陽歲時記≫).에는 종묘에서 대사로 향의를 올리며, 경도에서만 대사로 사직제를 올린다. 이날 조상에게 속절제0998)≪國朝五禮儀≫.나 천헌의0999)李 珥,≪祭儀抄≫.를 올린다. 개성에서는 12월 하순에 맹인들이 무리를 지어 朋采를 만들어 들고, 밤에 북을 두드리면서 길거리를 돌며, 미곡을 걷으면서 복을 빌어주는데, 그믐에 그친다.1000)金 堉,≪松都志≫.
柳得恭,≪京都雜志≫에서는 이것을 法鼓라고 하였으며, 정월 초하루의 행사로 기록하고 있다.

 그믐 전날에 궁궐에서는 儺戱를 하며,1001)成俔은 儺戱에 대하여 “어린애 수십 명을 모아서 侲子를 삼아 붉은 옷과 두건을 씌워 궁중에 들여보내면 관상감에서 북과 피리를 갖추고 方相氏와 함께 새벽에 이르러 쫓아낸다”라고 간략하게 기록하고 있다(成俔,≪慵齋叢話≫권 2). 이 때 신하들은 輪木을 던지는 놀이를 한다.1002)輪木은 12면에 각각 하나씩 동물의 이름을 새긴 것으로 3개를 던져서 獅자가 많이 나오는 사람이 이기는 놀이를 말한다(≪中宗實錄≫권 60, 중종 22년 12월 임신).≪용재총화≫에 의하면 민간에서도 이 나희를 모방하여, 푸른 죽엽, 붉은 荊枝, 익모초 줄기, 桃東枝를 한데 합하여 빗자루를 만들어 살창문을 두드리고, 북을 치고 방울을 울리며 문 밖으로 몰아내는 흉내를 내는데, 이것을 放枚鬼라고 한다.

 또한≪용재총화≫에는 그믐날 이른 새벽에 그림을 대문과 창문에 붙이는데, 處容, 角鬼, 鍾馗, 幞頭官人, 介冑將軍, 珍寶를 든 부인, 닭, 호랑이와 같은 것을 그린다.1003)조선 후기의 歲時記類에서는 모두 歲畵를 정월의 풍속으로 기록하고 있다.
柳得恭,≪京都雜志≫에서는 세화의 내용으로 壽星, 仙女, 直日神將을 들고 있으며, 궁문의 양쪽에 황금갑옷을 입고 하나는 도끼를, 하나는 節을 든 2장군의 그림을 붙이거나, 붉은 도포와 검은 사모를 한 인물상을 겹대문에 붙이기도 하는데, 이것을 門排라고 부르며, 이 2장군은 葛將軍과 周將軍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척리와 항간에서도 이 그림을 얻어다 문에 붙이기도 하며, 문설주에도 귀신의 머리를 그려 붙인다고 하였다.
金邁淳,≪冽陽歲時記≫에 의하면 세화는 도화서에서 그려 올리는데, 금갑신장은 대궐문에 붙이고, 신선·닭·범그림은 벽에다 마주 붙인다고 하였다.
이것을 歲畵라고 부르는데, 왕이 신하들에게 하사하기도 했다.1004)≪燕山君日記≫권 20, 연산군 2년 12월 을해. 그믐날에 서로 찾아보고 인사하는 것을 過歲라고 한다.1005)成 俔,≪慵齋叢話≫권 2.
洪錫謨,≪東國歲時記≫에는 이것을 舊歲拜라고 하였다.
이날 밤에 눈이 오면 풍년이 든다고 한다.1006)柳希春,≪眉巖日記≫6책, 신미 정월 1일. 황해도 延安都護府에 있는 臥龍池의 물이 얼었다가 깨지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용이 가는 것이라고 말하고, 그 얼음이 깨지는 방향을 보고 흉풍과 장마를 점친다.1007)≪新增東國輿地勝覽≫권 43, 延安都護府 山川.

 이상에서 보았듯이, 조선 중기의 민속은 다음과 같이 3종류의 성격으로 나타나고 있다. 첫째로 새로운 지배계층과 서울의 풍속으로서, 구체적으로 조선의 왕실과 서울을 중심으로 완성된 중앙집권적 관료체제의 儒敎儀禮的 풍속이 특색을 이루고 있다. 둘째로 지방 주현의 풍속으로서, 새로운 관료체제의 유교의례적 풍속에도 불구하고, 고려시대 이래로 지방의 주현과 읍치, 그리고 마을을 중심으로 발달한 巫佛中心의 전통적인 祝祭形式의 풍속이 아직도 상당히 남아 있다. 그러나 지방에 따라 그것도 관의 힘에 의해 유교적 체제의례의 형식으로 변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셋째로 새로운 사회적 이념인 주자학에 의해서 형성된 풍속으로서, 관왕묘나 서원, 그리고 시제 등에서 보듯이, 주자학적 사회체계와 역사적 사건에 의하여 새롭게 등장한 친족집단의 조상숭배와 인물숭배의 풍속 등이 등장하고 있다. 넷째, 農業과 관련된 민속으로, 밭농사에 관한 것이 주가 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직은 논농사에 관련된 풍속이 본격적으로 발달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張哲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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